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오지, 우리는 장구치러 간다

마을 사람들은 '음코리아'를 기억할까

등록 2013.11.11 14:20수정 2013.11.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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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탄자니아 지도 사메는 킬리만자로에서 떨어져 나온 파레산맥에 위치한 소도시로서 북쪽으로는 음코마지 국립공원, 동쪽으로는 우삼바라산맥과 챠보평원이 계속됩니다

탄자니아 지도 사메는 킬리만자로에서 떨어져 나온 파레산맥에 위치한 소도시로서 북쪽으로는 음코마지 국립공원, 동쪽으로는 우삼바라산맥과 챠보평원이 계속됩니다 ⓒ www.mapsofsworld.com


파레… 어디에선가 한 줄기 자락이 파레 산맥으로 흘러 우삼바라(루쇼토)에서 멈추다, 마침내 서쪽 푸른 인도양으로 빠져 버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있었다. 물을 찾아 올라온 마사이를 피해 숨었던 동굴, 노예 상인의 옷자락에 묻혀 온 사이잘 삼(황마와 함께 선박의 밧줄을 만드는 재료로 쓰여 근대 서구 열강의 동력이 되었다), 부족의 전통을 미신으로 모는데 앞장섰던 독일인 교회.

a 독일인 교회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들어왔던 독일인이 세운 교회

독일인 교회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들어왔던 독일인이 세운 교회 ⓒ 이근승


그래도 아직도 여전한 전설같은 얘기들. 숲 속 각 부족의 돌멩이 앞에 모여 치렀던 몇 날 며칠간의 할례 의식. 윗니부터 난 갓난 아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겨 바위 위에다 눕히고 돌아오면, 서늘한 새벽 기운에 발버둥 치던 아이는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이상하게도 바위 아래엔 성소라 하여 각 씨족 시조들의 해골이 모셔있어, 그 옆에 꽂힌 막대기에 술을 뿌려가며 오늘도 소원을 비는 사람들.


a 바위 아이를 눕혀놓고 돌아왔던 바위. 그 아래엔 시조들의 해골이 모신 동굴이 있습니다.

바위 아이를 눕혀놓고 돌아왔던 바위. 그 아래엔 시조들의 해골이 모신 동굴이 있습니다. ⓒ 이근승


산 위 호숫가. 파레족 아이들이 신비한 이야기들을 시간의 물결 위로 낚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장구 치러 갑니다

a 호숫가 아이들 산 위에 있는 호수와 아이들

호숫가 아이들 산 위에 있는 호수와 아이들 ⓒ 이근승


사메에 도착하니, 봄보로 데려다 줄 지프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뒷자리에 무려 여덟 명이 탔습니다.

이윽고 차는 출발하고. 정신없이 산허리를 휘돌아 나가는데, 이내 멀미가 나고, 마을 사람들의 입 냄새를 견디다 못해 우리 모두 다 지붕 위로 올라 가 버리고. 행여 차에서 떨어질라 여기저기 살펴주는 차장만이 괴로운 길입니다.

봄보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오는군요. 서늘한 냉기가 바지 섶 사이로 스며듭니다. 찻집에 들렀습니다. 차 한 잔에 만다지 한 개. 그리고 20실링(우리나라 20원이 안되는 돈)짜리 바나나 한 개.

20실링. 삶의 애잔함, 살아간다는 것의 그 보잘 것 없음, 그래서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운명의 모순. 나는 비 오는 날, 이 가난한 찻집에 앉아 있습니다.


a 봄보 마을 파레 산맥 깊숙히 위치한 마을

봄보 마을 파레 산맥 깊숙히 위치한 마을 ⓒ 이근승


길을 재촉합니다. 마오레까지 가려면 걸어서 세 시간 정도.

휴~우. 쉬어야겠습니다. 길가에 짐을 풀어놓고 징이며 꽹과리를 꺼내자 '저 놈들 뭐 하나' 궁금한 심사인 듯, 쭈뼛거리며 다가오진 못하고 저 멀리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구경 값 내라는 식으로 모자를 벗어놓자 단번에 박장대소합니다. 그리고 기어이 쫓아가 받아 낸 20실링짜리 동전 하나.


비가 갠 하늘 위로 눈부신 햇빛만큼 싱글거리는 마을 청년 하나가 자진해서 폭포까지 동행을 해줍니다.

a 20실링 처음으로 공연에서 돈을 받았습니다.

20실링 처음으로 공연에서 돈을 받았습니다. ⓒ 이근승


폭포 이름을 물어봐도 모두들 그냥 마포로모코(폭포를 뜻하는 스와힐리어)라고만 합니다.
잘 차려 입은 사람 하나가 톰슨 폭포라고 하네요. 몇 미터냐고 하니까 제 각각입니다. 오백, 사백, 일 킬로….

몰~러. 그건 머땀시 물어봐. 아마도 처음 온 외국인 이름이 톰슨이었을 게고, 눈짐작으론 대중 오십미터 정도일 겁니다. 이들에게 폭포는 그냥 폭포일 뿐입니다. 그리고 얼마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냥 마포로모코 음쿠브와(큰 폭포)일 뿐입니다. 이 속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본질을 감싸는 외피를 좇는 것은 집착이며, 허공으로 소멸하는 담배 연기만큼도 안 되는 허상일 수 있습니다. 행여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여도 폭포는 무엇보다 폭포일 뿐입니다. 때로는 앎이란 본질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문명이라는 것은 모래 위에 지어진 허울 좋은 낯짝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여기에선 말이죠.

a 폭포 파레산맥에서 평원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입니다

폭포 파레산맥에서 평원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입니다 ⓒ 이근승


거의 목적지가 손에 잡힐 듯 합니다. 건너편으로 거대한 병풍처럼 선 우삼바라 산맥. 아마도 바로 보이는 저쪽이 루쇼토 이렌테힐이겠습니다. 왼편으로는 사자가 뛰노는 음코지 국립공원, 그리고 계속해서 케냐의 챠보 평원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산은 이 가난한 아프리카 땅에서 하나의 축복입니다. 건기에도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그나마 조그만 풍요를 만들어 냅니다. 고도가 높고 경사진 메루와 킬리만자로 주변이 온통 커피와 바나나 향기로 그득하다면, 여기 파레와 우삼바라 주변은 평평한 지대에 물을 가두어 만든 논밭이 동심원처럼 곳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a 여정 산골이라 한참을 걸어갑니다

여정 산골이라 한참을 걸어갑니다 ⓒ 이근승


a 여정 산 아래로 흘러나온 물을 이용한 논밭과 멀리로 챠보평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정 산 아래로 흘러나온 물을 이용한 논밭과 멀리로 챠보평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 이근승


어디서나 이방인을 처음 반겨주는 건 아이들입니다. 한 무더기 조무래기들과 한참을 놀았습니다. 배트맨도 하고, 잠꾸러기 놀이도 하고… 별 것 다 했지요. 우리들 얼굴 참 잘 나왔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요.

a 잠꾸러기 놀이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잠꾸러기 놀이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 이근승


a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논 아이들과 함께 찰칵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논 아이들과 함께 찰칵 ⓒ 이근승


목적지인 마오레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나서니 다시 비가 옵니다. 어느 집 처마 밑에 들어가 장단을 맞추다 보니, 눈 앞에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신명이 절로 나와 사람들을 몰고 시장으로 길놀이를 나갔습니다.

a 처마 밑에서 이제 길놀이를 나갑니다. 두둥 둥

처마 밑에서 이제 길놀이를 나갑니다. 두둥 둥 ⓒ 이근승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듯합니다. 태양은 노을을 타고 달빛으로 넘어가는데, 짙어가는 어둠 속에 우리들의 신명 소리는 사위를 휘감고 출렁거립니다. 장단에 맞추는 추임새에 사람들의 고함이 함께 합니다. 목청은 제 명을 다해 '꺽꺽' 파닥거리며, 거듭되는 앵콜로 귀때기는 얼얼해진 지 이미 오래…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줄행랑을 놓고서야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인사를 합니다. '시카모(안녕하세요)'. 어르신들의 문의가 빗발칩니다. '언제 떠나나' '언제 또 오냐'

떠나는 날 아침, 허리춤을 붙잡는 손이 있습니다. '꼭 다시 올게요, 할아버지… 함나 시다입니다(물론입니다)'

a 공연 마을 시장통에서의 공연은 땅거미가 지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공연 마을 시장통에서의 공연은 땅거미가 지도록 계속되었습니다 ⓒ 이근승


우리가 소속된 단체 스티커가 어느 조그만 구멍가게에 붙어 있습니다.

언젠가 그럴테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스쳐 지날지도 모를 우리 후배들에게 미소를 보내줄 지도. 혹은 다가와 음코리아(한국인)냐고 물어 볼지도 모르겠죠. 그 때 그 마을 사람 하나가.

a 우리들 얼굴 우리를 조금은 더 기억해 주겠죠. 혹은 따스한 추억으로.

우리들 얼굴 우리를 조금은 더 기억해 주겠죠. 혹은 따스한 추억으로. ⓒ 이근승


#파레 #음코마지 #사메 #챠보 #우삼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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