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압박 축구가 쉼 없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역시 선수들의 집중력은 승부의 갈림길을 만들어낸다. 순간적으로 공격권이 넘어오는 순간, 플레이 메이커들의 예리한 눈은 상대 수비수들의 빈틈을 틀림없이 공략하는 법이다. 결정적 한 방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끌고 있는 아스널 FC(잉글랜드)가 우리 시각으로 7일 새벽 4시 45분 독일 도르트문트에 있는 BVB 슈타디온에서 벌어진 2013-2014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F그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와의 방문 경기에서 후반전에 터진 램지의 결승골 덕분에 1-0으로 이기고 16강 토너먼트 진출 전망을 밝혔다.
F그룹, 진정한 죽음의 조
비가 내리는 도르트문트의 날씨는 언제든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전반전에는 기선을 잡기 위한 양 팀 선수들의 압박 축구가 거세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팽팽한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 그만큼 이 경기 결과가 미치는 파장은 큰 것이었다. 나폴리(이탈리아)와 함께 그들은 F그룹 진정한 죽음의 조에 빠진 셈이다.
오랜만에 친정 팀 안방을 찾은 로시츠키가 아스널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을 펼쳤고, 분데스리가 샬케04와 베르더 브레멘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던 메수트 외질도 거기서 뛰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는 여러 모로 도르트문트와 분데스리가 팬들에게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의 거센 압박은 좀처럼 로시츠키와 외질의 드리블을 여유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양 팀의 핵심 선수 한 명씩 경고(23분-아르테타 / 41분-레반도프스키)를 받은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던 전반전이었다.
도르트문트 팬들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든 아쉬운 장면도 있었다. 37분, 도르트문트 공격형 미드필더 음키타리안이 아스널 골문 정면에서 방해하는 수비수도 없이 회심의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했지만 골문 왼쪽 기둥을 살짝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후반전 도르트문트 공격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는 지점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후반전, 승부의 갈림길은?
득점 없이 후반전을 시작한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스널 골문 앞을 정신없이 휘저었다. 49분, 벤더의 띄워주기를 받은 로이스가 날카로운 헤더로 골문 구석을 노렸으나 아스널 문지기 슈체스니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기막히게 쳐냈다. 2분 뒤에 나온 블라스치코프스키의 오른발 대각선 슛도 각도를 냉정하게 잡은 슈체스니의 손끝에 걸리고 말았다.
이 기세로라면 도르트문트의 골은 시간 문제로만 보였다. 하지만 방문 팀 아스널 선수들은 놀라운 역습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공교롭게도 선취골은 옛 도르트문트 선수였던 로시츠키의 발끝부터 시작되었다. 역시 축구 경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의 소유권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62분, 도르트문트 벌칙구역 반원을 바라보며 공을 순간적으로 소유한 로시츠키는 오른쪽 측면에 빠져 있는 외질을 겨냥해 정확한 패스를 전개했고, 이 공은 외질의 왼발에서 골잡이 지루의 머리를 향했다. 여기서 떨어진 공을 아론 램지가 달려들며 이마로 마무리했다. 수비수의 다리가 높게 올라왔지만 램지의 집중력은 이를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분 뒤에도 램지는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추가골을 노릴 정도로 숨어 돌아가는 골잡이 역할을 해냈다. 바이덴펠러가 다리로 막아내지 못했다면 도르트문트는 그대로 무너질 뻔했다.
이에 위르겐 클롭 감독은 74분에 한꺼번에 두 선수(아우바메앙, 호프만)를 들여보내며 동점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아스널은 수비의 중심축을 뒤로 내리지 않고 현명하게 중원 싸움을 전개하며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마음대로 공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벵거 감독은 그만큼 도르트문트를 전술적으로 분석한 것이었다.
86분, 중앙선 가까운 곳에서 안방 팬들이 흥분할 장면이 펼쳐졌다. 그들의 자존심 레반도프스키가 공을 몰고 갈 때, 하필이면 친정 팀을 방문한 로시츠키가 거친 태클로 공을 빼앗아냈다. 하지만 비외른 퀴퍼스(네덜란드) 주심은 경기를 계속 진행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레반도프스키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돌 순간의 상징성은 불편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추가 시간 4분도 훨씬 지나 퀴퍼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누리 사힌 등 도르트문트 선수 중 일부는 주심에게 달려가 판정 불만을 호소할 정도로 아쉬움을 남긴 맞대결이었다. 더구나 종료 직전에 측면 띄워주기를 받아 발리슛을 시도하던 레반도프스키가 아스널 수비수에 걸려 크게 넘어지는 장면까지 또렷하게 남았기에 더 그럴 만했다.
이로써 지난 시즌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도르트문트의 재도전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죽음의 조라 불리는 F그룹 현재 순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는 27일에 열리는 나폴리와의 안방 경기가 그들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승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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