어디선가 들리는 거친 숨소리, 돌아보니...

[우도여행 ①] 가쁘게 내쉬는 '숨비소리',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등록 2013.05.18 12:36수정 2013.05.18 12:36
0
원고료로 응원
삶 해녀가 물질을 합니다. 물속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밖으로 나오면 거친 숨소리가 납니다. 삶은 끝없이 치열합니다.

해녀가 물질을 합니다. 물속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밖으로 나오면 거친 숨소리가 납니다. 삶은 끝없이 치열합니다. ⓒ 황주찬


우도를 느긋하게 걷습니다. 약속도 없습니다. 꼭 가야할 곳도, 봐야할 일도 없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봄 바다를 마냥 쳐다보며 걸으면 됩니다. 가끔 뒤쪽에서 득달같이 달려오는 여려 종류의 자동차 몇 대만 피하면 됩니다. 조용한 제주 시골길,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입니다.

하지만 그 기분, 돌담길 꺾이는 순간 확 사라졌습니다. 휘유~ 휘유~, 봄이라지만 아직 시린 기운이 남아있는 바다 위에서 난데없이 휘파람 소리가 요란합니다. 자세히 보니,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물위로 올라와 내는 거친 숨소리입니다. 봄 바다가 해녀들이 내뿜는 '숨비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녀들 숨소리에서 삶의 무게를 느낍니다.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제주에 머물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 '우도'에서 3일을 몽땅 보냈습니다. 덕분에 바람소리, 파도소리 그리고 사람소리 실컷 들었습니다. 물론, 제주 바다가 전하는 맛있는 소리도 들었고요.

노력항 전남 장흥 노력항 여객선터미널입니다. 비바람 부는 날 제주로 향했습니다.

노력항 전남 장흥 노력항 여객선터미널입니다. 비바람 부는 날 제주로 향했습니다. ⓒ 황주찬


성산항 제주 성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전남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 성산항까지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비닐봉지에 얼굴 묻고 고생하던 일은 간데 없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갯바람이 배에서 헛구역질 하며 고생한 보람을 채워줍니다.

성산항 제주 성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전남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 성산항까지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비닐봉지에 얼굴 묻고 고생하던 일은 간데 없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갯바람이 배에서 헛구역질 하며 고생한 보람을 채워줍니다. ⓒ 황주찬


미역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맞으며 미역이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입니다.

미역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맞으며 미역이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입니다. ⓒ 황주찬


새색시 마냥 얌전한 배, 줄 풀리자 못된 망아지처럼 요동칩니다

우도에는 참 다양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소리를 몇 편에 걸쳐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10일 아침입니다. 간밤에 챙겨둔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파트 문을 열었습니다. 창밖으로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립니다. 바람도 조금 붑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검은 구름이 지면에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잰 걸음으로 차에 오른 후, 전남 장흥 노력항으로 달렸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흥노력항여객선터미널'은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4200톤급 '오렌지 1호'가 제주로 향하는 사람과 자동차를 싣고 있습니다. 노란색으로 예쁘게 치장한 배에 저도 올랐습니다.

노란색 예쁜 배, 항구에 몸을 묶고 있을 땐 새색시 마냥 얌전했습니다. 하지만 줄이 풀리고 먼 바다로 나서자 못된 망아지처럼 요동을 치더군요. 물론, 날씨 때문이었지요. 그 덕분에 저는 두 시간 넘도록 옆자리 아주머니의 헛구역질 소리를 줄기차게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옆자리 아주머니의 팔과 다리에 힘이 모두 빠질 즈음 제주 성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 얼굴을 유심히 살폈죠. 신기한 일은 모두들 화사한 얼굴로 항구에 발을 내딛더군요. 배 안에서 비닐봉지에 얼굴을 묻고 괴로워하던 사람들 표정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미역과 우뭇가사리 성산 일출봉 가는길, 예쁜 바다식물을 만났습니다. 미역과 우뭇가사리입니다.

미역과 우뭇가사리 성산 일출봉 가는길, 예쁜 바다식물을 만났습니다. 미역과 우뭇가사리입니다. ⓒ 황주찬


휴식 따듯한 커피가 시린 몸을 녹여줍니다. 힘든 물질을 마친 아주머니가 느긋하게 쉬고 있습니다.

휴식 따듯한 커피가 시린 몸을 녹여줍니다. 힘든 물질을 마친 아주머니가 느긋하게 쉬고 있습니다. ⓒ 황주찬


일출봉 오르는 길 성산 일출봉 오르는 길입니다. 파란 하늘과 짙은 녹음이 잘 어울립니다. 그나저나 정상은 언제쯤 나타날까요?

일출봉 오르는 길 성산 일출봉 오르는 길입니다. 파란 하늘과 짙은 녹음이 잘 어울립니다. 그나저나 정상은 언제쯤 나타날까요? ⓒ 황주찬


아름다운 풍경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은데... 배가 고프네요


제주의 바람은 한 순간에 사람들을 치유하는 신비한 힘이 있나 봅니다. 성산항에서 곧바로 섬속의 섬인 우도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날아오는 지인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코앞에 해돋이로 유명한 '성산일출봉'이 보입니다. 다짜고짜 그곳을 향해 걸어갑니다.

일출봉 가는 길, 호젓합니다. 빛깔 고운 우뭇가사리와 미역이 길가에 널려있습니다. 오전 물질을 마친 해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따듯한 커피를 마십니다. 달콤한 커피 향을 뒤로 하고 일출봉을 오릅니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정상에 닿았습니다. 짙은 녹색의 일출봉 너머 파란 하늘과 바다가 보입니다.

아름다운 풍경,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더군요.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돌려야 했습니다. 일출봉 아래에서 굶주린 지인들이 애타게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저도 배가 고팠고요. 정상에서 신선한 바람만 실컷 마셨더니 뱃속이 허전하더군요.

성산 일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염없이 이곳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굶주림에 지친 일행이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서둘러 내려가야지요.

성산 일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염없이 이곳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굶주림에 지친 일행이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서둘러 내려가야지요. ⓒ 황주찬


식당 허름해 보이시나요? 음식 맛은 기막힙니다. 차림표 굳이 보지 마세요. 식당 주인이 그날그날 상에 올릴 음식 알아서 준비합니다. 입과 수저만 제대로 챙기면 '제주의 맛'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식당 허름해 보이시나요? 음식 맛은 기막힙니다. 차림표 굳이 보지 마세요. 식당 주인이 그날그날 상에 올릴 음식 알아서 준비합니다. 입과 수저만 제대로 챙기면 '제주의 맛'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황주찬


갈치 어부인 남편이 잡아온 갈치를 정성껏 구워 손님 상에 올립니다. 두둠한 생선살 맛과 고소한 냄새가 일품입니다.

갈치 어부인 남편이 잡아온 갈치를 정성껏 구워 손님 상에 올립니다. 두둠한 생선살 맛과 고소한 냄새가 일품입니다. ⓒ 황주찬


자리돔 물회 제주에는 자리돔 많이 잡힙니다. 뼈째 썰어서 물회를 만듭니다. 물회를 입속에 한입 넣고 씹으면 고소한 소리가 들립니다.

자리돔 물회 제주에는 자리돔 많이 잡힙니다. 뼈째 썰어서 물회를 만듭니다. 물회를 입속에 한입 넣고 씹으면 고소한 소리가 들립니다. ⓒ 황주찬


차림표 보며 침 삼킬 필요 없는 곳, 제주 봄맛 정신없이 뱃속에 채웠습니다.

서둘러 일출봉에서 내려왔습니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더군요. 지인들과 함께 일출봉 근처 아담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일행 중에 제주 토박이가 있어 좋은 식당을 만났습니다. 어부인 아저씨와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부부가 힘써 일하는데 식당 운영이 이채로웠습니다. 어부 아저씨가 잡은 바닷고기를 그날그날 상에 올리기 때문에 특별히 정해진 차림표가 없습니다. 단지 새벽에 잡은 싱싱한 생선과 성산 일출봉 앞바다에서 뜯어온 다양한 해산물을 상에 올립니다.

당연히 차림표 바라보며 침 삼킬 필요 없겠지요. 아주머니 입에서 튀어나온 음식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상큼하고 풍성한 제주의 봄맛을 정신없이 뱃속을 채웠습니다. 역시, 여행의 맛은 음식 먹는 맛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질 무렵, 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습니다.(기사 이어집니다.)

신발 신발 벗고 바다로 나갑니다. 삶을 위해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저 멀리 바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풍성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신발 신발 벗고 바다로 나갑니다. 삶을 위해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저 멀리 바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풍성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 황주찬


#제주도 #우도 #성산일출봉 #해녀식당 갯마을 #오렌지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