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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뫼비우스 띠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

영화 <뫼비우스> 리뷰

13.09.06 11:07최종업데이트13.09.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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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계속해서 서랍에서 총을 뺐다. 넣다를 반복하는 아버지(조재현)에게서 갈등이 엿보인다. '살고 싶다'와 '자신이 죽어야 비극 또한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자신의 외도로 시작된 불행은 아들(서영주)에게까지 전염되고 결국 아들은 성기가 절단된 채 불구인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를 뜨겁게 달구었던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에 대한 것이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잘 드러난 장면 ⓒ NEW


가급적 전에 나온 분위기의 신을 넣지 않으려고 하는 김기덕 감독답게 매번 새로운 소재와 작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관객에게 넌지시 건넨다. <뫼비우스>에서는 부성애를 보여주기 위해 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날것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성기 거세와 그 치료법에 대한 자료들이 첨부되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여성 관객들은 조금은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에게 있어 성기 거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 영화를 본다면 말이다. 그만큼 성기 거세가 지닌 상징이 영화 전반을 뒤덮는다.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신의 외도의 끝이 가족 윤리를 거스르는 비극으로 연결되게 될 줄을 말이다. 알았다면 그는 아내(이은우)의 외로움을 진작에 헤아렸겠지. 극 초반에는 외도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가볍게 스케치하는 것처럼 지나가지만 작품이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감독은 아내의 대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섬세하게 그 아픔을 차곡차곡 열어 보여준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향한 분노를 아들을 통해 풀어내고, 그 대가로 아버지로 불리우는 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거세해 아들에게 준다. 돌아온 탕아처럼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 앞에 펼쳐진 것은 거세된 성기를 가진 남편과 남편의 성기를 이식받은 아들 그것도 자신에게만 성적 흥분을 느끼는 서글픈 현실만이 그녀를 맞이한 것이다.

겨우 남편의 맘을 잡았다고 생각해 실낱같은 희망을 지닌 그녀에게 이 모든 상황은 비극이었다. 그녀는 남편 때문에 울고 아들 때문에 운다. 이처럼 불쌍한 여자가 또 있을까.

영화에서 그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싸움을 할 때의 신음소리, 거세된 성기 대신 성욕을 풀어주기 위해 자해할 때 나는 신음소리 뿐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화가 필요한 신을 생략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독려한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 아내의 남편에 대한 사랑, 질투,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파멸로서 증명된다. 극 초반에 총이 등장할 때부터 비극은 암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 <뫼비우스> 포스터 사랑의 뫼비우스 띠를 잘 보여준다. ⓒ NEW


가족과 성기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어쩌면 관념상 이 두 단어를 함께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윤리를 거스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뫼비우스>에서 이 두 단어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것은 관념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엮어낸 덕분이다.

아내가 외도한 남편의 성기를 거세하려고 하는 것도 사랑이 전제되었기에 나온 것이며, 아들이 집안의 비극에 속죄하는 느낌으로 또 다시 자신의 성기를 거세하는 행위 역시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안타까움이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전달한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부성애를 나타낸다.

감독은 이 모든 관계의 사랑을 말해주고 싶어 성기라는 조금은 금기시되는 단어를 갖다붙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말미에 가면 가족들의 사랑의 뫼비우스 띠 때문에 온몸이 아파온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곁가지로 만들어진 또 다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 또한 외로움에 목마른 여자다. 남자의 외도에 동참한 여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제 그 남자를 잃었고 또 다른 상대를 갈구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다수의 성적 폭력일 뿐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감독이 그녀를 위해 할애한 장면은 그녀의 외로움을 보여주기 보다는 다른 의도에 초점이 가 있다. 성기가 거세된 아들의 대안의 한 예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 흡사 사물로 전락되어 그녀는 사람들 앞에 전시된 느낌이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유쾌한 블랙코미디'라는 평이 있는 반면 전작 <피에타>에 비해 '<뫼비우스>는 가족, 욕망 그리고 성기에 대해 물으면서 도덕, 하이 컨셉트 그리고 숨어 있는 철학적 의미들을 논의 하지만 그것을 한 곳으로 정착시켜주는 튼튼한 내러티브가 없다'는 평가를 듣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SNS에도 올려 놓았습니다.
뫼비우스 김기덕 서영주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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