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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노래하는 천 그루의 나무가 됐다

[<춤추는 숲>-릴레이 리뷰③] 성미산 100인 합창단이 결성된 이유

13.05.23 13:53최종업데이트13.05.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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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를 위해 포클레인에 올라가는 이들. 윙윙거리는 전기톱에도 아랑곳 않는 사람들. 서울의 대표 마을공동체, 성미산 마을의 성미산 지킴이 활동이 다큐로 나온다. '별종 마을'의 유쾌한 분투를 그린 다큐, <춤추는 숲>이 23일 개봉한다. <오마이뉴스>는 송호창 무소속 의원,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김우영 <고지전> 촬영 감독의 리뷰를 싣는다. [편집자말]

성미산 100인 합창단의 공연. 성미산 생태공원을 지켜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비틀즈의 'Let it be'를 개사해 '냅둬유'를 부른다. ⓒ 스튜디오 느림보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 시사회가 있었다. 거칠 것 없는 청춘들의 경쾌한 스윙댄스와 기죽지 않는 마을가수 '도깨비와 친구들'에 이어, 마침내 '성미산 100인 합창단'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비가 내려 흰 우비를 입은 대열이 무대로 나오는 순간부터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냅둬유~ 성미산과 살게 냅둬유~ 좋은 말로 할 때 냅둬유~."

2년 만이다. 2년 전, 빗줄기 대신 성성한 눈발을 맞으며 붉은 흙을 드러낸 성미산 공사장 앞에서 목 놓아 부르던 노래를, 서울 한복판 청계광장에서 부르고 있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일러 '천 그루의 나무'라고 했다. 그 나무들이 합창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를 노래하게 한 것이 성미산이었다면, 오늘 우리를 광장으로 이끈 것은 성미산과 마을을 담은 영화의 힘이다.  

마을에서 탄생한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은 오랜 주민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맥가이버'(강석필 감독, 성미산마을에서는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가 5년을 공들여 만든 선물 같은 작품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을에서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이 스쳐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합창하는 대목이 나올 때면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낮은 기침을 하곤 한다.

이제 지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유창복 서울시 마을종합지원 센터장. 그는 마을에서 '짱가'라는 별명을 쓴다. ⓒ 스튜디오 느림보


엔진톱 소리와 '딱풀'의 문자메시지로 하루가 시작된다.

산에 올라와주세요. 이번에는 여러 명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빨래 널다가, 회의하다가, 극장에 조명 달다가 부리나케 달려간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도 않다. 전기톱을 잡은 인부의 팔에 매달리고, 나무를 부둥켜 안고 '제발 나무 살려달라' 애원하는 수밖에 없다. 끝이 보이지 않고 승산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 피로감이 누적된다. 그러나 정작 힘든 것은 우리들 내면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원망과 미안함이었다.

우연히 '알라딘'과 마주친 나는 모처럼 수다를 떤다. 오래전에 마을 최초로 결성된 '지리산'이라는 민요 부르기 모임부터, 결국은 말로만 끝난 성미산학교 모자(母子)합창단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오가며 '합창'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은 말을 멈추고 빤히 바라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합창단 해보자", "그러자!"로 받아친다.

"노래로 산을 지키자, 산을 노래하는 거야."
"합창을 폼나게 해서 성미산의 위기를 널리 알릴 수도 있잖아."

'성미산 100인 합창단'... 천 그루의 나무가 산을 노래하다!

일단 100명은 되어야 한다고 정했다. 그래야 폼이 나니까. 합창단의 이름도 '성미산 100인 합창단'으로 정했다. 문제는 사람 모으기였다. 대책 없어 보이지만, '설치는 주민'인 내가 마을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마을 어린이합창단이 무려 25명이면, 한 방에 1/4 해결! 한 해 전쯤 마을로 이사 온 새민족교회의 성가대가 합류하니 벌써 40명!

성미산학교 학부모들이 만든 노래패 '진동'을 꼬시고, '민중의 집'의 젊은 합창단이 가세하니 순식간에 4개 팀에 60여 명의 단원이 꾸려진다. 나머지 인원은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개인으로 '드림팀'을 구성하면 드디어 100명이다. 이렇게 10대부터 60대까지 100명이 모여, 두 달 작전이 펼쳐진다.

드림팀을 구성한다고 마을에 방을 붙이고 오디션을 본다. 마을에 사는 배우 고창석과 정인기도 동네 오디션 앞에선 떨린다며, 딸을 앞세우고 극장에 왔다. 총감독으로 초대된 원창연 감독이 사람들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고는 합창단에 참여한 이유를 일일이 물었다.

"원래 음치입니다…. 이번엔 립씽크를 해서라도 꼭 한번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마을에 온 지 1년이 넘었는데, 합창단에 끼면 혹시 재미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왔어요."
"성미산을 위한 합창단이라고 해서 왔어요. 항상 미안했거든요. 먹고사느라 새벽에 나가니…."

일주일에 한 번은 팀별로 연습하고 하루는 전부가 입을 맞춘다. 각자 맡은 파트가 있지만, 마음같이 잘될 리 만무다. 불협화음은 물론이고, 가사조차 외는 게 마음같지 않다. 공연 당일 날에도 악보 볼 거냐는 핀잔에 악보를 내려놓지만 슬그머니 다시 집어들기 일쑤다. 다행인건 두어 번 연습해보니 슬슬 윤곽이 나온다. 파트별로 키맨이 떠오르고 기피인물(?)도 가려진다.

"난 '산솔' 옆에서 할래"
"아놔~, '엘리스' 옆에만 서면 잘 나오던 음도 잡아먹혀, 아~ 이상해~!"
"몇 명은 립씽크하셔도 돼요."
"푸하하!"

조계사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무대에 선 120여 명의 합창단. '연두'의 시낭독이 공연을 열었지만 무대와 객석은 모두, 이미 숙연하다. 드디어 팀별 공연이 이어진다. 애초부터 노래보다는 스타일을 강조한 마을노래패 '진동'은 화사한 의상에 나름 섹시한 율동까지 곁들여 단숨에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만들고, 새민족교회 성가대의 수준 높은 합창에 탄성이 오간다. 아이들의 암팡진 합창에 웃음이 번지고, 드림팀의 등장에 활력이 넘친다. 드디어 전원이 무대로 모이고 합창이 시작된다.

"평화롭게 사는 마을, 그대로 살게 놔둬요." 

비틀즈의 <렛 잇 비(Let it be)>임이 분명한 익숙한 멜로디에 '그냥 살게 놔두라'는 가사가 들린다.

"좋은 말로 할 때 냅둬유~."

객석은 일순 와하하하 웃음이 빵 터진다. 하지만 반복되는 "좋은 말로 할 때 냅둬유~"는 점차 애처로운 애원으로 들리고, 객석은 눈물에 젖는다. 영화 <춤추는 숲>의 클라이맥스도 바로 <냅둬유>를 합창하는 장면이다. 이날 우리들의 노래는 시공간을 넘어 성미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공사장을 지나 마침내 넓은 세상으로 울려퍼진다.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그날, 마을의 울보 '꽃다지'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힘껏 노래를 불렀다. 합창단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춤추는 숲, 꿈꾸는 마을'에 산다

성미산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비틀즈의 곡 Let IT Be를 개사한 '냅둬유'를 열창하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성미산 100인 합창단 멤버들이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이제 청계광장을 뒤로하고 마을로 간다. 성미산, 말만 떠올려도 안타까운 이름이다. 멀찌감치 두고 보기도 먹먹하다. 그 앞을 지나치기도 싫다. 오랜 세월 동안, 성미산의 크고 작은 나무 뿌리들을 감싸 품어왔을 속살이 이미 다 파헤쳐졌다. 속살을 드러낸 그 흙덩이들, 먼 발치에서 보아도 서럽다.

잘려나간 성미산이 <춤추는 숲>으로 다시 부활했다. 그리고 뜯겨나간 성미산이 우리의 마을살이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파헤쳐진 성미산이 우리 아이들의 고향으로 복원될 거다. 우리들의 마을 이야기는 오늘도 마을카페 '작은나무'에서 두런두런 이어진다. 우리는 "춤추는 숲, 꿈꾸는 마을"에 산다.

'맥가이버' 강석필 감독이 <춤추는 숲>의 마지막 장면에서 담아낸 것처럼 복잡한 대도시 한복판의 어느 작은 골목길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동시대의 친구들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유쾌한 동네 블록버스터 <춤추는 숲>은 웃음과 눈물에 버무려진 우리들의 꿈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벌써부터 '맥가이버'의 두 번째 이야기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입니다. 유창복 센터장은 성미산마을에서 15년 넘게 마을 살이를 해왔습니다.
<춤추는 숲> 성미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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