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은 세대에 맞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사회 전반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인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이호선(한국벤처대학원대학) 교수는 "10여년 전 70대의 성과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되면서 노인의 성에 대한 담론이 퍼졌던 것처럼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인식이 개선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노인들이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언론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노인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을 연구하면서 성 구매 남성 9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성적 접촉 자체보다 '좋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성매매 여성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인들이 만족스런 이성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건강하게 배출할 통로를 사회가 다양하게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스라도 붙여 줄 사람이 있었으면"인천광역시에 사는 강아무개(67)씨는 남편과 이혼한 지 10년이 됐다.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바람기가 많았다. 이혼한 뒤 한 때 다시 살림을 합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폭행까지 하는 탓에 지금은 완전히 포기했다. 딸이 한 명 있지만, 이혼 당시 집을 나간 뒤 연락이 잘 되지 않아 혼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지만 혼자 지내니 외로워요. 허리가 아플 때 파스라도 붙여줄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강씨는 평소 봉사활동이나 문화회관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외로움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친구 소개나 인천노인종합문화관에서 시행하는 '황혼 미팅'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 보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서 이성을 만나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관계가 진전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강씨는 털어놓았다.
"남자들은 물질적으로만 해주면 다 되는 줄 알아요. 돈이 많아야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 계속 돈 얘기를 하고, 뭘 사주려고 하죠. 나는 그냥 마음이 잘 통하고 빚만 없는 사람이면 되는데. 그리고 여자들은 정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신체접촉)이 되는 건데 남자들은 한두 번 만나고 바로 모텔에 가자고 하니까 만남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강씨는 재혼을 원하는 남녀에게 각자 자녀가 있는 것도 재산상속 문제 등을 놓고 예민한 부분이 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꼭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며 웃었다.
노인복지학을 강의하는 한성대 황진수 교수는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이성교제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남녀 노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센터 등에서 노인들이 만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 것도 좋고, 노인 콜라텍(콜라를 마시며 춤추는 곳)등 유흥시설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선진국에선 자연스런 만남의 기회 다양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 휴식하고 교제할 수 있는 지역단위의 노인센터, 취미교실 등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65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후 커뮤니티센터 등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사회적 서비스가 늘어났다. 특히 1975년 창립된 '엘더호스텔(Elderhostel)'은 55세 이상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교육과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런 남녀간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보스턴에 있는 비영리재단이 운영하는 이 기구는 미국 전역의 대학과 박물관,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은퇴자들이 각자의 관심과 흥미에 맞는 교육과 현장학습, 사교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1975년 이후 지역사회별로 '노인클럽'을 만들어 여가를 위한 레크리에이션활동과 전문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남녀 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도 '노인 휴식의 집'과 노인클럽 등 다양한 지역단위 시설을 통해 자연스러운 교제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 휴식의 집은 노인복지센터보다 작은 규모의 주민 이용시설로, 노인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 놀이 등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
노인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노인클럽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50명 이상의 인원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게이트볼 등 운동은 물론 환경미화나 지역사회 독거노인을 방문해 돕는 자원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런 이성간의 만남도 이뤄진다.
임장남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의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지관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며 "복지관이나 노인대학 등 노인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이성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은 지난해 4월부터 '만남교실', '합독사업' 등을 통해 남녀 교제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합독사업은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화관람, 유람선 데이트 등의 단체만남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이아무개(69)씨는 지난 3월부터 2개월 동안 '홀로된 어르신 행복한 만남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합독사업 행사에도 나가봤다. 30여년 전 이혼한 후 계속 독신으로 살아온 이씨는 친구들의 소개를 받거나 직장에서 이성을 사귈 기회도 있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만큼 살아보니까 모든 게 조심스럽더라고요. 제가 바라는 이상형이 아닌 경우도 있고, 돈을 바라고 저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그나마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더 줄었는데, 여기 수업을 들으러 왔더니 (만남교실 등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해봤죠."그는 이런 행사를 통해 만난 여성과 5번 정도 만남을 이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만나는 사람은 없다. 건강관리를 위해 하루에 2킬로미터씩 달리고 자기계발 차원에서 영어공부도 따로 하고 있다는 이씨는 몸살감기에 걸렸을 때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곁에 사람이 없는 게 힘들다"며 "다음 합독사업이나 다른 행사에도 꼭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인천시 합독사업은 지역 내 모든 군과 구의 노인복지관과 노인문화센터에서 신청을 받아 인천노인종합문화관에서 시행한다. 2012년까지는 1년에 4회 실시했으나 올해는'만남 교실'을 운영하면서 6월과 10월, 2회 운영했다.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합독사업 등 관련 행사를 담당하는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의 주영분 과장은 "합독사업에서 90% 정도가 일단 짝을 찾지만 그중 50%는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진다"며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6~8주 동안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만남 교실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남교실'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남녀 15명씩 30명이 모여 자신과 이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미술치료, 등산, 커플댄스 등 매회 2시간 씩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성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교육과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성격유형검사를 하는 시간도 있다. 주 과장은 "교제가 성사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어르신들이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행사여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의 합독사업은 지자체의 지원 아래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노인 만남 행사로는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하다. 2011년 10월 대전시 동구에서 60세 이상 남녀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버 효도미팅'이 개최되는 등 단발성 행사는 늘었지만 지속적인 노력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호선 교수는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심한 정책과 이를 주도해 나갈 단체, 그리고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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