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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토드' 박효신, 세이렌처럼 관객까지 홀린다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뮤지컬 '엘리자벳', 작년보다 화려하게 돌아왔다

13.08.08 09:29최종업데이트13.08.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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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죽음)를 연기하는 박효신과 엘리자벳을 연기하는 김소현. ⓒ 박정환


작년, 한국 뮤지컬계에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이 몇 개 있다. 그 가운데에는 한국 뮤지컬계에 '황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몹쓸(?) 작품도 있는데,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엘리자벳>이다. <엘리자벳>을 시초로 이 신드롬은 <황태자 루돌프>로 이어진다.

주인공 엘리자벳의 일생은 한 마디로 '행복은 잠깐 뿐인 사랑과 전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인 요제프가 그에게 반해 청혼하고 결혼하는 것이 행복의 전부일 뿐, 나머지는 불행으로 점철되는 일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첫사랑'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엘리자벳은 십대 소녀 때 만난 첫사랑이 하필이면 토드(죽음)다. 외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구하지만 엘리자벳을 품에 안고 나타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 토드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죽음)를 연기하는 박효신 ⓒ 박정환


죽음이 첫사랑이라는 건 엘리자벳의 일생에선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엘리자벳은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 소피가 기다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황실 '시월드'에 입성한다. 조선왕조 시대의 왕비는 태자를 생산해도 직접 수유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왕실의 엄격한 법령 때문이다.

엘리자벳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자마자 시어머니에게 양육권을 빼앗기다시피 했다. 남편 요제프가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면 좋으련만, 마마보이 남편은 그저 어머니를 두둔하기만 하니 엘리자벳에게 시댁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불행한 결혼생활에 숨막혀하는 엘리자벳의 주위에 토드가 맴도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토드는 아이러니한 캐릭터다. 토드는 항상 엘리자벳에게 죽음을 노래하면서 죽음이 이르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정작 엘리자벳이 진정으로 죽음을 바랄 때에는 이를 차갑게 거절하는 청개구리와 같은 심보를 보여준다.

'엘리자벳' 박효신, 가창력은 기본·화려한 춤사위까지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죽음)를 연기하는 박효신과 엘리자벳을 연기하는 김소현. ⓒ 박정환


이 토드라는 캐릭터가 관객에게 매력 있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만큼 마성의 가창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1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복귀한 박효신은 어떤 토드를 연기했을까. 1막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 해도 엘리자벳이 황홀한 신혼의 단꿈을 꿀 때 불현듯 찾아온 토드가 부르는 '마지막 춤'일 테다.

죽음의 천사들과 나타난 박효신은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고음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새댁이 된 옥주현을 유혹하고 있었다. 가창력이 다가 아니다. 밧줄을 타고 죽음의 종을 치는 장면에서는 발라드를 주로 노래한 가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춤사위를 뽐내고 있었다. 리트머스지가 약품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처럼, 가랑비가 소리 없이 옷을 적시는 것처럼 박효신의 토드는 세이렌처럼 엘리자벳 뿐만 아니라 관객의 눈과 귀를 서서히 홀리고 있었다.

1막이 끝난 후 인터미션 중의 오페라하우스 로비는 '효신비어천가'로 감탄사를 연발하는 여성 관객으로 하나 가득이었다. 커튼콜의 열광적인 반응은 '조드윅' 조승우의 커튼콜 못잖았다. 더군다나 8월 중순 이후에는 JYJ 김준수까지 토드 대열에 합류한다. 김준수의 커튼콜을 예술의 전당 객석이 감당하기 위해서는 방음재를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엘리자벳을 연기하는 옥주현 ⓒ 박정환


옥주현 역시 초연보다 발전한 모습을 선보인다. 왕세자빈으로 간택되기 전, 생기발랄한 엘리자벳의 십대는 '옥주현의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녀리다. 하지만 이 미성은 얼마 가지 못한다. 결혼 뒤에 닥친 시어머니와의 극적인 갈등은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옥주현의 목소리에서 미성은 사라진다. 옥주현은 연기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변화를 통해서도 엘리자벳의 굴곡진 삶을 표현한다.

토드는 엘리자벳에게만 자유로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어려서는 엄마 엘리자벳으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루돌프는 자라면서 아버지 요제프와 치열한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어머니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들 루돌프에게 죽음은 엘리자벳의 죽음 못지않은 해방이 아니었을까.

토드가 매력적인 건 '고음 종결자'다운 박효신의 발성 때문만은 아니다. 엘리자벳과 루돌프를 옭죄어 맨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과 토드라는 캐릭터가 극명한 대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야만 토드가 인상적이자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셈이다. 죽어서야 해방되는 이들 두 모자를 보면, 화려한 황실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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