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만 보고 후원금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①] '해고자' 가장을 살린 특별한 두 번의 인연

등록 2014.01.02 16:01수정 2014.01.0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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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1인시위 중인 변창기 시민기자 ⓒ 변창기


2013년, 새로운 희망을 마음에 품으며 시작했는데 어느덧 다 가버리고 2014년 새해가 밝았네요. 다시 한 살 더 먹고 새해가 밝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 2010년 해고당한 뒤 지금은 학교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형편을 안쓰럽게 여겨 도움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이 너무도 고맙습니다. 내 이웃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그런 인연이 생겼으니 참 희한한 일입니다. 저도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일부 사이트들은 자주 접속하여 애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와 <오마이뉴스>입니다.

다음 카페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만남도 이뤄져서, 취미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우연히 인연이 된 <오마이뉴스>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는이야기'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사 점수도 올려주고, 힘내라고 '독자 원고료'를 주기도 했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떠오르지만 그중에도 특별한 두 분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제가 애용하는 '시드니 사랑방'이라는 다음 카페 회원이셨습니다. 그 카페는 부천에서 빈민활동을 하시다 호주로 이민 가신 지성수 목사님이 운영하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면서 그 목사님과 연락이 닿았고, 목사님이 그 인터넷 카페를 알려줘서 저도 회원이 됐습니다. 카페에다가도 제가 쓴 사는이야기 글을 올렸는데, 재작년 어느 날 그분이 보시고 저에게 쪽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부천에서 식당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저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제 계좌로 매월 50만 원씩 생계비를 지원해주셨습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복 값과 입학금, 책값을 마련해야 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분이 생계비를 지원해주셨고, 황송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시간 나면 따님과 한 번 놀러오세요."


그분은 어느 날 제게 그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시간을 내어 부천에 다녀왔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인사도 드릴 겸 딸과 함께 그분을 찾은 것입니다. 그분은 우릴 반갑게 맞았습니다. 도수가 꽤 있는 안경을 쓰고 계셨고 생활한복을 입고 계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효석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다 명예퇴직을 하시고 식당을 시작한 지 꽤 됐다고 하셨습니다. 국어교사를 해오셨고 논술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낼 정도로 그 방면에 박식한 분이셨습니다. 제 딸에게 공부하는 법 좀 알려달라고 하니까 자신이 쓴 논술 책을 딸에게 선물하며, 두 시간 정도 강의도 해주셨습니다.

한 선생님께선 그 다음 날 우리를 데리고 이곳 저곳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휴전선이 보이는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가서 역사도 설명해주고, 다시 부천으로 가선 낮은 산도 같이 탔습니다. 그러면서 부천의 역사를 소개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저와 딸은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선생님은 1년간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요즘은 운영하는 식당이 많이 어려운 것 같은데도 협동조합으로 <콩나물신문>이란 지역신문을 만들어 보급도 하고 여러 가지 시민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제 '사는이야기'를 읽고 큰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변창기 시민기자가 쓴 <고딩 딸아이가 사준 감동의 '라멘'한 그릇> 기사 갈무리 ⓒ 오마이뉴스


<고딩 딸아이가 사준 감동의 '라멘'한 그릇> 기사의 주인공인 아버지나 딸아이의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혹시 알 수 있을까요?

한효석 선생님으로부터 후원금이 중단될 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마이뉴스> 쪽지함에 위와 같은 쪽지가 와 있었습니다. 쪽지를 보내신 분은 회사원인데 그 회사 회장님이 제가 쓴 글을 보고 많이 안쓰러워 했나 봅니다. 회장님이 "요즘 고등학생들 용돈이 얼마 정도 되는지"를 묻고 후원을 해주겠다 했다면서, 제 딸의 연락처와 은행 계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딸의 계좌와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다음 달부터 매월 20만 원씩 입금될 예정입니다"라는 쪽지가 다시 왔습니다. 그 뒤에 진짜로 후원금이 들어왔다면서 딸이 기뻐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의 도움이 저로선 가정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저는 2000년 7월께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업체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했지만 2010년 3월께 정리해고됐습니다. 학교 일용직 일자리를 얻어 일하고는 있으나 고용이 불안하고, 3년이 넘었지만 임금은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보험을 깨서 부족한 생계비를 메우기도 하고 친인척에게 돈을 빌려서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빚이 늘어만 간다고 한숨 쉬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 주말에는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시간당 4500원 받고 금·토요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근무합니다. 법정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시급이지만 그나마 벌어 보태야 될 것 같았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천사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에 여러 모로 도움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천에 사시는 한효석 선생님 고맙습니다. 식당운영 하시랴, <콩나물신문> 만드시랴, 협동조합 운동 하시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사업에 바쁘신 한 선생님. 부천은 울산보다 더 춥겠죠? 모쪼록 2014년 새해에도 건강한 말처럼 힘차게 뛰는 한 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딸이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입학금에 교복비에 부담이 매우 컸는데 선생님이 보내주신 지원금 덕분에 지금까지 학교 잘 다니고 있고, 2014년엔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갑니다. 부천에 방문했을 때 가르쳐주신 공부법 덕분에 흥미롭게 공부를 잘해나가고 있답니다. 나중에라도 다시 부천에 가서 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담쟁이문화원에 들러보고 싶습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딸 계좌로 매월 용돈을 보내주시는 이름 모를 회사의 회장님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제 딸은 그림을 잘 그립니다. 딸이 그림 카드를 예쁘게 그려서 감사의 인사라도 보내드리고 싶어 하네요. 주소라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디서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다사다난했던 1년이 역사 속으로 가버렸습니다.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최저시급이 4860원에서 5210원으로 오른다지만 학교 일용직 일당은 변함없이 5만3100원입니다. 현대차는 저처럼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를 끝내 외면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학교 일용직 일자리 역시 언제 '계약해지'를 당할지 몰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지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희망'을 가지고 싶습니다. 아직도 현대차를 상대로 '직접고용' 투쟁을 이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고요.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집단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정규직 전환' 돼서 출근하는 꿈을 꿔봅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움에 직면 했을 때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작은 보답이라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집안의 가장입니다. 가족이 저를 보면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2014년 새해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희망 #울산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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