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운동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다
반미민족주의 버리고 진짜 좌파할 때"

[연쇄인터뷰-이석기사태와 진보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등록 2013.09.09 08:42수정 2013.10.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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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의 연쇄인터뷰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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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주대환(60)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 이희훈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의혹 사건(이하 '이석기 사태')이 터지던 날, 오랫동안 진보정당운동에 헌신해왔던 주대환(60)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에게는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아 주사파운동의 마지막 장이 왔구나."

주사파 이론의 대부로 알려진 김영환(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집행위원)씨가 대학가에 '강철서신'이라는 일련의 팸플릿을 뿌렸던 지난 86년부터 '주사파'로 불리는 학생운동그룹이 생겨났다. 그러니 주사파운동이 2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주사파운동이 이석기 사태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주 대표의 판단이다.

"녹취록에서 그들의 불안감과 고립감, 동요가 읽혀졌다"

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북촌학당'에서 만난 주대환 대표는 "사실 27년의 세월이 좀 길었다"며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거의 끝나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이석기 사태를 접한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주사파가 학생운동을 장악하면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주사파의 사고 프레임으로 짜인 사람들이 한해 수 천명이 쏟아져 나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묻지만, '그 많은 주사파들이 다 어디로 가고 그것밖에 안 남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주사파의 위기는 최근 언론에 공개된 '5·12 모임 녹취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 주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녹취록 전문을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거기에서 그들의 불안감과 고립감, 마음의 동요가 읽혀졌다"며 "5·12 모임은 동요하는 조직원들을 다잡고 격려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우리는 흩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종교집회 분위기였다"고 분석했다.

"이석기 그룹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모임을 자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부흥회를 해서 사상무장을 다시 하자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녹취록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면) 총을 만들고, 철탑도 폭파시킬 수 있다, 한놈이라도 찔러놓고 죽겠다는 등 굉장히 무서운 얘기를 서로 주고받는다. 긴장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종말이 임박했다는 기분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런 가상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다. 말만 하는 것이다. 자기들끼리의 분위기나 기분이다. 그것을 통해서 긴장된 전사나 혁명가로서의 분위기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주 대표는 "북한체제가 어렵기 때문에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남한 주사파들도 마음이 수세적이다"라고 지적한 뒤, "국정원에서 내세운 내란음모는 전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라며 "이것은 하나의 소 섹터화 한 종교집단의 집회였다"고 꼬집었다.

"그들을 감싸주고 덮어준 사람들이 더 나쁘다"

주 대표는 통합진보당 등 진보진영 일각에서 '사상의 자유'를 들어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는 흐름에는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자기 사상을 정확하게 밝혀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들이 사상의 자유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좋다. 그들이 원내에도 진출하고, 지방의회에도 공직자를 많이 진출시켰는데 자기 사상과 정체를 다 밝히고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속이고 선택받은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저는 20년 전부터 정직하게 너희들의 주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래야 그것이 틀렸는지 맞는지 대중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특히 주 대표는 '진보운동 공동책임론'을 제기했다. 80년대의 역사적 산물인 주사파운동이 진화하지 못하고 27년의 일그러진 역사를 이어온 데는 진보진영의 침묵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석기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을 몰랐나?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놀라는 척하는 정치인들, 지식인들, 언론인들이 더 밉고 나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유지됐는데 몰랐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지금 정치계와 학계, 언론계 등의 중추로 활동하고 있는데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나? 저는 그들을 감싸주고 덮어주고 모른 척했던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신질환적인 사고에까지 이르도록 한 데는 그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 그것 때문에 야권이나 진보가 중요한 순간마다 상당한 데미지(damage)를 입어왔다."

주 대표는 "국민을 속이려는 시도가 완전하게 성공하지 못했다"며 "일부 인사들이 원내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 총선과 대선의 결과를 보면 크게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통합진보당 내부도 크게 흔들릴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폭력사태에서는 가면이 벗겨졌고, 이번에는 실제 얼굴 피부까지 찢겨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까지 폭로됐다. 그로 인해 제가 보기에는 진보당 내부뿐만 아니라 경기동부연합이나 울산연합에서도 다수의 이탈자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진보당이 제1야당인 울산·창원·광주의 지방의원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거의 다 낙선할 것이다."

"주사파운동은 남한 민주화운동에서 나온 자식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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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두 얼굴을 알고 있으면서 한 얼굴만 본 척하고, 가면 뒤 얼굴을 국정원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옛날 민주화운동의 동지라고 감싸주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 이희훈


하지만 주 대표는 이석기 사태를 '주사파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주사파운동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라는 상황은 무엇으로 시작됐나? 서울의 봄으로 시작됐다. 국민들은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이미 '우리나라도 민주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전두환이 유신체제보다 더 후진 군사독재체제를 어거지로 7년간 연장하려다 보니 광주에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친 일이 일어났다. 그런 80년대에 전두환이라는 군사독재를 물리쳐야 하는데, 지금 보수의 주류를 차지한 많은 사람들이 수수방관했다. 그럴 때 어린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어린 학생들이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다보니 계속 좌절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런데 어느날 북한이라는 우군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영환이 북한이라는 우군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사파운동은 그렇게 아픈 역사의 산물이고, 그들도 아픈 역사의 자식이다."

주 대표는 "주사파운동은 남한 민주화운동의 한 분파로서 나왔고, 남한 민주화운동이라는 태내에서 나온 자식의 하나다"라며 "북한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진보진영에 뼈아픈 사실은 주사파운동의 마지막 장이 국정원에 의해 넘겨졌다는 점이다. 이에 주 대표는 "그렇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라며 "진보운동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보운동은 이 순간부터 정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동안 이쪽 동네 사람들은 자기 정체를 숨기고 속였다. 정체를 다 드러내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으면 2~3%의 지지를 받았겠지만, 원내진출은 좀 어려웠을 것이다. 자유롭게 활동하되 자기 정체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민주니 진보니 하지 말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는 얘기와 바깥에 나와서 사람들하고 하는 얘기가 다르다. 정확하게 두 얼굴이다. 완벽하게 두 얼굴로 생활하는 것이 오래되다 보니까 본인들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완전히 하나의 습관이나 문화가 돼 버렸다. 이래선 안된다. 정직해야 한다."

주 대표는 "그들의 두 얼굴을 알고 있으면서 한 얼굴만 본 척하고, 가면 뒤 얼굴을 국정원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며 "옛날 민주화운동의 동지라고 감싸주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야권이 반미민족주의 버리지 못하면 주사파와 같다"

주 대표는 "진보운동이 국민 앞에 정직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 이어 '반미민족주의 폐기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민족주의는 지성을 마비시키는 독약이다"라며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주사파와 진보·야권의 주류가 공유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반미민족주의다. 이는 진보는 곧 반미라는 생각이다. 반미를 진보의 아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극단적으로는 '미국은 악, 북한은 선'이라고 보는 주사파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반미가 진보냐? 진보는 반드시 반미여야 하나? 이런 문제를 던지고 싶다. 진보진영은 이제 반미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큰 프레임에서 주사파와 같다."

'5·12 모임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 진짜 가짜를 가리는 유일한 기치는 자주다"라고 말했다. 이에 주 대표는 "그 '자주'가 곧 반미다"라며 "그들의 눈으로 보면 북한은 자주국가이고, 남한은 미국에 의존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은 선, 미국은 악'이라는 논리로까지 나아간다"고 지적했다.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사회로 나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프레임(반미민족주의)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스스로 혼란스러워한다. 애를 미국에 유학 보내고 자기는 기러기 아빠로 열심히 살면서 반미파다. 이러면서 생각이 뒤죽박죽 됐다. 그 세대에서 이렇게 일관성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사람들이 주사파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처지가 못된다."

주 대표는 "'진보는 곧 반미'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진보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자꾸 놓치고 있다"며 "복지국가와 관련한 정책들을 실껏 주장해도 민족 이슈가 터지면 놓쳐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통일까지 이루기 위해 진보가 할 역할이 많다"며 "80년대식 사고방식,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에서 보수정당,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세금을 누구에게 얼마큼 걷을 것이냐, 걷은 세금을 어디에 먼저 쓸 것이냐를 두고 서로 경쟁한다. 이런 경쟁이 별 차이가 없다고? 아니다. 굉장히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 보수도 그동안 정책경쟁을 할 만큼 상당히 많이 진화했다. 오히려 진보와 야권의 준비가 덜 돼 있다. 이렇게 경쟁할 준비가 덜 돼 있으니까 주로 상대를 친일파로 몰거나 반미시위(이슈)에 집중한다.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에게 실언하고, 김광진 의원이 백선엽을 친일파라고 하면 도움이 되겠지 싶어도, 결국 (구시대적인 반미민족주의) 프레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미국 광우병 쇠고기, 한미FTA,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이 반미민족주의를 동원해 보수세력을 꺾어보려고 한 것들이다."

주 대표는 "진보와 야권이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북한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반미민족주의 프레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진보 프레임에서는 그것(북한인권문제 제기 등)을 잘 할 수 없으니까 반미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서 말하는 진짜 좌파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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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대표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회운동이나 정치에서 진짜 좌파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이희훈


주 대표는 "진보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며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진보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각하고 악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노인빈곤,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선진국형 진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무엇을 했나? 노동자 내부에서 임금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해왔다. 참 탄식할 노릇이다. 이제는 노동운동부터 많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는 굉장히 좌파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주의운동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원래 하는 좌파 있지 않나?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도 할 때가 됐다. 민주화나 민족주의 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회운동이나 정치에서 선진국에서 말하는 좌파를 할 때가 됐다. 진짜 좌파를 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주 대표는 "주사파운동을 해온 그들도 시대의 자식이고 아픈 역사의 자식이기 때문에 외계에서 온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며 "우리 사회가 같이 치유해야 할 하나의 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아주 고립된 종파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모두에게 힐링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제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주 대표는 80년대 최대 노동운동조직이었던 인민노련(인천지역역민주노동자연맹)의 정책실장, 한국사회주의노동당과 한국노동당의 창당준비위원장을 거쳐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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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가회동 '북촌학당'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중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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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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