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호 소동파, 쩨쩨한 관료였네

[서평] 중국의 문호 소식의 삶과 문학 <소동파 평전>

등록 2013.10.10 16:44수정 2013.10.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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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소동파 평전>┃지은이 왕수이자오┃옮긴이 조규백┃펴낸곳 돌베개┃2013.09.23┃2만 원

<소동파 평전>┃지은이 왕수이자오┃옮긴이 조규백┃펴낸곳 돌베개┃2013.09.23┃2만 원 ⓒ 돌베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인들과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는 문화의 거인, 위대한 문학가 등으로 평가받을지 몰라도 중국의 문화와 문물을 도입하려던 당시 고려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소동파'는 시누이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저자인 푸단 대학 중문과 수석 교수인 왕수이자오(王水照)는 '중국에서는 소동파(1036~1101)를 모르는 이가 없다'는 말로 이 책의 서문을 시작하고, 이 책을 옮긴 조규백은 '누구나 소동파를 알지만 아무도 소동파를 모른다'는 말로 서문을 엽니다.


<소동파 평전>(지은이 왕수이자오, 옮긴이 조규백, 펴낸곳 돌베개)는 중국 북송(北宋)의 정치가·경영자·서법가·화가이자 중국이 낳은 최고의 문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소동파의 일대기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소식(蘇軾)이라는 본명보다 더 널리 알려진 동파(東坡)는 황주에서 유배시절을 보내던 그가 동파(東坡), 즉 동쪽 언덕에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을 때 지은 호(號)입니다.

고려에 대해 배타적이고 쇄국적이었던 소동파

북송 인종(1022~1063)시대인 1036년에 출생한 동파는 8살에 소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19살에 결혼을 하며 21살에 동생 소철과 함께 개봉부시(開封府試)에 합격을 합니다. 22살이 되던 해 구양수 등이 시험관으로 치러지는 예부시(禮部試)에 진사(進士) 급제합니다.

인종대와 신종(1067~1085)를 거치며 관직 생활을 하던 동파는 44세가 되던 1079년 말, 황주로 유배 명령을 받아 4년여 간의 세월에 걸쳐 1984년 4월까지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합니다. 인종과 신종, 철종과 휘종 4대를 걸치며 중앙과 지방에서 여러 관칙을 걸치던 동파는 1101년(휘종, 건중정국 1년) 66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감합니다.  


책에서는 동파의 출생과 성장 배경, 관직에 진출한 이후의 행적 그리고 시대별로 부임지에서 남긴 글(작품)들을 원문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특징은 물론 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도 함께 실었습니다.  

책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고려와 관련하여 소동파가 쓴 주의문(奏議文, 임금께 아뢰어 의논(議論)하거나 의견을 내는 글)입니다.


신臣이 삼가 보건대, 희녕熙寧 이후로 고려 사람들이 여러 차례 들어와 조공을 바쳤는데, 원풍元豊 말년에 이르기까지 16, 17년 동안에 관소館所에서 접대하고 고려 왕에게 하사해 주는 물품 등의 비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에 양절兩浙, 회남淮男, 경동京東, 삼로三路에서는 성을 쌓고 배를 만들고 정관亭館을 세우느라 농민과 공인들을 조발하고 상인들을 침해한 탓에 곳곳마다 소요가 일고 공사公私 간에 모두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조정朝廷에는 털끝만치의 이로움도 없고 오랑캐들만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습니다, 사신들은 이르는 곳마다 산천의 형세를 그림으로 그리고 서책을 구매하였습니다. -<소동파 평전> 328쪽, '고려에서 진봉하는 데 대해 논한 서장' 중-

소동파는 고려에 대해 배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공으로 받아들이는 이익보다 이들을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외교적 성과보다는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 관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산천의 형세를 그림으로 그리고, 서책을 구매하는 것까지 금하려 하고 있으니 지식(문학)적으로도 소인배이거나 쇄국적인 사고의 지식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소동파와는 달랐던 증공

소동파가 고려와 관련하여 올리는 주의문은 대부분 의심하고 근시안적인 이익만을 좇는 소심한 주장인데 반해 비슷한 시기를 산 증공(曾鞏 1019~1083)은 비록 고려를 오랑캐 나라로 부르고 있지만 동파와는 달리 예물을 사양하고 예의로 대접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고려는 오랑캐들 가운데에서 문자에 통달하여 자못 지식이 있으므로, 덕으로 품어 주어야지 힘으로 굴복시키기는 어렵습니다...(중략)...고려는 조금이나마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서 서로 고할 경우, 반드시 모두들 마음속으로 감복하고 기뻐하면서 영원토록 의로움을 사모할 것입니다. 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소동파 평전> 356쪽, '증공曾鞏의 고려관련 문장' 중-

소동파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살았는지, 그가 남긴 문학적 업적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인지도 읽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시 고려를 대하던 중국 관료들의 생각이 어떠했다는 것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막연히 가져다 바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조공이, 입장에 따라서는 되로 받고 말로 대접해야 하는 부담이 되었다는 것도 짐작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동파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소동파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동파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마당, 소동파가 남긴 문학적 업적과 특징을 흠씬 더듬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소동파가 남긴 문학적 향취를 흠뻑 누릴 수 있는 마당이 <소동파 평전>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소동파 평전>┃지은이 왕수이자오┃옮긴이 조규백┃펴낸곳 돌베개┃2013.09.23┃2만 원

소동파 평전 - 중국의 문호 소식의 삶과 문학

왕수이자오 지음, 조규백 옮김,
돌베개, 2013


#소동파 평전 #왕수이자오 #조규백 #돌베개 #증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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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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