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없는 만남은 없다.

「부석사」「천지간」「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을 읽고-

검토 완료

한가람(rkfka4964)등록 2013.05.20 18:20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세 권의 독서를 끝냈다. 자신있게 노트북을 켰지만 막상 글이 잘 써지질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글이 막혔다. 어떤 문장을 적어야 각기 다른 이 책들의 내용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한 책을 봤다. 법경스님이 지은 책으로, 보는 순간 아!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 없는 만남은 없다.' 세 권의 소설을 한 문장으로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목이 정해지고 나니 본문도 잘 써질 것 같았지만, 역시나 글이 떠오르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분명 책을 읽었지만 무언가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작가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경숙 작가야 「엄마를 부탁해」로 워낙 유명한 분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신경숙에 대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을소풍 장소로 영주 부석사가 정해졌다. 나는 그 때 울릉도·독도 탐방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친구들에게 소풍 얘기에 대해 물으면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은행 나무가 어찌나 많던지! 은행 냄새 밖에 안 나."
그래서일까, 내 머릿 속엔 언제부턴가 '부석사=은행 냄새'이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만 세워졌다.
하지만, 신경숙 그녀가 표현한 부석사는 소박하지만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부석사는 '나'와 남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결코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생각하지만 실제론 각각 따로 존재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라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나'와 남자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본 사람들이다. 1월 1일, 나름 의미가 깊다면 깊은 날이다. '나'는 P와, 남자는 박PD와의 약속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석사로 향한다. 사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어봤자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느니 차라리 공기 좋은 곳에 가 마음이라도 비우고 오는 게 훨씬 낫다. 그렇지만 '나'와 남자는 마치 부석처럼 절대 붙을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잠든 그와 자신이 마치 부석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떨어져 있는 그 간격은 매우 미세하지만 붙어있단 것과 떨어져 있단 것의 차이는 분명 크다. 부석이 떠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심지어 자연의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느껴질 때마다 슬프다. 그래서 인간은 애처롭다.
「부석사」가 사람 간의 관계를 절대 닿을 수 없는 것이라 묘사했다면, 「천지간」과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두 편 모두 윤대녕의 대표작으로, 우선 「천지간」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천지간」은 1996년 발표작으로, 윤대녕에게 이상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준 작품이다. '나'가 외숙모의 장례식에 가는 길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나'는 그녀와 우연히 스쳐지나가게 된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과 죽음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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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나'는 그녀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녀의 행선지를 따라가게 된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완도 구계등.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녀의 행선지를 따라가게 된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완도 구계등.
그녀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따라오는 이유까지.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인연을 거부하지 않는다.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선 새로운 인연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삶이란 것의 근본적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이 원초적이라면 원초적인 질문에 확실한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다.
우리는 종종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노래 가사에서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식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답은 간단하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슬픔은 마음의 병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슬픔도 치료가 필요하단 것을 모르고 있다. 오히려 강해보이기 위해 타인에게 이러한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생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로움은 그 상처를 곪아 썩게 한다.
그렇다면 여자는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단연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천지간」을 읽으면서 생각한 게 있다면, '나'와 여관 주인은 여자를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꺼내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게 진정한 삶을 살게 해줬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처를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도 내 상처를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러니 그 상처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천지간」의 여자도 죽음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났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남자도, 여관주인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천지간」에는 상직적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극 중 '나'와 여자가 묵게 되는 여관은 산 속에 있는 곳이다. 그 여관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 산과 바다는 극명한 의미의 대비를 이루는데, 바다는 그 자체로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을 상징한다. 그래서 바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깃든다. 반대로 산은 그 자체로도 숭고한 생명의 공간이다. 붉은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곳도 산 속이다. 어쩌면 작가는 산과 바다를 바로 옆에 대치해 둠으로써 삶과 죽음은 한 뼘 차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아직 죽음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아니다. 그래본 적도 없을뿐더러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이 앞으로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게 있다면,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분명 20년을 살아왔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왔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닌,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버스 터미널, 모두가 타인일 수 밖에 없는 그곳에서 우연히 지나쳐 다른 이의 아픔을 알아보고 보듬어준 그들의 인연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인연이란 말인가.
인연은 곧 만남이다.「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에서 소는 마음을 상징한다. '나'는 소를 찾아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 시간은 새로운 만남을 선사한다. 춘천행 기차에서 '나'와 여자는 처음 만난다. 여자는 콜 니드라이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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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연은 거창한 것이 아닌 이런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듣는 음악들은 '나'가 가끔 듣는 음악이기도 하다. 타인이라는 핑계 하에 그들은 서로 말없이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지만, 그 때부터 인연은 이미 시작되었다.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십우도(十牛圖)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십우도(十牛圖)에서 소는 마음 찾기로 표현된다. 주인이 소를 찾는 과정은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십우도(十牛圖)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깨달아야만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 깨달아야만 성장할 수 있다.
다음 날, 여자가 떠난 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소를 탄 나그네가 되어 여기 오리라.

소를 찾던 여자도, 금영을 찾던 남자도 이제 깨달은 것이다. 소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청평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관에도 있을 수 있다. 세속의 공간 속에도 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마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그 사실이 내겐 온전히, 그리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세상엔 수만 가지 인연이 있다.
서로가 각각 다른 이에게 상처를 받고 그런 상대방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부석사」
잠깐 스쳐지나간 타인의 생명을 구해주게 되는 것-「천지간」
오래된 인연을 찾아 떠나는 길에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제목에서 말했듯 인연 없는 만남은 없다 생각한다. 억지로 인연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며,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어떠한 만남이든 간에 항상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지녀야겠다. 끝으로 아쉬웠던 점은, 과제라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 생각 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촉박하게 시간에 쫓기듯 읽다보니 느끼는 바도 적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 권 모두 훌륭한 작품임에는 의심할 바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어봐야겠다. 그 땐 또 지금과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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