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없는 너, 드디어 응답하다

[두근두근 엄마되기⑦ 20주차] 마음만 청춘이었던 철없는 엄마

등록 2013.10.11 12:39수정 2013.10.1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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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은 참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지냈다.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고 노을공원에서 가을 바람도 맞아보고 코스모스도 보았다. 매터니티 스쿨(그냥 엄마학교나 엄마교실이라고 하면 안 되나, 참)에서 여는 강좌에도 참석해 보았고, 대학생 시절에 자원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공부방에서 피아노 연주를 부탁해 오랜만에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가을 행사에 함께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일정이 바뀌어 피아노 '연주'는 피아노 '연습'에서 끝났지만 말이다. 거기에 결혼식까지.


임신 20주를 앞두고 있지만 임신 초기처럼 마음이 벅차오르거나 눈물이 나는 것은 훨씬 덜해졌다. 초기에 변비로 고생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고, 별 티도 나지 않게 지나간 입덧은 돌이켜 보니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태동도 없다. 그러다보니 내가 임신부라는 자각을 조금 잊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9월 추석연휴를 잘 보내고 살은 올랐지만, 몸은 가벼워져서 조금 오버(?)를 하게 되었다.

9월 초, '하니샘'이 9월 셋째 주 토요일 마을 축제에 피아노 연주가 좀 필요하다고 연락을 주셨다. 하니샘은 서울 신림동에 있는 맑은샘 공부방의 선생님이다. 맑은샘 공부방은 나에게 소중한 곳이다. 처음 공부방에 갔을 때 4학년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술잔 함께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또 공부방 아이들이 작년 11월 내 결혼식 때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의 소식을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기도 전에 들떠 버렸다.

공부방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기분은 둥둥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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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의 감자 따뜻한 사내아이 지훈이의 간단명쾌한 감자그림. 나는 이 그림을 보고 크게 웃고 말았다. ⓒ 곽지현


공부방에 도착하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기분은 점점 둥둥 떴다. 지훈이는 중학생 남자아이다. 홈런이의 태명을 물어보고는, 손수 꿴 과일꽂이를 접시에 담아 내가 앉아 있는 곳까지 갖다줬다. 쑥스러운 얼굴로, 홈런이 먹으라고 가져온 것이라며 많이 드시라고도 한다. 원래 따뜻한 아이이긴 했지만, 홈런이의 기운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활짝 열게 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민진이는 홈런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여기가 머리고 여기가 다리인 거죠? 나 이거 드라마에서 많이 봐서 잘 알아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한다. 나는 허허거리면서 "어쩜 너는 대화 수준이 내 또래랑 비슷하냐?" 하니, 그저 웃는다.


아이들은 홈런이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거침없이 내 아랫배에 손을 대어 보기도 하고 언제 움직이는지 언제 크는지 언제 태어나는지 등을 물어댔다. 홈런이도 나와 함께 듣고 있었겠지?

어느새 대학생 아가씨가 되어 버린 민영이는 공부방 친구 지현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걔는 선생님 아기 낳는 날 병원에 가서 기다릴 거래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참. 어쩌면 '파이팅! 파이팅!' 노래를 부르거나 동요를 신나게 불러줄지도 몰라요. 하하하. 근데, 선생님 저는요. 주변에 아기 생긴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어서 정말 신기하고 이상해요."

지현이라는 아이는 슬픔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엄청 활기찬 아이인데 진짜 온다고 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된다. 진짜 온다고 하면 정색하고 거절해야지. 호호.

손을 배에 댔는데, 갑자기 '툭' 하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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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놀이 달팽이 안에서 힘껏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달리고 싶었다. ⓒ 곽지현


가을 축제 동안 여러 공부방에서 함께 모인 아이들은 뒤섞여 뛰놀고, 줄넘기를 하고, 달팽이 놀이를 했다. 아, 예전에는 나도 한가닥 했던 것들인데 보고만 있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보며,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한껏 신나했다. 가끔 배를 만지며 홈런이에게 엄마가 20대 때 이곳에서 얼마나 따뜻하고 값진 시간들을 보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아직은 '대답 없는 너'였지만 전해졌을 것이라 믿으며.

처음 홈런이를 가지고 하니샘께 연락했더니 "그래,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니 그 좋은 기운이 너한테 아기를 데려다 줬나보다" 하셨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지내다 보니 그 '좋은 기운'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까르르 웃는 그 웃음소리에 담긴 활기차고 밝은 기운, 티격태격하지만 서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기운, 또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 같지만 나를 챙겨주던 따뜻한 기운 말이다. 나는 이 기운을 홈런이와 함께 흠뻑 받아가는 것 같아 몹시 기뻤다. 오늘 하루 참 좋은 태교 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합정동 쪽에 약속이 있었던 남편은 나와 홈런이를 위해 '갈비만두'를 사왔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데프콘이 맛있게 '흡입'하는 것을 보고 맛있겠다 했다. 먹으려면 먼 길 가야 하니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는데, 그걸 기억하고 챙겨 사온 것이다. 아, 감동.

신나게 만두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들 만하면 숨이 쉬어지지 않아 깨고, 호흡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다시 잠들면 또 깨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그리고 홈런이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늘 들어왔던 말이 임신부는 임신하기 전과 몸이 다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몸을 움직이다 보니 또 가볍게 움직여지기도 하고, 이날처럼 신나는 날에는 또 신나게 흥이 나니 어쩔 수 없이(?) 신나게 노는 철없는 엄마였던 것이다.

다음 날 일어나서 손을 배에 갖다 대고 홈런이와 교감을 시도했다. 어제는 좀 미안했다고, 평소처럼 놀았던 게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고. 그러나 역시 '대답 없는 너'.

그런데 그 다음날 저녁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쿠션에 기대 반쯤 누워 야구를 보면서 손을 배에 댔는데 '툭' 하는 느낌이 난 것이다. 어? 뭐지? 배가 꾸룩꾸룩 하는 건가? 그런데 그 순간 또 '툭, 툭' 한다. 그러다가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미끄럽고 두툼한 무언가가 배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이 느낌, 확실히 태동이다. 드디어 태동이 시작되었다. 태동이 느껴지던 그때 남편의 손을 덥석 잡아 배에 갖다댔다.

"느껴져? 지금 툭툭 치는 것 안 느껴져?"
"아니."
"지금 또 쳤는데 안 느껴져?"
"모르겠는데."

야구를 보는 남편의 시선은 모니터에 꽂혀 있고 태동은 모른단다. 나만 느껴지는 건가? 아님 태동에 집중 안해서? 어른들은 이제 점점 태동이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어느 순간 발로 차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겉에서 보면 살이 불룩 올라오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고. 그때는 남편도 확실히 태동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겠지.

이제 5개월차. 앞으로 5개월이 지나면 홈런이 너를 눈앞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있어. 참, 잘 싸기도 해야 해. 알겠지?
#태교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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