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악담' 보고서에 서울교육청 "우리도 황당"

시교육청 의뢰 혁신학교 평가보고서 입수... '성적은 마이너스, 예산은 소비성' 논란

등록 2013.11.10 21:45수정 2013.11.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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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시교육청 의뢰로 한국교육개발원이 만든 혁신학교 평가 보고서의 표지.

서울시교육청 의뢰로 한국교육개발원이 만든 혁신학교 평가 보고서의 표지. ⓒ 서울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혁신학교 평가 의뢰를 받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이미 2012년에 공표된 교육부 자료를 끌어와 '성적은 마이너스'이고 '예산은 소비성'이라는 혁신학교 '악담' 보고서를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1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보고서에 대해 혁신학교 관련 서울시교육청의 핵심 관계자도 "주장의 근거들이 없어 황당하다"고 밝혀 예산 낭비 논란도 예상된다. 하지만 이미 혁신학교 지원금을 '반 토막'낸 상태로 내년 예산안을 만든 서울시교육청이 조만간 이 보고서를 출입기자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어서 말썽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예산을 지난해 대비 60% 가량 줄인 '2014년도 예산안'을 오는 11일 서울시의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특별한 근거도 없는데 "성적은 낮고 예산은 소비성"?

10일 서울시교육청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정진후 의원(정의당)에게 건넨 '2013년 서울형 혁신학교 평가 연구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개발원 연구진(연구책임자 구자억)은 서울형 혁신학교 67개교 가운데 평가에 참여(불참 14개교)한 1, 2년차 학교 45개교(초등 22, 중학 16, 고등 7)에 대한 평가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최근 서울시교육청에 냈다. 

지난 10월 14일부터 방문평가 등 실제 평가를 5일간 벌인 뒤, 다시 10월 21일부터 5일간 평가 분석을 진행한 이 보고서의 분량은 82쪽이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45개 학교의 총 450개 평가항목 중에서 A등급은 24%, B등급은 58.2%, C등급은 17.8%로 나타났다"면서 "세부적으로는 A등급이 초중고에서 각각 30.5%, 15.0%, 24.3%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진은 A, B, C 등급을 나눈 준거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의혹이 커지고 있다. 보고서에는 등급을 구분한 준거에 대해 이례적으로 언급이 없었고, 연구책임자인 구자억 실장(한국교육개발원)도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혁신학교 전체의 학생·학부모·교사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벌여 놓고도 이를 백분율(%)로 공표하지 않고 A, B, C 등급으로 나눈 것은 '높은 만족도를 감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만족도에서 "A등급이 22.2%, B등급이 75.6%, C등급이 2.2%"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A, B, C 등급이 무슨 뜻인지 기술이 되어야 하는데 준거가 없다 보니 황당할 지경"이라면서 "혁신학교를 비판한 결론이 나오려면 어떤 원인이 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다보니 교육청이 (결론 내용에서 혁신학교를 비난하라고) 시킨 걸로 오해받을 상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a  혁신학교 평가 보고서에서 3등급을 설명한 부분.

혁신학교 평가 보고서에서 3등급을 설명한 부분. ⓒ 서울시교육청


만족도까지 A, B, C 처리... 그런데 준거가 없다?

반면, 구 실장은 "내부적으로 A, B, C를 나눈 양적 기준이 있으니까 등급을 매긴 것인데 준거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만족도를 백분율로 공개하지 않은 것도 나머지 10개 항목의 등급에 맞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구 실장은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근거를 1대 1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연구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 2012년 교육부의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공시자료를 활용해 혁신학교를 비판한 것은 '연구진의 큰 실수'라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내용의 상당 부분에서 이 자료를 활용해 혁신학교에 대해 "학업성취도와 향상도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향상도를 보였다", "(혁신학교 예산이) 소비성 예산이며 예산투입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비난했다. 일반학교와 견준 학업성취도를 근거로 혁신학교를 비난하는 핵심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활용한 2012년 11월에 나온 교육부의 일제고사 공표자료는 같은 해 6월 26일에 치른 일제고사 결과를 분석한 것이었다. 이번 조사 대상 학교 59개 교 가운데 2012년 3월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절반인 30여개 교에 이른다.

교육학자들은 "고작 3개월여 간의 혁신학교 활동을 놓고 학업성취도 성과를 저울질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이윤미 홍익대 교수(교육학과)는 "서울형 혁신학교들이 대부분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지정된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출발점 조건을 무시하고 투입시기와 요인도 무시한 상황에서 '일반학교와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 실장은 "혁신학교 지정 3달 만에 치른 일제고사 결과 데이터로 학업성취도를 분석한 것인지 몰랐다"면서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알아보고 추후에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책임자 "지정 3달 뒤 나온 일제고사 결과인 줄 몰랐다"

한편, 편향된 연구진 구성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번 보고서 연구진 10명(교육개발원 6명, 일반연구원 4명) 가운데 유일한 현직 교사인 이 아무개(대방중)씨는 지난 6월 17일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과 한국교총이 주최한  '혁신학교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 나와 "철저한 평가를 통해 문제가 있다면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6월 17일자 보도 내용이다.

연구진의 좌장 격으로 참여한 배아무개 명예교수(서울여대)도 지난 10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자문기구인 혁신학교정책자문위 회의에 참석해서는 "혁신학교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서울시의회 교육위 서윤기 의원이 시교육청으로부터 건네받은 이날 회의록을 보면 배 교수는 "(혁신학교를) 이대로 유지하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말한 뒤 "일시에 폐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가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혁신학교에 대한 표적 평가에 반대하는 교사들이 지난 7월 혁신학교 공청회 시작 직전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혁신학교에 대한 표적 평가에 반대하는 교사들이 지난 7월 혁신학교 공청회 시작 직전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윤근혁


이번 연구책임자를 맡은 구 실장도 친정권 단체인 국민행복교육포럼 공동대표이며, 평가지표팀장을 맡은 3명의 교수 가운데 한 명도 국민행복교육포럼 공동대표이다. 또 다른 한명은 19대 총선의 새누리당 내부 경선 낙선자였다. 연구진은 이번 보고서 참고문헌에서 서울시교육청 계획안을 빼고 모두 4개의 혁신학교 관련 한국의 연구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참고한 연구서 가운데 3개 연구에 관여한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박사는 "교육개발원이 서울형 혁신학교 평가편람 등을 통해 혁신학교의 특성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연구를 한다고 약속했지만 보고서에서는 그런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서 "오히려 신뢰성이 의심받은 2012년 일제고사 자료를 활용해 지정 3개월 차 학교를 평가한 것은 커다란 실수라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일반 연구진 4명 가운데 2명 "혁신학교 폐지" 주장 인물

김 박사는 또 "자신들이 직접 평가한 것은 준거도 없이 A, B, C로 나누어 등급을 매긴 반면에 교육부 공시정보를 갖고는 혁신학교와 환경이 다른 일반학교를 비교했다"면서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1억 원이나 들었다는 이번 평가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시교육청 또한 이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고 나서 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구진은 이번 평가 연구 도중 일괄 사퇴 의사를 서울시교육청 쪽에 밝힌 바 있다고 서울시교육청은 전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구 실장이 못하겠다고 했지만 계약 내용 때문에 결국 보고서가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혁신학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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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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