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선생의 꿈, 아직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제7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박찬승 교수, 사회부분 장완익 변호사 수상

등록 2013.11.17 15:00수정 2013.11.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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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 독재가 못된 짓을 할 때 그냥 군사 독재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것이 제국주의앞잡이 출신들이 자행하는 독재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 게 바로 '친일문학론'이야."

유신독재가 극단으로 치닫던 1970년대 '친일문학론' 보급에 앞장섰던 백기완 선생의 말이다. '친일문학론'은 군사독재 뒤에서 아른거리던 당대의 문단 대가들의 친일 행적을 담아 낸 문학론이다.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에게 군사독재 뒤 친일의 뿌리를 알게 해준 '친일문학론'을 세상에 내놓은 임종국 선생의 24주기를 맞이해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지난 11일프레스센터에서 '제 7회 임종국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고 임종국 선생은 1965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계기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연구를 비롯한 '친일문학론' 집필을 결심한다. 광적인 자료수집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까지 담긴, 무려 2000매에 달하는 원고를 세상에 내 놓았다. 오욕의 역사 대신 영광의 역사만을 기억하는 우리 사회에 친일 문제를 최초로 거론했다고 해도 좋을 임종국 선생은 "일제 하에서 친일은 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임을 직시하며 친일 문제에 더욱 몰두한다.

임종국상은 이렇듯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진단하고 제대로된 처방을 통해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7회째를 맞은 임종국상 올해 수상자로는 학술부문에선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사회부문에선 장완익 변호사가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꿈꾸며 풀어야 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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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1일 제 7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열린 프렌스센터 시상식장 ⓒ 김민화


학술부문 수상자인 박찬승 교수는 올해 7월에 발간한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을 중심으로, 민주공화국 수립의 기원과 과정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지향할 바를 뚜렷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찬승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라는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고, 시청 앞 광장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것을 보았다"면서 "그 즈음부터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어떤 성격의 민주공화국을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박 교수는 전 세계에서 헌법 제 1조에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표현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살펴보며 헌법 제1조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이 반영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헌법 제1조의 경우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 '자유'의 보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프랑스의 헌법 1조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을 반영해서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내세우며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찬승 교수는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제헌위원들이 대한민국을 어떤 국가로 만들고자 했는지 분석했다"면서 "그 결과 제헌의원들은 독립된 민주국가를 세우고, 자유롭고 균등한사회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은 해방 이 후 오랜기간 민간독재와 군부독재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었다, 87년 6월항쟁을계기로 자랑할 만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었지만 최근 들어 그 정체성은 다시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는가 묻고 있다"고 전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나라, 그리고 해방 이후 독재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온 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나라, 그리고 임종국 선생이 꿈에도 그러던 나라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나라',  '정의가 바로 선 나라' 였을 것이다. 아직 그 꿈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이 더욱 분발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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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부문 수상자 박찬승 교수의 저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돌베게) ⓒ 돌베게

사회부문 수상자인 장완익 변호사는 일제치하 강제동원피해와 친일문제,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 희생과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등 과거사 전 분야에 걸쳐 헌신해왔다. 그 결과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피해 손해배상소송에서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했다.

또한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법><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제정 과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청산에 디딤돌을 놓은 업적을 평가 받아 수상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장완익 변호사는 수상소감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한 '강제동원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패소를 거듭했을 때의 참담한 심경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두 소송의 패소로 일본 사법부를 통한 정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한국 법원에 일말의 기대를 갖고 제기한 소송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자책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의 승소 판결로 강제동원피해자 운동이 기사회생하였다."

그러면서도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아직 진행 중인 6건의 소송에 대한 걱정과 군인, 군속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고 있지 못한 점,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최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조정 신청 역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 20세기의 우리 역사는 처음부터 일제 강점으로 시작하여 한국전쟁, 독재정부 등 100년 내내 국민이 이리 차이고고 저리 뒹굴면서 참고 당하기만 한 시기였다. 21세기 벽두부터 시작하여 10여년 진행된 과거 청산 작업도 100년 동안 쌓인 고통을 풀기에 너무나도 모자랐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행한 잘못된 일은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임종국 선생님이 바라셨던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일 것이다."

두 수상자의 수상 소감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과 오버랩되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2008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과 함께 경쾌하게 울려퍼진 노래 '헌법 제 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금 권력층이 보이고 있는 은폐와 왜곡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공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는 오늘 우리 현실은 곧 민주주의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문장은 2013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러한 시점에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의 역사와 의미를 연구한 박찬승 교수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길을 잃어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좌표를 제시해주고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지금의 일본 극우세력인 아베 정권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제정된평화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군대보유와 전쟁금지' 조항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물론 군사무장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으로 인해 생긴 침략의 상처는 동아시아 도처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고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전범 기업과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도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보상과 치유의 책임을 져야 할 우리정부는 오히려 과거사를 왜곡하고 미화하기 바쁘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 채택 시도 등 왜곡된 역사관은 과거사 피해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힘을 더욱 빠지게 한다.

"국가가 행한 잘못된 일은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임종국상을 받으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장완익 변호사의 말이 무겁게 들려오는 이유이다.

기념식 서두에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은 기념사에서 "이 자리가 축하와 더불어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모두가 되새겨 봐야 할 지점들인 헌법정신, 민주주의, 인권, 역사정의, 경제민주화 등이 두 수상자의 연구와 활동 속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치를 중심으로 정의가 바로선 나라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더욱 노력하고 분발하자는 시대적 결심이 제 7회 임종국상이 갖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필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하루뉴스(www.haroonews.com)'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임종국상 #박정희 #일본강제동원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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