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사막에서의 5일, 잃어봐야 깨닫는 것

[리뷰] 바위 틈에 홀로 고립된 남자의 이야기, 영화 <127시간>

13.11.21 09:28최종업데이트13.11.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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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보고싶은 것을 보려고 한다. 그것도 지극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보고싶지 않으나 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지극히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최근 몇 년동안 보았던 영화 중에선 <베리드>와 <그래비티>가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2010년작 <베리드>는 생매장의 공포를 통해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와 무책임한 자본의 민낯을, <그래비티>는 우주미아 체험으로 삶과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국내에서 지난 2011년 개봉했던 <127시간>이다.

산행 중 겪은 사고, 127시간 동안의 고립

영화 <127시간>의 한 장면. 외진 사막 한 가운데서 고립된 주인공 아론은 127시간동안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인공 아론(제임스 프랑코 분)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여 등산을 즐긴다.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년으로 혼자서 훌쩍 떠난 그는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산을 넘나들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 와중에 길을 잃은 두 명의 여인을 만나서 길을 안내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추억을 쌓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게 된다. 그녀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 길을 걷던 도중, 커다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골짜기의 사이를 뛰어내려가던 그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바위덩어리와 산의 사이에 오른팔이 꽉 끼어버린 것이다.

무선연락은 커녕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줄 사람조차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 고립된 아론. 가진 것이라고는 가방 안의 물통과 약간의 음식, 중국산 싸구려 칼과 MP3플레이어·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가 전부이다. 과연 그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너무 당황하여 일단 당장을 버티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한다. 음식을 쪼개어서 나누어 먹고, 물도 최대한 조금씩 마신다. 혹시나 모르기에 다른 통에 소변을 받아서 보관하기도 한다.

더불어 칼을 꺼내어 바위와 팔의 틈을 벌려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거듭될수록 팔은 더욱 틈에 더 꽉 끼어서 빠져나올 기미가 없다. 삐져나온 엄지손가락은 피가 공급되지 않아서 새하얗게 질려버린 상태다. 물과 음식은 점점 떨어져가고, 혼자라는 외로움과 이대로 구조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이 엄습한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잃어보면 깨닫게 되는 사소한 것의 소중함

영화 <127시간>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메마른 땅 속 깊은 곳에 고립된다는 설정은 <베리드>와 닮았다. 혼자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래비티>와 흡사하다. 그런데 <127시간>의 특이한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존인물이었던 아론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고립된지 127시간 만에 탈출에 성공한다.

나는 '결핍이 욕구를 만든다'고 믿는다. 극 중 아론의 모습도 그러했다. 그는 늘 존재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 127시간동안 갈증·외로움과 사투를 벌인다. 캠코더에 매일같이 자신의 상태와 심정을 기록하면서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노력하지만, 끝없는 적막과 계속되는 목마름으로 고통받는다. 과연 이런 상황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끝내 바위틈에 끼어버린 오른쪽 팔을 스스로 절단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컸기에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 앞에서 한 쪽 팔을 포기한 대신에 일상과 가족, 친구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27시간 만에 구출된 아론은 한쪽 팔을 잃었지만 여전히 산행을 다니고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상영시간 동안의 즐거움과 동시에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생각하게끔 만드는, 이런 영화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짧은 유희와 대리만족도 물론 좋지만, 삶과 세상에 대한 고찰을 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를 더 밀접한 문화로 인식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닐까 한다.

12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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