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7미터짜리 작품, 본 적 있으세요?

나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예술가

등록 2013.06.13 14:31수정 2013.06.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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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휴지 대신 손수건 쓰기 운동을 위한 손수건용 캘리그라피 ⓒ 이영미


두루말이 휴지가 금방 소비돼 한 달에 두루말이 휴지값으로만 수십만 원이 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손수건 쓰기 운동이다. 그 운동을 위해 나는 손수건 캘리그라피를 즐겁게 했다.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손수건 값이었지만, 우리 기관은 캠페인을 통해 이를 보급했다.


공주의 OO병원에 예술치유교육을 시행하면서 가능하면 교육생들이 좀 더 활발한 무용동작을 하기 위해 간편한 티셔츠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 또한 티셔츠 단가가 하나 몇천 원이지만 즐겁게 동행이라는 캘리디자인을 했다.

휴일이었던 지난 6일, 나는 그날 매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여기저기 놀자든가 만나고 싶다는 달콤한 연락들이 왔지만 답조차 어려울 정도로 정말 죽을만큼 힘든 고비를 넘어가던 중이었다. 마음의 바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때때로 유유자적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처럼 숨이 가빠지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한 경우도 많다. 이른 새벽 1시간 먹을 갈면 두세 시간은 쓸 수 있다. 요즘 대부분 먹기계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난 딱 한 번 사용하고 직접 갈아 쓴다. 맷돌을 돌려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 시골엄마들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출근 전에 다 못 쓰고 한 장에 3000원 하는 종이를 열 장쯤 날릴 때도 더러 있다. 퇴근 후 다시 쓰려고 하면, 한 더위에 먹물은 늘어져서 발묵이 곱지가 않아 부득이 홀로 먹물 초상을 치른다. 조침문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조묵의 예는 마음 속으로나마 차려서 마당 한 구석에 곱게 버린다. 벼루를 정성껏 씻고 다시 좌정해서 먹을 간다. 진행은 시작인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쏜살같이 지나가서 자정이 가까워오고, 몸은 정직하게 이만 다리를 뻗고 허리를 쉬고 놓아달라고 신호를 보내온다.

팔전 구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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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대형작품 가로 7미터가 넘고 세로가 2미터 30센티미터인 작품.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작품을 연결시켰다. ⓒ 이영미


현충일, 그날은 가로 7미터와 세로 2미터 30센티미터가 넘는 대형작품을 마무리 하는 날이었다. 정말로 누군가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왜 고생을 사서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월부터 한동안 매일 출근 하기 전에 두세 시간 그리고 매일 퇴근하고 나서 다시 서너 시간씩 진행하고 주말은 평균 15시간을 투자했으니, 살면서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치열하고 뜨거운 삶의 현장이 된 셈이다.


한때 나는 30대 초반에 해마다 1년에 단 한 번씩 시행하는 작가선발전에 도전하던 때가 있었다. 가로 70센티에 세로 140센티의 작품 4개를 오전 9시께 입장해서, 과거처럼 명제가 나오면 네 가지의 다른 글씨체로 오후 6시께 끝나는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청년작가 선발전에 도전했을 때가 있었다. 부실한 몸으로 무거운 벼루와 지필묵을 챙겨들고 새벽 첫차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8년을 거듭했고 8년을 계속 낙방했다.

올라가서 대회장에 들어서면 모두들 동기들끼리 또는 선후배끼리 또는 가족들이 챙겨주며 삼삼오오 있었는데 나는 혼자였다. 처음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으니깐 경험으로 해보자하고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래도 낙방은 쓰라렸고 외로움을 사무쳤다. 서너 번쯤 떨어져보니 대회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나름대로 이리 저리 작품 평가를 받고 보완을 하면서 준비했다. 그리고 꼭 붙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낙방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잘 모르던 때도 있었다. 그만두라고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40세가 넘으면 도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 작가선발전이라 그래도 마음의 바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심정으로 계속 도전했다.

그런데 마지막 해인 마흔 살 즈음에 나는 집을 떠나 내 생애 가장 큰 시련과 고통 속에 놓여졌다. 정신은 황망했고 몸은 안정되지 못해 붓길이 흔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우연히 소식지를 보고 해마다 한여름에 치러졌던 서울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대회가 갑자기 봄으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을 봤다.

아무 준비도 안된 황망한 정신과 흔들리는 붓길을 가지고, 처음에는 올해 도전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나 갑자기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영혼이 나를 깨워서 또 낙방하더라도 괜찮다고 도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또 다시 지필묵을 챙겨들고 올라갔고 대회장소가 예술의 전당 음악당 로비로 바뀐것도 몰라서 1시간 동안이나 한참 헤맨 뒤 늦게 입장했다.

숨을 고르고 명제를 받았을 때 그 명제가 내게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게 했다. '예술가의 정신이 위대한 것은 그 작품이 좋아서가 아닌 도전하는 열정과 영혼으로…' 이런 내용이 들어었는 이문열의 글귀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내 눈물은 벼루의 먹물과 혼합됐고, 붓은 그냥 평소처럼 써내려갔다.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냥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왔다. 마지막 도전이었고 마음의 바다에서 최선을 했기 때문에 홀홀 날아가는 영혼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연락이 왔다. 당선됐으니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 발표전시공간을 만들어준다고. 작품전시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었다. 생은 때론 내 마음에 될 것 같지만 안되는 결과를 낳고, 이번에는 안 될 것 같은 많이 부족한 마음이었는데 결과는 반대였다. 이것은 결과가 사람마음대로 안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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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병원의 무용 교육생들에 주기 위한 티셔츠의 캘리그라피 ⓒ 이영미


생애 가장 큰 이 작품의 마지막 글자를 완성하고 연결하기 위해서 복지관 마루강당도 빌리고, 서울에 보내기 전에 표구 사장님은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종이를 연결해줬다. 초여름이었지만 30도가 넘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대형작품을 풀칠해준 사장님도 고맙고, 근무하는 내 대신 그 큰 작품을 장판처럼 둘둘 말아 고속버스를 타고 국회로 접수시켜준 딸도 고맙다.

무모한 이번의 도전을 통해서 나는 여러 개의 직업 중 에서 정말로 내게 맞는 것은 창작하는 예술가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때론 고개까지 못 들정도로 심신이 고되고 하루 서너 시간도 제대로 못 잘만큼 가파른 길…. 온몸에 파스를 부치고 새벽별을 보고 나가서 새벽별을 보고 들어오는 일을 30대 이후 오랫만에 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해 본 대형작품을 진행하면서 부실한 몸조차 잠시 잊을 수 있음이 행복했다.

위계가 분명한 조직 안에서 하루 10시간 가까이 마치 달리는 경주마처럼 계획과 실적과 평가에 대한 서류 작업으로 점철된 세상. 그 속에서의 작업은 숨가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가끔은 위계 질서 안에서 밑으로 밑으로 추락한 꼴찌가 돼 가끔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나만의 색깔을 가진 예술가다. 아직도 세상 소풍은 많이 남았고 예술가의 길은 배가 고프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수 있는 예술가다. 특별한 예술이 아닌 삶의 현장에 밀착하는 손수건도 만들고, 티셔츠도 만들고, 하늘 아래 크고 작은 모든 물질과 소통이 가능한 예술가다.
#서예가 이영미 #손수건 #동행 #대한민국제헌헌법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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