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으면 눈물 나는 소나무, 사연은 이렇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 30]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 소나무 숲

등록 2013.09.27 14:17수정 2013.09.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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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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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묵었던 어가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듯한 절묘한 모양새의 청령포 소나무들. 사실은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한 몸짓이다. ⓒ 김종성


이 땅의 대표적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명목) 소나무는 씩씩한 기개와 지조, 충절을 상징한다. 명목 소나무의 장구한 수명, 크고 늠름한 자태, 아름다운 조형미는 그에 어울리는 여러 이야기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소나무에 대한 상징성과 감성이 전혀 다르게 전해지는 소나무 숲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청령포(淸冷浦) 소나무 숲이 그곳이다.


'제 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 부문 대상을 받은 소나무 숲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백 년 묵은 금강송 노거수가 살고 있다. 비운의 임금 단종(端宗)의 한과 그에 대한 기억을 함께 간직하고 있어 방문객에게 특별한 감흥을 전해준다.

영월군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십여 분 달려 청령포 나루터 앞 매표소 입구에 내렸다. 험준한 산과 둥글게 물돌이를 이루며 돌아가는 강으로 둘러싸인 범상치 않은 풍경의 청령포와 소나무 숲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나루터 언덕에서 바라보는 청령포 경치는 가히 절경이며 그 경관의 주인공은 단연 소나무 숲이다.

잠깐이지만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청령포는 나무들이 인간의 무분별한 벌목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가기에 더 없이 좋은 천혜의 섬이다. 닿을 듯 쉽게 닿지 않는 탓에 조선시대  숙부인 세조로부터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 임금이 이곳으로 유배 오기도 했다.

육지고도(陸地孤島)의 섬 아닌 섬,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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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험준한 산들과 둥글게 흘러가는 강으로 둘러쌓인 천혜의 섬아닌 섬, 청령포와 오른편의 소나무 숲.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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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허리굽은 노송이 담장 너머로 단종이 묵었던 어가를 향해 마치 절을 하듯 누워있다. 덕분에 '충절의 소나무'란 이름을 얻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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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청량한 기분이 드는 울울창창한 청령포 소나무 숲. ⓒ 김종성


청령포 매표소에서 상주하며 근무하고 있는 문화 해설사와 함께 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갔다.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문화 해설사와의 동행은 방문 전 미리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 비용은 없다. 배는 따로 선착장도 없이 주먹 만한 자갈밭에 여행자를 내려 준다.


강의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렇지 예전엔 자갈밭이 온통 강물이었다고 한다. 정말 천혜의 섬 아닌 섬 같았겠다. 게다가 삼면이 강으로 둘러있고 뒤편은 도산(刀山)이라 불리는 깎아지른 절벽인 육륙봉이 있어 생전에 단종은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 표현했다 한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는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거북이 등껍질같고 장수의 철갑옷 같은 소나무 줄기의 모습이 웅장하다. 역사의 슬픈 사연이 담긴 유배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상쾌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청령포 입구로 들어서면 소나무 숲 속에 기와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유배당한 단종이 묵었다는 거처인 어가(御家)로 길이 이어진다. 어가 주변으로도 늠름한 자태의 키 큰 소나무들이 초병처럼 서 있다. 어가 현판엔 십대였던 어린 단종이 직접 썼다는 한시가 적혀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왕(세종)의 손자로 태어난 좋은 팔자도 잠깐, 태어난 지 삼일 만에 어머니(현덕왕후 권씨)를 여의고 할아버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젖을 먹고 자랐다. 12살에 아버지 문종까지 병사하자 졸지에 고아가 된 단종. 17살에 숙부에게 쫓겨나 유배 온 지 넉 달 만에 죽임을 당한다.

단종이 강등될 때 두 살 위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도 '부인(夫人)'으로 강등되어 서울 동대문 밖에서 시녀들이 구걸해온 양식과 염색일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며 평생 영월 땅을 바라보며 한을 달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찾기 힘든 기구한 삶이요, 운명이기도 하다. 식구들과 함께 문화 해설사의 얘기를 같이 듣던 한 아주머니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휴지를 꺼내든다.

1457년 유배지 청령포에서 머물렀던 단종은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는 바람에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결국 유배 당한 지 사개월여만인 10월 24일 유시(酉時 : 오후 5~7시)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관풍헌으로 갖고 온 사약과 공생 복득의 교살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정권욕, 권력욕에 눈먼 인간들의 만행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잔인하고 비정하다.

굽은 충절의 소나무, 신묘한 기분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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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층암절벽과 능선에 살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따라 산책로가 잘 나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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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뒤편 절벽위에서 활엽수들과 경쟁하며 살고 있는 야생 소나무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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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뒤쪽 층암절벽의 능선길에서 보이는 한양 방면의 서강 풍경. ⓒ 김종성


문화 해설사가 알려주어서 숲 풍경이 한결 새롭고 흥미롭게 보이기도 했다. 단종의 어소(御所)쪽으로 가지를 틀어 담을 뚫고 들어와 담장조차 거기에 맞추어 쌓을 수밖에 없게 한 허리 굽은 충절의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단종이 묵었던 어소 쪽으로 인사를 드리듯 일제히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닌가.

왠지 신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소나무들이 몸을 기울이는 이유를 들으니 조금은 과학적으로 이해가 간다.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양지를 찾기 때문이라는 것. 소나무가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양수(陽樹)나무임을 볼 때 수긍이 간다.

청령포의 소나무들은 이렇게 섬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최고의 소재이다. 아주 고목이 되어버린 관음송이라 불리는 키 큰 소나무는 하나의 문화재가 되었다.

숲길은 자연스럽게 청령포 서측의 층암절벽 위 능선 길로 이어진다. 단종의 자취가 남아있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는 목책 산책로 길이다. 어쩌다 바람에 실린 씨앗이 흙이 부족한 절벽에 심어졌는지, 그곳에서 힘겹게 삶을 견디는 소나무도 눈길을 끈다.

군계일학의 천연기념물, 관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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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두 줄기 나무 사이에 앉아 슬픔과 시름을 달랬다는 관음송 ⓒ 김종성


청령포 숲 한가운데에 군계일학처럼 솟아있는 크고 장대한 금강송이 서 있다. 기운이 뿜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범상치 않은 나무다. 괜히 천연기념물(제 349호)로 지정된 게 아니구나 싶다. 600여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이 노거수(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관음송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관음송은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있다. 이 소나무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단종의 오열을 들었다고(音)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작은 카메라에 담기 힘든 이 큰 나무는 키가 30m로 우리나라 소나무 가운데에 가장 크단다. 단종이 청령포를 찾은 때가 1457년이니 그때쯤엔 이 관음송은 채 100년도 안 됐으리라. 실제로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 소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말을 타듯 올라가 슬픔을 삭이고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이 늙은 소나무는 단종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시름을 나누던 친구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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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로 뻗어나간 관음송의 수피가 거북 등껍질같고 용의 비늘같기도 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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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소나무들이 오래오래 무사히 살 수 있도록 해준 '금표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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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밑둥에서 산란을 하고 있는 암컷 사마귀 한마리. ⓒ 김종성


정이품송과 세조 임금처럼 관음송과 단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이다. 단종을 지켜본 소나무, 세조의 법주사 행차 길에 연이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들어 올린 소나무. 묘하게 대비되는 두 소나무를 생각해본다.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조의 순행 길을 도와주었던 정이품송은 가지가 부러지는 등 수난을 당하는 데 비해 단종의 한을 품고 자라는 관음송은 노거수(수령이 오래된 나무) 임에도 생육이 왕성하고 전형적인 금강송 혹은 황장목 소나무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청령포 해설사에 의하면 대관령이나 삼척, 울진 같은 오지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솟구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큰 소나무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기에 이처럼 장대한 나무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단종의 무덤,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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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왕릉들과 달리 산의 언덕마루에 있는 단종의 무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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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엔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신 곳도 함께 있다. ⓒ 김종성


조선시대에 왕릉은 도성 10리 밖, 100리 내에 조성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유일한 능이 청령포 인근의 장릉(莊陵)이다. 단종이 묻힌 장릉(사적 제196호)을 돌아보는 것도 청령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조선 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장릉에 도착, 단종이 묻힌 능으로 걸어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들이 빽빽한데 청령포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이 모두 몸을 뒤틀어 능을 향해 절을 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청령포 관음송의 애절한 가르침을 받았을까. 이곳 소나무들도 단종애사를 아는 듯 했다.

단종의 주검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도 없게 강에 띄워졌다. 세조의 서슬 퍼런 후환이 두려워서일까, 아무도 시신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때 영월의 호장(戶長 : 지금의 읍장)인 엄흥도가 어둠을 틈타 강에 뜬 단종의 송장을 몰래 건져서 동을지산에 묻었다.

그것을 지켜본 일가붙이들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앞을 다투어 말렸는데도 듣지 않고 "선(善)을 행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하였다. 그 뒤 엄흥도의 충절을 높이 여긴 우의정 송시열이 현종에게 건의하여 엄흥도의 자손에게 벼슬을 주었고, 영조 때는 죽은 엄흥도에게 공조참판이라는 벼슬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는데 중종(中宗) 11년(1516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아 묘역을 정비했다. 그리하여 봉분을 갖추게 된다. 250여 년이 지난 숙종 때 와서야 비로소 단종으로 복위되었으며, 무덤도 장릉이란 능호를 갖게 된다.

장릉은 임금의 능임에도 여느 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다른 능에는 없는 특이한 점도 있다. 세조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 꿋꿋이 싸우다 죽은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는 제단인 배식단(配食壇)을 설치한 것이다.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대표적으로 정려비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을때, 관까지 준비해 장례를 치른 충신 엄흥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비각이다. 이런 예를 근거로 영월 사람들은 영월이 '충절의 고장'이라는데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 참, 장릉은 향토문화제가 거행되는 유일한 왕릉이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ㅇ 청령포 관광안내소 ; 033-374-1317
#청령포 #관음송 #단종 #영월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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