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뺏은 자와 빼앗긴 자의 '숨바꼭질' 속 불편한 얼룩

[리뷰] '숨바꼭질 괴담'을 통해 들여다 본 한국 계급 사회

13.08.12 11:13최종업데이트13.08.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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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바꼭질> 영화 포스터 ⓒ (주)드림캡쳐,NEW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성수(손현주 분)는 고급 아파트에서 부인 민지(전미선 분), 두 아이들과 남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사업가다. 다만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지독한 결벽증은 그를 계속 괴롭힌다.

어느 날, 연락을 끓고 지냈던 형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성수는 형이 살던 아파트를 찾아간다. 형의 행방을 알만한 단서를 찾던 중 집집마다 적힌 이상한 암호를 발견하고, 그것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별과 숫자임을 알게 된다. 이웃집 여자 주희(문정희 분)는 형에 대해 묻자 두려움에 떨며 자리를 피한다. 그런데 성수의 집으로 핼멧을 쓴 괴한이 습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집 옆에 암호가 새겨졌다.

'숨바꼭질 괴담'을 들어본 적 있나요?

2009년 말 서울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집 초인종 옆에 수상한 표식을 발견했다는 주민신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된 적이 있다. 정체불명의 표식을 놓고 방송과 경찰은 원인을 추적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건이 있다. 이런 표식은 2010년 상하이, 2012년 벨기에 등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숨바꼭질 괴담', '도시 괴담', '초인종 괴담' 등으로 불린다.

<숨바꼭질>은 숨바꼭질 괴담을 통해 누군가 내가 사는 곳을 감시한다는 일상적인 공포를 추출한다. 여기에 언론을 통해 익숙한 남의 집에 숨어 사는 노숙자, 남의 아파트에 숨어 지내다가 CCTV에 잡힌 여자 등의 사건에서 나타났던 내가 사는 공간에 알 수 없는 존재가 함께 있다는 두려움을 혼합한다. <숨바꼭질>의 감시와 공존의 공포는 주거공간에 귀신이 존재한다는 <주온>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현대판 흉가 영화들과 거리가 먼, 현실에 기반을 둔 무서움이다.

▲ <숨바꼭질> 영화 스틸 ⓒ (주)드림캡쳐,NEW


형과 동생의 자리 싸움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투쟁으로

<숨바꼭질>에서 사라진 형을 찾는 성수의 모습은 마치 숨바꼭질 놀이와도 같다. 꼭꼭 숨어버린 형과 형의 머리카락이라도 찾으려는 동생. 그런데 하나씩 제시되는 형의 흔적은 그의 행방을 알려주는 소재가 아닌, 성수의 과거와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왜 친자식인 형을 버리고 입양아인 성수에게 재산을 물려주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성수가 지닌 결벽증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밝혀준다.

사라진 형과 성수는 숨바꼭질에서 잡히지 않으려는 자와 잡으려는 술래로 변형된 빼앗긴 자와 뺏은 자의 관계다. 형의 자리를 탐한 동생과 그것에 반발한 형의 복수극으로 치달았다면 <숨바꼭질>은 죄의식과 복수가 만들어낸 자리바꿈한 숨바꼭질 놀이에 머물렀을 것이다.

영화는 철거대상의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가족과 새롭게 지어진 호화스러운 아파트에 사는 가족을 대비시키면서 형과 동생의 자리 싸움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투쟁이란 다른 양상으로 발전시킨다. 이런 변화는 초반에 구축했던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인천이란 도시의 정서와 허름한 아파트가 만든 공간의 질감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집의 소유권을 둘러싼 처절한 사투로 대신한다.

<숨바꼭질>은 아파트를 계급 사회의 상징으로 다루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무관심한 아파트의 속성을 다룬 <아파트> <이웃사람>과 다른 길을 걷는다. 도리어 영화는 여기서 밀려나면 끝장이라는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건드렸던 <독>의 아파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 <숨바꼭질> 영화 스틸 ⓒ (주)드림캡쳐,NEW


하위 계층의 묘사가 아쉽다

신분의 상승이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위로 올라가려는 기대 심리도 컸던 고속 성장의 시대와 달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계급 구조가 더욱 공고해졌다. 한쪽에는 상위 계층으로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열패감이 만연했다면, 다른 쪽에선 삐끗하면 하위 계층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숨바꼭질>은 정체불명의 표식이란 '숨바꼭질 괴담'을 계급 표식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공간에 침입한 다른 존재라는 사건을 계급투쟁으로 변형했다.

문제는 이것이 엉성하게 표출된 점이다. 기본적으로 <숨바꼭질>은 스릴러이기에 긴장감의 조성에 공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현실적인 이야기이기에 설득력 있는 구성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숨바꼭질>은 이야기의 리듬이 들쑥날쑥하고,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지, 집은 왜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 구성에 많은 구멍이 뚫려있고, 설명은 빈약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하위 계층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상위 계층의 것만을 탐하는 존재로 묘사한 접근 자세다. 적어도 영화는 하위 계층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비추지 않을 정도의 균형감은 필요했다. 어떤 반성도, 눈물도 보이지 않고, 유유히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상위 계층과 달리 새롭게 지어진 건물의 더러운 얼룩 정도로 남아 있는 하위 계층의 모습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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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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