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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진의 MBC 입사, 손석희가 면접을 보지 않았다면?

[인터뷰②] 다듬어지지 않은 아나운서에서 원칙 고수하는 프리랜서 되기까지

13.06.05 09:52최종업데이트13.06.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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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 김대오 국장과 만나 아나운서로서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김대오,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경력 8년 차인 오상진 아나운서는 종종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는 아나운서의 실수담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스스로도 꼼꼼한 편이라 자평하긴 했지만 방송 중 정말 흔할 법한 잔 실수도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기도 하다.

굳이 그의 실수담을 캐내려 한 건 아니다. 그가 기억하는 실수라 봐야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밤새 응원하다가 다음 날 방송에 1분 30초 정도 지각한 정도였다. 물론 정확한 시간이 생명인 방송이라는 점에서 분명 실수는 맞지만, 이거 뭐 9시 정시 출근을 지키지 못해 10분, 15분 지각을 꽤 하는 우리네 보통 직장인들에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의 실수담 너머엔 분명 오상진 스스로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란 가정이 깔려있었다. 다시 말하면 좋은 기억이든 아니든 본인의 경력에 잊지 못할 프로그램, 거기서 배우 오상진의 또 다른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오상진 아나운서가 왜 정든 MBC를 떠났고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지난 인터뷰('프리' 오상진 "도박과도 같은 선택, 왜 두렵지 않았을까")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뒷북을 힘차게 울린 후 오상진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보자.

<신입사원>, 오상진에겐 큰 어려움이자 거울이었다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아나운서로서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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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오(이하 김) : "월드컵 당시 한국이 16강에 올라가서 다행이지 떨어졌다면 1분 30초의 지각으로 경위서를 쓸 수도 있었겠어요. 이런 점을 봐서도 오상진이란 사람이 운 때를 좀 타는 것 같군요."
오상진(이하 오) : "맞아요. 그때 만약 한국이 떨어졌더라면 저도 엄청나게 깨졌겠죠? (웃음) 그러고 보면 입사 초반부터 좋은 분들과 함께할 기회도 그만큼 많았던 거 같아요. 감사할 일이죠."

: "실수담도 실수담이지만 TV와 라디오의 여러 프로를 진행하면서 아나운서로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몇 개는 있을 거 같아요."
: "가장 생각나는 프로라면, 제일 어렵게 했던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겠네요. MBC 아나운서를 공개적으로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이 있었죠. 제 후배를 뽑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보통 방송을 진행할 때, 전 출연자와 패널 분과 사이좋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굳이 못 지낼 일도 없잖아요.

근데 그 프로만큼은 누구 한 명에게도 말을 걸기 어렵더라고요. '원래 아는 사이냐'는 말이 나올 것 같은 거죠. 방송을 진행했던 4개월 간 게스트와 말을 한마디도 안 했어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온에어' 불이 뜨면 무대로 나오곤 했죠. 더 힘든 점은 방송 진행 과정이었어요. 저 역시 면접을 보고 시험도 보고 들어왔잖아요. 저 땐 6차 면접까지 봤는데 각 단계마다 10분 정도 시간을 줘요. 길어야 70분 정도를 시험시간으로 삼고 들어온 겁니다.

이 친구들은 4개월간 매주 출연하잖아요. 가혹한 테스트를 뚫어야 할 운명인 거죠. 나도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이 친구들 정말 대단하단 걸 느꼈어요. 게다가 얼굴이 팔리는 공개 테스트였고, 16주간 특정 잣대를 들이대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불합격과 합격을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 방송을 하면서 술도 엄청 먹었어요. 간절히 되고픈 사람들이 모였는데 누굴 떨어뜨리란 건지."

: "그 당시 난 좀 삐딱하게 바라봤어요. 이젠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을 하는구나. 저걸 꼭 해야 하나 생각했죠."
: "저도 사실 반대했어요. 굳이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죠. 하지만 제가 진행을 맡게 됐고, 결과적으론 그 프로를 통해 많은 방송인이 나왔다는 건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 방송 출신의 친구들이 케이블 방송에서 리포터를 하거나 여러 채널에 많이 진출했어요. 그래서 한 달 전에 그들을 모았죠. 함께 모인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았어요. 전혀 의미 없는 걸 하진 않았구나 생각했죠."

: "그 방송에 만약 오상진 본인이 나갔다면 어땠을까요?"
: "전 떨어졌을 겁니다. 제가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제가 아나운서 시험을 볼 때는 방송 능력시험을 많이 안 봤어요.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국 국장이 면접 볼 때였거든요. 그 분이 딱 1년만 하시고, 이후엔 안 하셨는데, 그 기간에 제가 시험을 본 거죠.

손석희 국장은 사회 현상과, 시사에 대한 견해를 주로 물으셨어요. 당황하긴 했지만 그랬기에 제가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오래전부터 방송을 꿈꾼 건 아니었고, 재미와 의미를 떠올리며 아나운서를 생각해왔어요. 일반 회사에 취직도 했다가 입사를 포기하고 도전했죠. 기술적으로 다듬어진 부분이 없었지만, 그래서 (합격) 된 거 같기도 해요."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 김대오 국장과 만나 아나운서로서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프리든 아니든 아나운서로서 지킬 품격은 있다!

: "그렇게 충실히 길을 걷다가 이젠 프리랜서를 선언했어요. 혹시 아나운서로서 염두하고 있는 롤 모델이 있나요?"
: "딱히 그런 분은 없어요. 앞으로 그런 모델을 만들어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까불거나 망가질 성격은 아니거든요. 단, 저만의 색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회사로 프레인을 선택한 것도 주위에선 의외라고 했죠. 주변에 배우들밖에 없는데 그들과 시너지를 낼 방법을 찾고 있어요."

: "혹시 MBC 프로그램에 복귀할 생각도 있나요?"
: "퇴사 이후 <섹션TV 연예통신>에 제 모습이 잠깐 나왔더라고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때였는데 담당 PD에게 연락해서 고맙다고 했어요(웃음). 뭐 앞으로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요?"

: "결국 프리랜서든 아니든 방송인이라면, 특히 아나운서라면 처신에 대한 문제가 공통적으로 있죠. 일종의 비애라고나 할까요?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
: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감이 있잖아요. 바른 이미지, 조신한 이미지인데 전 그게 잘 맞았어요. 물론 좀 피곤할 땐 있죠. 가끔가다 억울할 때도 있고요. 나쁜 짓을 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바른 삶이 도움이 될 거예요. 집안 분위기도 그런 편이죠. 제가 천주교인데 세례명이 아브라함이에요. 100살까지 애를 낳은 분이에요. 이거 빨리 결혼을 해야지 싶어요(웃음)."

: "유쾌한 바른 청년의 이미지가 개인적으론 좋아요. 이 느낌을 살려서 쭉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8년간 아나운서로 있으면서 오버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또 제작진 분과 함께 고민하고 얘기하면서 방송을 진행한 버릇이 있어서, (케이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금도 그런 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제작진이 MBC 선·후배이자 형·동생 개념이기도 했는데 회사를 나오니까 업무적 관계가 개입이 되더라고요. 이젠 인간관계를 만드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인 거죠. 예전엔 프로그램 진행을 못해도 후배고, 동생이니 봐주곤 했는데, 이젠 그걸 바라는 건 오버인 거고 저의 자리에서 잘해내야죠."

"프리랜서 선언은 또 다른 매듭 묶기"

오상진 전 MBC 아나운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아나운서로서의 삶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 아나운서는 매듭풀기를 잘한다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이정민


: "요즘 케이블 방송에서 진행하는 자신의 방송을 보니 예전과 좀 달라진 모습이 보이나요?"
: "예전엔 MBC만 봤는데 요즘엔 다 챙겨봐야 해서 정신이 없어요(웃음). 시즌별도 챙겨봐야 하고요. 예전엔 제 본방을 보려면 그냥 '11번'을 틀어놓으면 됐는데 이젠 하나하나 챙겨야 해서, 부모님도 헷갈려 하세요. 채널 번호를 문자로 찍어드리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예전엔 공중파만 보셨는데 이젠 케이블도 보시게 됐어요."

: "그나저나 특이한 취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끈 묶기, 그리고 매듭 풀기를 그렇게 잘한다고."
: "(웃음) 어디서 들으셨어요? 전 매듭 풀기를 좋아해요. 군대에 있을 때 전투병이라 텐트를 많이 쳤거든요. 그때 끈 묶기를 많이 했고요. 동네 슈퍼에서 매듭 꼬인 물건을 사면 집에서 그걸 끝까지 푸는 게 좋았어요. (취재진이 준비해간 끈을 가지고 오상진은 즉석에서 여러 매듭을 만들어 보였다) 이건 구명용 매듭이고요. 잘 안 풀리거든요. 케이크 상자에 묶어주는 매듭 푸는 게 정말 재밌는데, 집에 가지고 와서 그걸 살살 푸는 재미가 있어요. 집중하는 기분도 들고(웃음)."

: (매듭 묶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프리랜서 선언도 매듭을 하나 풀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 "제겐 또 다른 매듭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매듭을 묶는 여러 방법이 있잖아요. 새로운 매듭 묶은 기분이랄까요. (회사를) 나와 보니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다양한 기회가 있는 만큼 그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무언가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로 나갈 때 '장도'라고 하잖아요. 중대한 사명이나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길이란 말인데, 오상진 아나운서도 그런 마음으로 좋은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렇게 선배의 인터뷰이가 돼서 영광이에요. 감사합니다."

오상진 MBC 아나운서 오마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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