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5년간 진보정당 주변화˙자폐화
진보정당 재건 안되면 새누리 장기집권 가능성"

[연쇄인터뷰-이석기 사태와 진보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록 2013.09.22 10:22수정 2013.10.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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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 연쇄인터뷰를 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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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지난 16일 오후 늦게 인터뷰를 위해 성공회대 연구실을 찾았을 때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종북 프레임을 만든 조승수 전 의원은 운동사적 범죄자다"라고 쓴소리부터 쏟아냈다.

"종북 프레임은 공안의 논리가 진보공동체 내부의 프레임으로 이입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범죄라고 생각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강하게 반대했던 조 교수에게 "친북세력과 결별해야 한다"며 선도탈당했던 조 전 의원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분당한 이후 진보정당이 더욱 고립되었다는 판단때문에 조 전 의원을 향한 비판에는 시퍼런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운동을 연구해온 학자답게 이석기 사태를 거시적이면서 냉철하게 짚어나갔다.

"진보당 세력, 제도화의 이중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아"

먼저 조 교수는 "전 세계에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제국주의 형태로 관철시키고자 했던 제1차 세계화에 대항하는 두 가지 대안적 운동은 사회주의운동과 반외세나 반제 민족해방운동, 반외세 급진민족주의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제1차 세계화의 모순에 대항하는 두 가지 대안적 흐름이 한국에서는 NL(민족해방파, 자주파)과 PD(민중민주파, 평등파)로 표현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문제되는 NL과 PD 이념은 제1차 세계화에 대항하는 두 가지 급진적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 위기에 처하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대안적인 세계화 흐름이 운동에서 체제와 국가 논리로 전환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가장 극적으로 얘기하자면, 사회주의운동의 실패는 89년 동독 붕괴와 91년 소련 붕괴로 나타났고, 반외세 급진민족주의운동의 실패는 2011년 초 리비아 붕괴로 나타났다. 즉 19세기 중후반 세계사의 급진주의 기획을 대표하던 두 가지 흐름이 붕괴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세계사의 변화를 성찰하면서 NL과 PD에 접근해야 한다"며 "왜 사회주의운동과 급진 민족주의운동이 체제로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붕괴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투쟁에 의해 성립된 국가사회주의체제와 반외세 민족주의체제가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투쟁에 의해 타도되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정당의 위기도 이러한 세계적 대안운동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어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성찰해야 할 지점은 급진세력이 제도화되면서 나타나는 '제도화의 이중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라며 "제도정당이 되는 순간 보수정당이나 공안기관은 제도정치의 일반적 행위윤리와 행위규칙에 비추어 운동정당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민주화의 진전으로 제도정치 공간이 확장되면서 2004년 제도정치에 진입했다. 비합법·반합법 진보정당이 합법정당으로 진출하고, 더 나아가 원내 제3당이 된 것은 엄청난 진전이었다. 하지만 제도화는 또다른 도전을 요구한다. 제도정당으로써 행위규범과 행위윤리를 요구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이 5․12 모임에서 얘기했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비합법·반합법그룹에서 많이 하던 얘기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원내 제도정당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제도정당의 일반적 규칙에 의해 매도되거나 비판받거나 공격받을 수 있다."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 세력은 이 부분을 충분하게 성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들의 실제적 행위는 비합법 운동을 하던 흐름이었는데, 그것이 제도정당의 공식모임에서 이루어졌다"라며 "이것이 원내에 진입하기 이전의 비합법 시절처럼 '이거 운동인데 왜 비판하냐? 공안기관의 탄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MB정부 5년간 진보정당의 주변화·게토화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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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또한 조 교수는 "과거 비합법 운동을 할 때는 누가 공안기관과 자본세력을 상대로 헌신적으로 싸울 것인가 하는 투쟁 자체가 도덕성의 근거이고 존재 의미였다"며 "하지만 합법화된 원내정당이나 제도정당 안에서는 일반민주주의의 규칙이 요구되는데 거기에서 패권주의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통합진보당 다수세력이 그것을 비합법 운동으로 열심히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가장 헌신적인 자기희생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운동 목표를 위한 노력이 헌신적인 희생이 되지 않고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됐다. 그런 점에서 패권주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반미 자주파 세력이 제도화의 이중성을 고려하면서 스스로를 개방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조 교수는 "패권주의가 문제가 된 것은, 비합법적인 주도그룹이 있고 합법 제도정당내의 공개그룹이 있는데 제도정당내 공개적 의사결정 과정 뒤에 '비하인드 주도세력'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공개화된 제도정당의 공적 과정을 통해 결정된 것이 비하인드 주도세력의 의견과 상충되면 바로 뒤집힌다"고 지적했다.

"반미 자주화세력, 경기동부연합이 제도적 합법정당으로 행위할 때 요구되는 행위윤리와 행위규칙을 전략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용론적 견지에 많이 서 있었던 것 같다. 비합법 역량을 기반으로 합법역량까지 활용하는 세력으로서 활동했다. 그런 전술적 판단 위에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석기 그룹이 정당운동을 전술적 차원에서 하고 있다"는 조승수 전 의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조 전 의원은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중요한 결정을 당내가 아니라 당밖에서 결정한 뒤 그것을 당내에서 관철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왔다"며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합법)정당을 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 반미 자주파, 경기동부연합은 MB정부 5년 동안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전략적 방침의 오류가 누적되면서 철저하게 고립되고 대중으로부터 유리됐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보수세력이나 공안기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장 '종북'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세력이다. 그만큼 급진적이고 도전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세력이다. 그런 세력일수록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MB정부 5년 동안 그들은 진보공동체로부터 분리됐다. 기존의 반독재운동이나 87년 이후의 민주주의운동 속에서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었던 그들은 진보공동체의 다른 분파들과 동맹하면서 존재해왔는데 그것이 철저히 해체되고 지금은 고립된 상태에서 이석기 사태를 맞고 있다."

조 교수는 "제1차 대안세계화와 제도정당이 가져오는 이중적 효과를 성찰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진보공동체 혹은 진보정당내 다른 구성원과 분리되지 않도록 성찰적 자기개방화가 있어야 했다"며 "그렇지 못해서 결국 자폐적 상황까지 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MB정부 5년 동안 반미 자주파, 경기동부연합, 통합진보당 주류집단이 자기성찰을 못함으로써 자폐성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민주정부 10년에서 보수정부 시대로 이행한 것은 87년 이후 20여 년 지속된 민주화시대의 종언이다. 포스트 민주화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민주화시대의 종언으로 인해 반독재 중도개혁정당의 헤게모니와 리더십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진보정당에서 보면 이는 주요 경쟁집단의 주도권 약화이고, 자신에게는 대대적인 약진의 시기다. 그런데 주체적 오류의 누적으로 MB정부 5년 동안 대약진의 시기가 아니라 대고립의 시기였고, 심지어 진보정당의 주변화, 게토화로까지 나아갔다. 통합진보당 세력이 자기성찰과 자기개방화를 통해 MB정부 5년 동안 고립화와 분리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조 교수는 "(이석기 그룹 등의) 올드(old, 낡은)한 급진 민족주의적 인식은 평등파와 교류하면서 혁신될 수 있다"며 "그렇기 위해서는 한 당 안에서 삼투해야지 분리돼 있으면 삼투할 기회가 없고 (앞서 언급한) 자폐성이 강화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진보진영 일부에서) '빨리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통합진보당과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가는데 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보공동체마저 공안기관 발표를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러"

조 교수는 "그런 점에서 반미 자주파는 자주파대로 평등파는 평등파대로 주체적 반성을 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공안기관의 탄압이고, 대단히 어렵더라도 철저히 투쟁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일심회 사건 때와 똑같은 논리다"라고 비판했다.

"공안기관의 탄압이고, 공안기관의 논리에 삼투된 다른 진보공동체 구성원의 적대적 공격이라고 인식하는 패턴이 동일하다. 그렇게 외재적 탄압 논리로만 보면 전체 상황을 못 본다. 그것은 일종의 자폐적 인식이다. 이러한 자페적 인식은 내부집단과 외부자의 인식의 괴리가 대단히 큰 상태까지 왔음을 의미한다. 현재 통합진보당내 경기동부연합, 반민 자주파와 외부의 인식 차이가 매우 커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진보정치 공동체 내부에서도 통합진보당과 비통합진보당의 인식 차이가 엄청나게 넓어졌다는 것을 성찰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인식한다면 지금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진단과 관련해 조 교수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었다. 2002년 "이회창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권영길 후보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이정희 후보의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의 효과가 상당했다고 평가했지만,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권영길 후보의 효과가 90% 플러스, 10% 마이너스였다면, 이정희 후보의 효과는 50% 플러스, 50% 마이너스일 것이다. 왜 이렇게 두 후보의 말이 주는 효과가 달라졌을까? 왜 두 후보의 말을 바라보는 도덕적 인식이 달라졌을까? 이것을 성찰적으로 보면서 대안적인 경로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조 교수는 "예전에는 공안기관의 발표 자체를 믿지 않는 대중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대중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특히 진보공동체에서 이것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에 애정을 가진 진보적 대중조차도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해서 공안탄압을 불러오느냐?'고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촛불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고강도 안보정치로서 이석기 사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공안탄압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공안탄압 논리가 갖는 대중적 효과가 달라졌다는 데 우리의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교수는 "5․12 모임 녹취록에서 '무기를 들어라', '전시태세를 갖추어라' 등을 언급했는데 이것까지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것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옹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녹취록에 드러난 '반미 자주 노선'에 대해서는 "지금도 급진 민족주의적 운동의 흐름으로 논의되는 것들이다"라면서도 "그것을 현대화하지 못하고 성찰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미 자주파세력도 이제는 북한을 국가라는 실체로 바라봐야 한다. 북한은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실체다. 북한의 외교적 언술, 남한과 미국에 하는 외교적 언술, 대남전략 언술 등이 다 다르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은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겠다고 천명한 시점에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대미협상용 언술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북한을 그렇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의 어떤 방침을 남한 반미 자주파세력이 한 고려요인으로 생각하는 것과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남한의 반미 자주파 세력이 (북한의 방침을) 전략전술적으로 판단하는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야 할 전략적 방침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진보정당 재건 안 되면 새누리당 장기집권체제로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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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조 교수는 "87년부터 지금까지 진보적 대중운동의 성장, 그것을 배경으로 한 진보정치세력의 성장, 이 진보정치세력이 성장의 위협받으며 중도개혁정당의 혁신적 발전, 집권 위협에 자극받으면서 만들어지는 보수정당의 건강한 변화라는 선순환구조가 있었는데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붕괴됐다"고 진단했다.

"그로 인해 진보대중운동이 어려움에 처했다. 진보정당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세력화해야 할 정도로 자기 기반이 붕괴된 상태다. 그래서 이 선순환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세력, 새로운 시민사회세력이 연합해서 중도개혁정당을 재건하고, 그것과 경쟁하는 진보정당도 재건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이 재건되지 않으면 일본처럼 새누리당의 장기패권체제도 가능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진보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보수정당의 패권체제인 일본형이나 보수당과 중도개혁정당이 수평적으로 경쟁하는 미국형으로 갈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일본형이나 미국형을 넘는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고 있는 대중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조 교수는 "운동정당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운동정당의 성격을 견지하고, 제도정치화의 이중성에 빠지지 않을 것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한국의 운동과 정치의 선순환 구조가 해체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폐적 시각이 아니라 개방적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탈출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교수는 "이석기 사태는 1기 진보정치세력화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그라운드 제로에서 2기 진보정치세력화운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연합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중단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비통합진보당 연합진보정당이라도 만들자"고 호소했다. 

조희연 교수는 학술단체협의회와 한국산업사회학회, 한국비판사회학회,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와 NGO대학원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계급과 빈곤>, <한국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동원된 근대화> 등 다수의 저서들이 있고, 80년대 사회운동의 논쟁을 다룬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시리즈를 엮었다.

[인터뷰 어록] "종북 프레임은 운동사적 범죄, 일심사건은 운동적 일탈"

"저는 일심회 사건을 성찰하면서 분당을 막았어야 했다고 본다. 조승수 전 의원 등 선도탈당파는 노회찬·심상정 등과 달리 탈당하고 싶어했다. 노회찬·심상정 등은 경기동부연합이 성찰적 반성을 통해 일심회 사건 관련자를 제명하면 한당에서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그것을 공안탄압의 논리라며 거부했다. 여기에서 1차 고립이 생겼다. 2차 고립은 2008년 9월 진보신당과 대통합을 논의할 때 생겼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주도한 것은 이정희 의원을 비롯한 현재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였다. 그것이 2차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3차 고립은 2012년 4월 부정경선 파동 때 생겼다. 이때도 이것을 공안기관의 원격사주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 지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경기동부연합이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전원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피박을 썼다. 여기에 전략적 오류가 있었다. 4차 고립은 강기갑 대표가 최종적으로 이석기 의원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생겼다. 그렇게 되니까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나중에는 이석기 하방론이 나왔다. 중앙 의회활동은 자중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라는 것이다."

"국정원이 한국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가 엄청난 후퇴다. 이것을 중간층 대중들이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표출될 때 이것이 거대한 대중적 분노가 될 수 있다. 과거 보수세력은 반복지세력이었는데 이제는 현실주의적 복지세력으로 변화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인혁당 사건, 장준하 사건, 긴급조치, 유신헌법 등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변모를 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함으로써 반북보다는 남북대화세력으로 이미지를 변신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견지해 나가길 바란다. 그런데 대화록 누출시키고, 내란음모사건을 발표하는 고강도 안보정치 전략을 쓰고 있다. 이것은 한국정치의 후퇴다. 보수가 진화하면 진보도 더 진화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후퇴는 지난 대선 시기 박근혜 대통령의 변신이 쇼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이석기 사건은 정치적 의견을 양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양극화가 중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에 플러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다. 왜냐하면 중간지대 대중의 이반을 낳고, 진보적 대중은 적대적 분노를 마음에 품기 때문이다."

"친북세력은 박정희 시대부터 혹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보수가 진보에게 가하는 프레임이었다. 그런데 (종북 논란으로 인해) 이것이 진보 내부의 프레임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진보도 보수 프레임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일종의 의사국민적 프레임이 된다. 노태우 대통령이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와 직선제를 수용함으로써 보수도 반독재민주화운동 논리를 수용했고, 그로 인해 그것이 국민적 논리가 됐다. 그런 것처럼 보수가 진보의 논리를 수용하면 국민적 프레임이 되고, 보수의 프레임이지만 진보가 수용하면 의사국민적 프레임이 되는 효과가 있다. 종북 프레임은 반미 자주파 세력 일반을 지칭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종북 논란으로 인해) 보수나 공안기관에 의한 외재적 프레임이 내재적 프레임이 되는 변화가 있었다. 패권주의는 당연히 비판해야 하고 일부의 종북적 경향도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진영의 일반 프레임이 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운동사적 범죄다.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주체적 오류와 선도탈당파의 종북 프레임이 결합되면서 우리도 헤어나지 못하는 종북 프레임이 나온 것 아닌가? 2008년 2월 3일 종북프레임이 등장하고 선도탈당파가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통합진보당이 고립되는 출발점이었다. 반대파가 종북 프레임을 국민적 프레임으로 만들면서 (진보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너무 안타깝다. 2월 3일, 날짜도 기억한다. 진보정치 1기 세력화 파탄의 시기이고 통합진보당 세력이 게토화되고 고립된 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까지 오는 출발점이었다. 종북 프레임이 운동사적 범죄라면 일심회 사건은 운동적 일탈이다. 기본적으로 남한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운동사적 일탈이다. 당권파는 그 일탈행위를 자폐적 인식으로 옹호하면서 분당이 촉진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당권파에 오류가 있었다. 그 반대쪽에서는 종북 프레임에 동조하고, 그것을 국민 프레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오류가 있었다."

"통합진보당 세력이 국가보안법 질서, 친미질서, 분단질서에 선도적으로 투쟁해오고 많은 희생을 치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집단이 국보법 질서와 친미질서, 분단질서에 더 투쟁하면 할수록 그 국보법 질서와 친미질서, 분단질서가 공고화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통합진보당 등이 '약자론'이나 '피해자론', '희생자론'으로 반박하는 것과 관련) 제 스스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나는 이미 가진 자다.' 사실 저도 70년대 박정희 시대로부터 빼앗겼다는 의식만 있었다. 긴급조치나 민청학련 사건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이렇게 민주화세력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집단이 됐다. 이것을 보수에서 비판하지만 30% 정도는 진실이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우리가 더 강한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탄압받고 있으니 단결해서 돌파하자는 인식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운동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정당은 제도정치와 운동의 경계를 부단히 허물면서 활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제도정치의 행위규칙 때문에 언제든지 잘못하면 비판받는 이중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를 확연히 하려는 순간 진보정치는 멈춘다. 정의당에서 '헌법 안의 진보여야 한다'고 했다. 제도정치의 행동윤리나 규칙들을 준수하면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겠지만 표현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정당은 헌법을 재구성하고 바꿔가는 정당이어야 한다. 기존 헌법에 포획되는 것은 주류 정당이다. 헌법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헌법을 재구성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조희연 #이석기 사태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 #종북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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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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