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9년 만에 다시 지어진 '불독들이 사는 맨션'

[인터뷰] 2013년에 듣는 펑키, 2005년 해체 이후 재결합한 밴드 불독맨션

13.05.29 09:24최종업데이트13.05.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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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불독맨션 ⓒ 디에이치플레이 엔터테인먼트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1990년대 한국 인디 음악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미국과 영국 본토의 감성을 계승하며 저마다 개성을 입힌 록·브릿팝, '날것 정신'을 한껏 강조하며 더욱 쉽고 신나게 음악을 즐기려는 펑크(Punk)로 말이다.

이 와중에 간간이 신선한 시도를 하며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음악의 다양성에 한몫하는 팀도 있었다. 그 중 불독맨션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자미로콰이(Jamiroquai), 투 톤 슈(Two Tone Shoe) 등 리듬감과 발랄한 멜로디가 살아있는 펑키(Funky) 밴드가 해외에서 한창 인기를 얻을 때,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 인디계에 선구자처럼 펑키 정신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규 1집은 2002년 '대중음악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이 뽑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입소문을 타고 인디신을 주름잡던 불독맨션은 2005년 1월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2집을 낸 지 약 6개월이 지나서였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지만 불독맨션은 각자의 음악을 선보이며 활동해왔다. 리더인 이한철(보컬)은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방송 활동을 해왔고, 서창석(기타)과 이한주(베이스), 조정범(드럼) 역시 학교에서 기간제 음악교사로, 학원 강사로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미 알려졌듯 이들이 9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6일엔 새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 이름도 '리빌딩(Rebuilding)'이다. 원년 펑키 밴드의 귀환이랄까. 반가운 마음을 품고 홍대 인근에서 이들을 만났다.  

"(재결합 선언 후) 새로운 결과물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었어요.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운 부분이죠. '과연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기다려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긴 했었고요." (이한철)

"1집 때와 다르죠. 예전엔 매우 치열하게 서로 붙어서 작업했다면 이번엔 드럼을 제외하곤 개인 작업실에서 자기 파트를 책임졌어요. 시간이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서로의 사운드에 대해 이해해서 그만큼 작업이 어렵진 않았습니다. 이런 게 연륜인가?(웃음)" (조정범)

해체에서 재결합까지...서먹함은 잠시였다

잠정 해체 후 재결합을 선언하며 9년 만에 돌아온 밴드 불독맨션. 왼쪽부터 베이스 이한주, 드럼 조정범, 리더이자 보컬인 이한철, 기타 조성철. ⓒ 디에이치플레이 엔터테인먼트


불독맨션의 재결합은 해체 후 다시 만난 지난 2009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때 처음 거론됐다. "다음에 만나서 같이 합주 한 번 하자"는 말을 이한철이 던졌고, 3년이 지나 실제로 모이게 됐다. 2012년 가을 무렵 만난 이들은 작곡에서 편곡, 앨범 준비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솔로 활동을 했던 이한철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은 가수 아이유, 김현수 등의 세션을 맡으며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조정범은 "음악인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지난날을 살짝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야 언급하는 이야기지만 2005년 그들이 해체하게 됐던 사연 역시 들을 수 있었다.

"팀 내 갈등이요? 나만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조정범이가 워낙 윤활유 역할 잘했어요. 밴드라는 게 악기들이 단순히 모인 게 아니라 그걸 넘은 다른 역할이 있거든요. '케미'(조화력)가 다들 있었어요. 튀어나가는 멤버가 있고 받치는 멤버도 있었고요.

다만 제가 좀 튀어 나가는 편이었어요. 장르적 욕심을 많이 냈던 때가 있었죠. 2집 때 라틴 음악에 꽂혀서 막 썼는데 연주하는 데 있어서 멤버들이 자기 스타일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한철)

"개인적으론 상황이 안 좋았어요. 물론 편안한 상태에서 음악을 할 순 없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웠죠. 또 한주와 창석이에게는 참여하는 또 다른 팀이 있었어요. 1집 이후 마니아가 생긴 상태에서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2집이 그 정도는 아니었고요." (조정범)

"각자 다른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조정범이 베이스 치는 한주와 기타 치는 창석이를 꼬신 거였어요. 일단 한번 하자. 그럼 계속하게 될 거라는 복안이 있던 거죠.(웃음) 2집을 작업할 땐 이런 음악을 하는 팀은 없을 거란 생각이었죠. 안 좋은 상황에 가사도 우울했지만 펑키라는 게 그래도 리드미컬하고 멜로디는 신나는 장르잖아요. 그 무렵 앞으론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가 생각도 많아졌는데 그런 순간엔 쉬는 게 답이라고 결론을 낸 거였죠." (이한철)

다시 뭉친 불독들,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불독이 사는 맨션'이라 불독맨션이다. 별 뜻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진 이름이 오래가는 법. 재결합한 마당에 새삼스럽게 밴드 이름의 유래를 되새겨봤다. 술 먹은 뒤 후배가 정신없이 해장하며 던진 말 중에 그 이름이 있었고, 이한철이 여기에 꽂혀서 밴드 이름으로 쓰게 됐단다. 결과적으로 불독맨션이란 이름의 산파 역을 한 후배는 현재도 홍대 부근에서 '노이즈 캣'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개와 고양이. 뭔가 묘한 조화였다.

어쨌든 불독맨션이란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시 뭉쳤다. 솔직히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전설이 귀환했을 때 기존에 쌓았던 업적마저 흔들리는 건 아닐까.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되는 순간 삶은 달라지니 말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각자 생각이 있겠지만, 우려는 없어요. 각자 음악 성향이 다르고 음악 트렌드도 바뀌었잖아요. 처음 꺼내는 이야기인데 재결합을 준비하면서 1집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틈틈이 기록했던 멜로디 라인도 다시 꺼냈고요." (이한철)

"각자 바뀐 부분이 굉장히 많겠지만, 우리가 합쳐서 연주해보니 기본적인 느낌이나 방향성은 안 바뀐 거 같더라고요. 우리가 음악적으로 제일 에너지 넘칠 때 했던 밴드가 불독맨션이고 그 느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무엇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서창석)

다시 만난 불독들. 혹이나 또 헤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자. 음악적 연륜이 쌓였듯 이들 역시 유연해진 삶의 자세로 돌아왔으니까. 펑키 외길 인생, 치열했던 과거였다면 이젠 완급을 조절하고 풍성하게 음악을 채울 경험이 생겼다.

이들이 발표한 '리빌딩'을 다시 들어보니 새삼 혼자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다가 다시 어떤 의미를 깨닫고 힘을 내는 느낌이다. 의도하진 않았다지만 다시 뭉친 불독들 내면 어디엔가 깨달음처럼 남아있을 메시지 같았다. 인디 밴드, 밴드를 위한 무대가 줄어드는 마당에 이들의 음악으로 마음을 '리빌딩'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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