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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 꽐라돼도 실패해도 괜찮아

[리뷰] 힘들어도 울지 않는 '캔디형' 청춘들의 햄버거 가게 창업기

13.11.23 11:57최종업데이트13.11.2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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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곽지균 감독의 영화 <청춘>에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이란 시가 등장한다. 눈이 내린 기차역 벤치에 앉아 주인공 자효(김래원 분)는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하고 시를 읊으며, 자신의 상처를 '괜찮다'라는 세 글자로 어루만지고 치유한다.

자효가 스스로의 아픔을 혼자 견뎌내는 타입이라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한 <굿윌 헌팅>의 청년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심리상담 교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분)의 말과 따뜻한 포옹으로 자신의 다친 마음을 위로 받는다. 윌 헌팅의 마음을 치유한 단 한 마디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는 지금까지도 힘든 시기를 겪는 청춘들에게 통용되는 위로의 말로 상당한 치유력을 갖고 있다.

청춘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청춘을 '닦달'할 뿐, 위로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회사의 조직체계나 분위기 등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나약하다."

그런데 정말 젊은 사람들이 나약해서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회사에도 있다.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회사는 고릿적부터 내려오는 썩어 빠진 악습을 전통으로 포장해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다. 회식을 권하지 않지만 눈치를 주고, 회식에 가서는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내 자존심보다 우선한다.

비효율적인 제도들이 널려 있지만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마치 군대처럼, 우리도 아니꼽고 더러운 생활을 겪었으니 새로 들어온 너희들도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윗세대의 악랄한 사고방식이 부푼 꿈을 안고 출근하는 청춘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청춘은, 힘들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술을 찾는 청춘들의 창업기

영화 '코알라' 본포스터 ⓒ 어뮤즈


영화 <코알라>는 취업이 아닌 '창업'을 이야기하지만 청춘들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연기자 지망생이었던 동빈(박영서 분)과 종익(송유하 분)은 동갑내기 친구다. 23살의 둘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연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8년이 지나 31살이 되니 동빈은 연기를 포기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종익은 연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광고의 병풍 역할만 할 뿐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생활이 지겨워 죽겠는 동빈은 남몰래 준비한 창업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하고 종익과 함께 수제 햄버거 가게 '버거 보이'를 차린다. 좋은 선후배의 도움으로 패티와 소스도 공급받았겠다, 순발력 좋아 보이던 알바생 우리(박진주 분)까지 구했으니 이제 장사가 좀 되려나 싶었지만 어찌 잘 될 만하면 먹구름이 낀다. '코알라'들의 햄버거 가게 잘 될 수 있을까?

영화는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술을 찾는 우리네 청춘들의 햄버거 가게 창업기를 그린다. 코알라가 주식으로 먹는 유카립투스 잎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어 코알라가 하루의 20시간을 잔다는 사실은 왜 청춘들이 술만 먹으면 '꽐라(코알라)'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우스운 근거로 제시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여러 번, 그것도 많은 양의 술을 흡입(?)한다. 이만하면 내내 취해있는 상태나 다름이 없으니, 그들이 항상 기분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힘들어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청춘들은 술을 찾고, 그렇게 술잔에 하루의 기쁨과 시름을 담아 마셔버린다.

그들이 겪어 내는 현실은 마냥 좋기보단 작은 위기들의 연속이다. 위기를 만드는 자는 역시나 동빈의 갑(甲), 스콧리 선배다. 유기농 재료로만 만든 패티를 저렴한 값에 대주겠다며  동빈의 창업을 응원하던 선배 스콧리는 동빈의 '버거 보이'가 잘 될 기미를 보일 때마다 장사꾼의 기질을 드러내 '버거 보이'를 궁지로 내몬다.

패티 값을 올리려 하고, 가게 세를 올리려 하다가, 다시 패티를 넣겠다는 식으로 동빈을 괴롭힌다. 돈이 벌릴 만하면 입금액이 올라가니 장사가 잘 되는 데도 가게를 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처럼 실제 창업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수더분하게 묘사하며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영화 <코알라>의 한 장면. ⓒ 어뮤즈


영화는 주변에 뒤통수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충고하지만 반대로 아직도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완벽한 칠리소스를 대주는 후배, 가게에 올 때마다 봉변을 당했지만 계속 들러 새 메뉴를 시식해주는 선배, 가게를 잃은 '버거 보이'에게 트럭을 내 준 대중이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버거 보이'는 엎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종익에게는 8년 동안 오디션에서 선택받지 못한 자신을 늘 서슴지 않고 선택해 준 동빈이 은인이고, 동빈에게는 잔금을 치르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에도 연이자 7%를 고집하며 돈을 빌려 준 우리가 은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당장 잘 곳이 없는 처지에 자신의 SOS를 받아준 종익이 은인이다. 서로가 서로의 은인이 되며, 그렇게 코알라들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간다.

<코알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세 주인공을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바라보게 만든다. 긍정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이들이 어떤 위기든지 해결해 나갈 것을 예고하지만, 그걸 알더라도 현실에 아주 가까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예상'보다는 '감상'을 권하고 있다.

실제 무명 생활을 오래 겪은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아 한 치 앞도 두려워 망설이는 청춘들의 역할이 더 와 닿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들의 현실성 짙은 연기가 진짜 햄버거 가게를 상상하게 만든다. 순도 100%의 청춘으로 만든 그들의 햄버거, 맛보기 전에 울컥할 것만 같다. 그래도 울지 말아야지. 코알라들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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