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애사가 서린 '장릉'

등록 2013.08.03 15:26수정 2013.08.0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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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고도(陸地孤島)의 유배지 청령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자규루,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관풍헌, 무덤이 있는 장릉. 영월은 발길 닿는 곳마다 단종의 한과 넋이 같이한다.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비운의 왕 단종의 애사가 서려 있는 장릉(莊陵)이다. 장릉(사적 제196호)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무덤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17세 되던 해(1457년) 사약을 받고 애환을 품은 채 한양에서 먼 영월읍 영흥리 야산에 묻혔다.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 그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 사람이 바로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였다. 집안 살림을 팔아 수의를 마련하고 야밤에 아들과 함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산기슭에 장사지낸 후 몸을 숨긴 엄홍도는 옛 사람이지만 현대인들마저 본받아야 할 충신이었다. 오랫동안 위치조차 알 수 없던 단종의 묘를 엄홍도의 후손을 통해 찾아내고 묘역을 정비한 영월 군수 박충원도 훌륭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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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입구 풍경 ⓒ 변종만


하나의 왕조가 5백 년 이상 지속된 나라가 조선이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조선 왕조는 27대 왕과 왕비, 추존왕과 왕비의 무덤을 잘 보존했다.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조선왕릉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2기에 달한다.

그중 장릉이 3군데나 있는데 영월의 제6대 단종의 능은 장중할 장(莊), 파주의 제16대 인조의 능은 긴 장(長), 김포의 추존 왕인 원종의 능은 글 장(章)을 써서, 같은 장릉이지만 한자가 다르다.

조선왕릉은 한양에서 100리 이내에 만들어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평지에 있는데 반해 단종의 장릉은 거리가 먼 영월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 단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과 제례 때 사용하는 집기를 보관하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재실이 있다. 바로 옆 낙촌비각에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아낸 사연을 기록한 낙촌기적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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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는 정려각 ⓒ 변종만


정자각으로 가는 길목에 단종의 시신을 거둔 충신 '엄홍도 정려각'이 있다. 이 정려각은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년)에 건립되었으며 훗날 충의공 시호를 받았다. 엄홍도의 충절이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홍살문에 들어서 제일 먼저 만나는 배식단은 매년 단종제향을 올린 후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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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인의 위폐를 모신 장판옥 ⓒ 변종만


장판옥은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268인의 위폐를 모셔놓은 사당으로 정조 15년(1791년)에 건립되었다. 268명의 신위는 신분과 공적에 따라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 여인위로 분류했는데 여성충신이 7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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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각 ⓒ 변종만


단종비각이 이곳이 단종의 능임을 알린다. 비각 안에 빨간 글씨로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朝鮮國端宗大王 莊陵)'이 암각된 비석이 있다. 무려 240여 년 만에 다시 왕으로 인정받은 단종의 능임을 세상에 떳떳하게 알리는 비석이라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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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 변종만


왕릉에 가면 신도(神道)와 왕로(王路)가 있다. 납작한 돌을 깔아놓은 두 개의 길을 참도(參道)라고 하는데 왼쪽의 신도는 신위가 지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의 왕로는 임금이 가는 길로 일반인이 이용한다.

정자각은 단종대왕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한자의 정(丁)자와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한다. 장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정자각이 정면에 있는 다른 왕릉들과 달리 장릉의 정자각은 축면에서 북쪽을 향하고 있어 제례시 옆구리에 절을 하게 되는 것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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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으로 사용하던 영천 ⓒ 변종만


영천은 장릉에서 제사 지낼 때 쓰는 제정(祭井)으로, 영천이라는 비석이 있다. 평소에는 물이 조금씩 샘솟다가 제사를 지내는 한식 때가 되면 물이 많이 솟아 매한식시수출(每寒食時水出)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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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의 멋진 소나무들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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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이 단출한 장릉 ⓒ 변종만


조선왕실의 법도에 따라 모셔진 다른 왕릉들과 달리 장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아 석물이 단출하다. 장릉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들이 마치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 있는 것도 이채롭다. 35년 전부터 찾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고 주변의 풍경이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장릉에서 내려다보는 아래편의 풍경이 볼만하다.
덧붙이는 글 .
#영월 #장릉 #영천 #단종 #엄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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