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야기 접촉성 피부염의 자국들
김준희
나는 다시 동네에 있는 다른 피부과를 찾았다. 이번에도 진단은 똑같았다. 접촉성 피부염. 도대체 무엇이랑 '접촉'하면 이런 피부염이 생기는 걸까?
"여름에 땀이 나면 외부 요인들이 땀을 통해서 스며들 수 있어요. 정확한 원인은 너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역시 먹는 약과 바르는 약, 주사가 처방되었다. 다만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이 전에 받았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특별히 조심할 건 없는데 술은 드시지 마세요. 술 드시면 확 번질 수 있어요."의사는 이런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평소에 술을 즐기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술은 모든 질병을 악화시킨다.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피부염이 다 나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여름을 보낼까.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생맥주나 막걸리가 생각나는 법인데(물론 겨울에도 생각나지만).
여름이 시작되었다. 거리와 지하철에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나에게 반바지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무릎 아래에 있는 피부염의 자국들, 비록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그런 상처를 드러낸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팔의 상태는 양호했기에 반팔 셔츠를 입는 것에는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그들의 매끈한 다리를 부럽게 바라보기만 했다.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도 저렇게 깨끗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자기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몹쓸 병이 찾아왔는데. 여름에 반바지를 입지 못해서 슬픈 짐승, 피부병 환자여.
더위와 염증에 지친 여름 보내기게다가 덥기는 또 왜 이렇게 더운지. 다리에 약을 바르다보면 무더위와 질병을 동시에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더울 때 염증이 생겼는지. 의사의 말처럼 염증은 여름에 심해지는데. 이렇게 덥고 습한 날씨만 아니라면 피부염이 심하게 번지지도 않았을 거고, 벌써 모두 아물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여름이 가기 전에 피부염을 없애자고 작정했다. 매일 하루에 두 차례씩 약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바르고 술은 가급적 삼가 했다. 피부염이 생겨난 곳에서는 아무런 통증도 없고 가렵지도 않다. 그러니까 순전히 보기에 안 좋을 뿐이지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기에 안 좋을 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다리의 상태를 확인했고, 밤에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리에 있는 상처들 때문에 샤워할 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상처를 건드려서 악화되면 안 될 테니까.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피부염은 많이 줄어들었다. 진물이 배어나오던 곳에서는 진물이 멎고 딱지가 생겼다. 딱지가 떨어진 곳에서는 조금씩 예전의 피부로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조만간 완치가 되더라도, 올 여름에 생긴 피부염의 흔적들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피부과 의사는 이제 먹는 약은 중단하자고 말한다. 그만큼 상태가 완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처음 피부과를 찾은 때로부터 무려 세 달이 지났다. 여름 내내 피부염을 달고 살면서 더위와 싸우고 염증과 싸웠던 여름이었다. 도저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름이 될 것만 같다. 그 여름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무더위도 곧 끝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