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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 설레고 뜨거웠다 식는 사랑...바로 그런 성장통

[리뷰]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숨은 의미를 찾는 재미가 쏠쏠

13.12.09 16:06최종업데이트13.12.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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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8일 개봉한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머드 역을 맡은 배우 매튜 맥커너히 ⓒ Everest Entertainment


뭐든 빨라진 시대다. 사랑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이제 길거리에서 교복차림의 남녀 청소년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다니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 된지 오래다. 더 나아가 이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당당히 공개연애(?)를 선언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한참 어린 아이들이 사랑이 뭔지나 알고 저럴까?' 싶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 잘난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그 놈의 사랑을 몰라 싸우고 서로의 마음에 생체기를 낸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한 사랑의 역사는 사랑이란 것이 절대로 경험의 양과 연륜만으로 정복 가능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설레고 뜨거웠다 차갑게 식는 사랑의 궤도 아래 머드(매튜 매커너히 분)와 엘리스(타이 쉐리던 분)가 있다.

영화 <머드>는 14살의 소년 엘리스와 본의 아니게 살인자 신세가 되어 외딴 곳에 숨어 지내는 머드의 이야기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소년 엘리스가 머드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치며 감정의 성장을 겪어내는 성장담이다. 영화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세 가지 얼굴의 사랑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린 엘리스 부모의 사랑이다. 둘의 내밀한 속사정은 영화 안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분위기로 짐작건대, 이들에게 찾아온 사랑의 그림자는 각기 다른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생선장수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엘리스의 아버지와 달리 엘리스의 어머니는 안정보다 변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타협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소통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끝내 둘은 주말 부부 형태로 엘리스를 사이에 둔 간헐적 왕래만을 반복하는 위태로운 사이가 되는데, 이를 지켜보는 엘리스의 시선은 편치 않고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사랑은 머드와 주니퍼(리즈 위더스푼 분)의 사랑이다. 머드는 주니퍼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주니퍼와 멀리 떠나기 위해 보트를 수리하고 있다. 엘리스 부모의 사랑이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버려 분쇄되기 직전이라면, 머드와 주니퍼의 사랑은 유통기한을 며칠 앞두고 어떻게 변질될지 몰라 불안정한 상태다. 머드는 이 사랑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가져가려 하지만 주니퍼는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쭈뼛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이는 소년 엘리스다.

엘리스가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이유는 머드가 살인자라는 꺼풀은 벗기고 그를 한껏 올려다봄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머드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소년 엘리스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결국 그 소년은 머드에 동화됐다. 결과적으로 머드의 사랑은 고비를 넘지 못하고 좌초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불안한 결말을 예감한 당사자 머드보다 엘리스가 이를 받아들이는데 더 부침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본인이 실연을 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자리에 풀썩 쓰러져 오열하는 엘리스의 모습은 같은 모습으로 울었을 머드의 과거를 연상케 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엘리스의 사랑은 첫사랑이자 풋사랑이다. 영화는 엘리스의 사랑을 엮는 데 단 하나의 사건만을 마련했다. 그래서인지 엘리스의 사랑에는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14살 소년의 설레는 감정을 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후 둘 사이의 그 어떤 사랑의 불씨도 시원히 태우지 않음으로써 엘리스의 순수한 감정이 자칫 집착처럼 보일 수 있는 부작용을 만들었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첫 키스를 나눴다는 사실 하나로 사랑을 오해하는 엘리스. 이쯤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귀여움에 그친다. 엘리스가 첫 사랑의 실패로 절절히 가슴아파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사랑과 머드의 사랑을 결부하면서 오열했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 되겠다.

▲ 11월 28일 개봉한 영화 <머드>의 한 장면. 머드가 두 소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 Everest Entertainment


영화는 의미를 내재한 상징물을 배열해 인물과 서사를 풍성하게 그려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엘리스와 머드의 관계를 잇는 매개체로 쓰인 나무에 걸린 낡은 보트다. 엘리스는 이 보트를 아지트로 삼고자 했고, 머드는 이 보트를 타고 주니퍼와 멀리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보트는 말도 안 되게 나무 위에 걸려 있다. 이는 감정적 독립을 갈구하고 있지만 여러 환경의 제약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엘리스와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를 벗고 주니퍼와 영원한 사랑의 무대로 나아가고 싶지만 쉽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머드를 상징한다. 더 넓게 보면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의 위태로움과 그 지역의 도사리는 위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엘리스의 부모는 이혼 위기에 처해있고 살인자 머드는 그를 쫓는 다른 잠재적 살인자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나무에 걸린 보트 한 척이 두 인물과 그 주변의 모든 상황을 짐작케 한다.

또한 엘리스가 머드를 향해 자신이 이용만 당했다고 독설을 퍼붓고 돌아가다 살모사가 득실득실한 진창에 빠지는 장면은 엘리스 스스로 정의 내린 사랑의 실체가 결국은 믿음과 달리 삐걱거리면서 자신에게 실연의 상처로 되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이 장면에서 엘리스는 뱀에 물리고 머드는 뱀에 물리지 않았는데, 이는 머드 몸에 새겨진 뱀 문신이 설명해준다. 머드는 이미 엘리스가 겪었던 성장통을 한 차례 겪어 낸 '어른'이라는 것. 그 증표로 영화는 머드 몸에 뱀 문신을 새기고 낡은 셔츠를 덮었다.

이외에도 영화는 각 인물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드러낸다. 객관적인 사실만놓고 보면 머드의 여자 주니퍼는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갔던 것임에도, 머드는 그 사실은 차치하고 주니퍼를 꾄 남자만을 벌한다. 머드의 결론은 전적으로 유혹한 남자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같은 상황을 엘리스의 아버지가 맞닥뜨렸으면 어땠을까? 엘리스의 아버지는 엘리스를 향해 '사랑을 믿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이 말만을 놓고 보더라도 엘리스의 아버지는 주니퍼와 남자, 둘 모두를 벌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어주는 장면은 주니퍼와 떠나기 위해 보트를 열심히 고치고 있는 머드와는 반대로 같은 시간, 클럽에서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는 주니퍼의 작태다.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주니퍼의 작태를 목격한 소년 엘리스는 이 지점에서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인물의 개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반은 큰 사건 없이 잔잔한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돼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각 인물의 개성이 완성되고 머드와 엘리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곁가지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온도마다 다른 사랑의 모습과 이를 점차 깨달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을 차분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더구나 카메라의 시선은 간간이 소년 엘리스의 시점 쇼트로 넘어가 엘리스의 눈높이에서 모든 현상을 관망하면서 저마다의 과거를 한 번쯤 떠올리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동화로, 엘리스 또래의 소년들에게는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분위기로 영화 <머드>는 그렇게 남자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머드 매튜 맥커너히 타이 쉐리단 제프 니콜스 리즈 위더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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