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철길 위에서 100걸음, 꼭 하고 가세요

섬진강과 전라선 철길 따라가는 곡성 섬진강 둘레길

등록 2013.10.31 15:12수정 2013.10.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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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걷는 여행객들. 섬진강 둘레길에서 만나는 기찻길이다. ⓒ 이돈삼


섬진강 둘레길로 간다. 지난 19일이다. 해마다 몇 번씩 찾아가는 강변이지만 마음이 설레는 건 언제나 한결같다.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산야도 설렘을 부추긴다. 누렇게 물들었던 들판의 수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스산한 느낌을 준다.

곡성군 오곡면 오지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둘레길은 지난 봄 개통됐다. 지난해 안전행정부의 '우리마을 녹색길사업'에 선정되면서 조성됐다. 길이 지나는 마을마다 간이역이 있는 게 색다르다. 총길이 15㎞에 이른다. 침곡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 9.6㎞ 구간이 가장 매력적이다.


섬진강변 침곡마을 침곡역이다. 강변 철길을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이다. 증기기관열차와 레일바이크가 다니는 철길과 17번국도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으로 섬진강변을 이어주는 자전거도로가 나 있다. 얼굴에 와 닿는 강바람에서 가을이 묻어난다. 강변 공기도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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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둘레길은 섬진강과 전라선 철길을 옆에 두고 산속 숲길을 걷는다. 가끔씩 들려오는 기차소리와 강물소리가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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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통나무 다리가 정겹다. 섬진강 둘레길에서 만나는 길이다. ⓒ 이돈삼


침곡역에서 합류하는 둘레길로 들어섰다. 숲길이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의 감촉이 푹신하다. 왼편으로 강줄기가 함께 흐르고 있다. 샘터를 지나 얼마쯤 걸었을까. 강 건너편으로 호곡마을이 보인다. 섬진강에 하나 남아있는 줄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줄배는 아무라도 몸을 싣고 줄을 당겨 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룻배다. 겨울인데도 물고기를 잡아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준 마천목 장군의 이야기도 전해지는 마을이다.

도깨비공원도 보인다. 마천목 장군과 섬진강 도깨비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놓은 공원이다.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도끼를 치켜든 거대한 도깨비상이 섬진강을 지키고 서 있다. 덩치에 비해 인자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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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둘레길에서 본 섬진강. 중간중간 쉬어가는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것도 편안한 휴식을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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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섬진강 둘레길을 따라 걷고 있다. 증기기관열차가 다니는 철길에서 본 섬진강 둘레길 모습이다. ⓒ 이돈삼


숲길에는 소나무와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무성하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흐르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상수리와 도토리, 머루와 다래도 반갑다. 철길 옆에서 억새가 하얀 손을 흔들며 유혹한다.


듬성듬성 보이는 들꽃도 아름답다. 쑥부쟁이와 산국, 구절초가 보인다. 꽃향유, 수크렁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숲에 작은 계곡도 흐른다.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대봉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길섶 나무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강변 풍경이 여유롭다.

해찰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송정마을이다. 17번국도에서 만나는 전망대가 보인다. 숲길에서 잠시 벗어나 포토존으로 간다. 증기기관열차가 달리는 철길과 17번국도, 자전거도로와 섬진강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적으로 철쭉꽃을 볼 수 없는 게 흠이지만 풍경은 언제라도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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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열차가 섬진강변 철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 송정마을 포토존에서 내려다 본 증기기관열차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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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활짝 핀 섬진강변 철길을 따라 증기기관열차가 지나고 있다. 그 옆의 섬진강 둘레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 이돈삼


뿌-우우웅-. 때마침 증기기관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섬진강변을 찾을 때마다 듣는 소리지만 매번 마음 설레게 한다. 전망대에서 증기기관열차를 내려다본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게 오래 전 모습 그대로다.

열차에 탄 여행객들의 표정도 잔뜩 들떠 있다. 저마다 차창을 올리고 강바람을 호흡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지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살가운 모습이다. 어릴 적 선망의 대상이었던 열차가 잠시 추억여행으로 이끈다.

증기기관열차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숲길을 걷는다. 침목다리와 통나무다리를 건너 조금 걸었는데 금세 가정역이다. 증기기관열차가 멈춰 서 있다. 열차 여행객들은 섬진강 출렁다리를 오가며 강바람을 쐬고 있다. 강변에 야영장과 섬진강천문대도 보인다.

가정역 앞 도로변 간이 장터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산마, 고사리, 도라지, 표고버섯이 나와 있다. 대봉, 밤, 사과, 홍시, 석류도 눈길을 끈다. 모두 산골마을 사람들이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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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마을 농특산물 작은 장터에 모인 여행객들. 강변에서 채취하 농산물의 값을 묻고 물건을 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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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를 걷고 있는 여행객들. 섬진강 둘레길은 가정마을을 지나면서 폐선이 된 철길 위를 걷게 된다. ⓒ 이돈삼


여기서부터 둘레길은 폐선이 된 기찻길을 걷는다.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열차가 지나던 길이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철길 위를 걷고 있다. 철길의 레일 위에 서서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는 게 재밌다.

연인과 손을 잡고 레일 위에서 100걸음을 내디디면 오래 행복하게 산다던가. 나의 발걸음도 어느새 레일 위에 올라가 있다. 마음도 붕- 뜨는 느낌이다. 모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아 흐뭇하다.

봉조마을 입구 철길에서는 기차 조형물과 만난다. 기찻길 벽에 나무로 증기기관열차를 만들어 놓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장을 찍고 간다. 폐선이 된 철길을 걷는 낭만적인 코스는 이정역까지 2㎞ 남짓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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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의 레일 위를 걷고 있는 여행객들. 섬진강 둘레길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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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둘레길을 걷던 여행객들이 기찻길을 따라 걷고 있다. 기찻길은 가정마을에서 이정마을까지 이어진다. ⓒ 이돈삼


이정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는 철길에서 내려와 강변을 따라간다. 17번국도를 건너 강변의 흙길과 돌길을 만난다. 왼편에 섬진강을 두고 강물과 함께 흐른다.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그 물살이 마음 속 갈증까지 씻어준다.

물고기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행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물 속에 손을 담근다. 강변을 따라 강물과 함께 흐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보니 강변 풍경도 낭만적이다.

섬진강 둘레길이 끝나는 압록마을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 몸을 섞는 곳이다. 하나 된 섬진강물은 이제 남해바다로 흘러간다. 섬진강변과 전라선 철로변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 기찻길과 강변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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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둘레길은 기찻길이 끝나면서 강변길로 이어진다. 여행객들이 섬진강변을 따라 걷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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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둘레길은 섬진강과 기찻길을 따라 숲길과 기찻길, 강변길로 이어진다. 사진은 섬진강 둘레길이 끝나는 압록 유원지 모습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곡성나들목에서 구례방면으로 도림사 입구와 곡성읍을 지나면 섬진강기차마을이다. 여기서 17번국도를 타고 구례구방면으로 가다보면 레일바이크를 타는 침곡역과 만난다. 내비게이션은 전남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 45-6.
#섬진강둘레길 #증기기관열차 #기찻길 #섬진강변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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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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