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가 방사능을 걸러낼 수 있냐고?

[서평] 고이데 히로아키가 쓴 <후쿠시마 사고 Q&A>

등록 2013.12.31 16:46수정 2013.12.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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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데 히로아키가 쓴 <후쿠시마 사고 Q&A>겉 표지 ⓒ 무명인

"명태는 위험하다", "고등어도 위험하다", "일본산 생선과 수산물 먹으면 안 된다" 등등. 핵 방사능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허용기준치를 넘지 않았으니 안전하다고 하지만, 탈핵을 주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안전기준이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구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인류 역사 이래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정말로 일본에서 수입한 해산물은 먹을 수 있는 걸까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먹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은 수산물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후쿠시만 핵발전소 사고 이후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이데 히로아키가 쓴 <후쿠시마 사고 Q&A>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개월 후에 일본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교토대학 원자로 실험소에서 일하고 있는 반핵진영의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입니다. 반핵 신념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가 되지 못하고 평생을 조수(조교)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반핵 진영의 대표적인 핵과학자인 고이데 히로아키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많은 사람이 품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64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내가 사는 곳이 안전한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피폭량은 얼마인가? 하는 피폭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안전기준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의 답은 명료합니다. "안전 기준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피폭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지구상에 없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요컨대 아무리 미량이라고 해도 피폭은 위험하고 그 이하면 안전하다는 '안전한 피폭'이란 없습니다."

"일본은 국민의 연간 피폭량이 1밀리시버트(1m㏜)에 이르면 안 된다는 기준을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중략) 그런데 정부는 '이번 같은 사고에는 도저히 그 기준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20밀리시버트(20m㏜)까지 참아라' 라고 말하더니 연간 피폭량 상한선을 바꾸고 말았습니다.(중략) 결국, 안전을 고려해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의 현실에 맞춰서 기준을 바꿔 버리는 겁니다."

기준치 이하의 핵 방사능 피폭은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누구도 피폭자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안전기준치마저 고무줄처럼 늘려버렸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발전소에서 일하던 기술자들의 경우 연간 100밀리시버트(100m㏜)였던 안전 기준치를 단번에 250밀리시버트(250m㏜)까지 올려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연간 250밀리시버트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워낙 방사능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현장 작업원들의 피폭 기준치를 더 올려야만 사고를 수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는 도대체 어떤 사고가 일어난 것일까요? 많은 사람이 후쿠시마 제 1핵 발전소에서 구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평가 등급 7단계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고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고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쪽 해안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후쿠시마 제1핵 발전소의 모든 시설이 정전되었고 비상발전기마저도 고장 났기 때문에 전원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정전 이후 원자로는 냉각수 없이 과열되었고, 급기야 원자로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 3호기, 2호기, 4호기에서도 모두 수소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요약하자면 전기를 만드는 핵발전소에 전기가 없어서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했고 그로 인하여 수소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외부송전선도, 빙상용 디젤 발전기소 소용이 없었으며 결국에는 바닷물로 냉각시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일본의 피폭 안전기준

그뿐만 아니라 1호기, 2호기, 3호기는 고열로 연료봉의 상당 부분이 녹아버리는 멜트다운(노심 용해)이 일어났으며, 1호기의 경우 녹아내린 핵연료가 압력용기를 뚫고 격납용기에 떨어지는 '멜트쓰루' 상태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핵연료가 원자로 건물을 뚫고 나가면 지하수는 물론이고 바다까지 오염시키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제1핵 발전소도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을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석관을 만드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수백 년 동안 방사능 무덤을 지속해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멜트다운과 관련해 눈여겨 보아야 할 질문과 답변이 있는데, 지진 직후부터 멜트다운이 일어난 것을 도쿄 전력은 알고 있지 않았냐는 질문과 저자의 답변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도쿄 전력도 5월까지 멜트다운을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알면서도 숨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쿄 전력이 멜트다운을 알고도 사실을 숨겼다면 그것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멜트다운을 모르고 있었다면 사실을 숨긴 것 못지않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은 도쿄전력이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조차 제대로 못한 채 속수무책한 채로 두 달을 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제1핵 발전소 사고로 어떤 방사능 물질이 퍼지고 있으며 그 어떤 위험이 있을까요? 핵분열로 생성되는 방사능 물질은 몇 백 종류나 되지만, 주요한 물질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오드 131은 갑상선에 축적되어 방사선을 계속 내면서 갑상선암을 일으키고 반감기는 8일로 짧은 편입니다. 세슘 137은  근육과 생식기 등에 축적되어 암이나 유전장애를 일으키며 반감기는 30년 이며 자연 배설로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100~200일이 걸립니다.

스트론튬90은 뼈암이나 백혈별을 일으키고 반감기는 28.8년 이며 몸 밖으로 잘 배출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간 피폭당한다고 합니다. 플루토늄239는 최강의 독성물질로 반감기가 2만 40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방사선 피폭은 외부피폭과 외부피폭으로 나뉘는데, 호흡, 음식,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면 피폭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더욱 위험하다고 합니다. 엑스레이의 경우 외부피폭이고 짧은 시간 동안만 촬영하지만, 내부피폭이 일어나면 몸속에서 24시간씩 며칠 동안 피폭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한 핵과학자의 답이 나와 있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입니다.

▲ 정수기가 방사능을 걸러낼 수 있는가? 없다.
▲ 아이들을 피난시켜야 하는가? 가급적 피난 시켜야 한다.
▲ 비나 눈을 맞아도 되는가? 사고 직후가 아니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다.
▲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야 하는가? 마스크뿐만 아니라 긴옷과 모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후쿠시마산 야채는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다.
▲ 후쿠시마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가? 30년 이상 불가능하다. 채소를 씻으면 안전한가? 20%정도 방사능 오염이 줄어들지만 그 20%도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 학교운동장 흙을 교체해야 하는가? 학교 운동장 흙은 교체하는 것이 좋다.
▲ 오염된 농산물과 해산물은 어떻게 하나? 오염도가 낮은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먹는 수 밖에 없다.
▲ 피난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피난민들은 돌아갈 수 없으며 후쿠시마 제 1핵 발전소는 방사능 무덤이 될 것이다.

질문과 답을 짧게 요약했습니다만 책에는 비교적 상세한 답이 관련 자료들과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질문 중에는 도쿄 전력의 핵발전소가 왜 후쿠시마에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도 있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핵발전소 왜 동경이나 서울에는 없을까?

사람이 적게 살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기 때문에 인구가 밀집된 곳에 세울 수 없고 결국 사람이 적게 사는 곳에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동해안에 핵발전소가 집중되어 있지요. 결과적으로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은 내부 식민지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아울러 저자는 핵폭탄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피폭 피해를 입은 일본이 핵발전소를 추진해온 까닭을 네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전력회사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둘째는 많은 대기업들이 핵발전소 건립으로 돈을 벌고 있으며, 셋째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넷째 이유로 내부의 식민지들이 어려운 재정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핵발전소 건립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 강조합니다.

한편 핵발전소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핵발전소의 안전과 핵발전의 경제성에 대한 질문과 답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핵발전소는 CO2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라늄 제련과 농축과정에는 화석연료가 사용되기 때문에 CO2가 배출하고 있으며 CO2를 배출하지 않는 것은 핵발전소에서 핵분열반응을 할 때뿐이라고 말합니다.

"핵발전소가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방사능입니다. 핵발전이 만들어내는 방사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산화탄소의 폐해만 문제 삼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중략) 방사능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어느 쪽이 환경친화적인지 답은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핵발전을 위해서는 CO2를 배출하는 화석연료가 에너지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의 방사능 배출은 CO2보다 수백, 수천 배 더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후쿠시마핵발전소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도 사용 후 핵연료를 비롯한 핵폐기물이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또 핵발전이 수력발전이나 화력발전에 비해 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수력발전, 화력발전, 핵발전+양수발전의 단가를 비교하면 핵발전이 더 비싸게 먹힌다는 것입니다.

"발전단가가 가장 저렴한 것은 일반수력발전으로 1kW당 단가가 3.98엔입니다. 화력발전 단가는 1kW당 9.90엔으로 핵발전보다 비쌉니다. 하지만 핵발전소에는 교부금이나 개발비용 등이 들기 때문에 모두를 계산하면 1kW당 단가는 10.68엔으로 가장 비쌉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비용으로 드는 돈은 향후 막대한 금액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은 사고과 그 보상비용까지 계산에 포함하게 도면 핵발전이 가장 경제성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라늄은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력발전을 위한 연료들보다 매장량이 적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더 만들지 않아도 석유보다도 더 빨리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은 지속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한편 저자가 쓴 <후쿠시마 Q&A>를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핵발전소보다 더 위험한 것이 바로 고속증식로라는 사실입니다. 고속증식로에서 사고가 나면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물없이 나트륨으로 냉각시키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물을 뿌리면 대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고속증식로는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증식시켜서 다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특수한 원자로인데, 1968년부터 실용화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핵발전소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위험한 고속증식로가 핵발전 추진파들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태양광 발전이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혹은 대안에너지가 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저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태양광발전이 가진 한계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일본이 지금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다 태양광발전에서 얻으려면 일본 국토의 6%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숲이나 밭이 지닌 생명력은 태양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거기에 태양광 패널을 깔면 자연은 파괴되고 맙니다."

"일본은 50년이 지날 때마다 에너지소비를 무려 10배씩 늘려 왔습니다.(중략) 이 추세대로 에너지를 사용하면 2050년에는 태양에너지의 10%를, 2100년에는 태양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파멸이지요." (본문 중에서)

에너지 소비를 지금처럼 계속 늘려간다면 화력발전, 수력발전과 핵발전, 태양과 풍력을 모두 이용해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핵발전소 대신 태양광발전이나 풍력 발전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덧붙이는 글 후쿠시마 사고 Q&A - 핵발전과 방사능| 고이데 히로아키 (지은이), 고노 다이스케 (옮긴이) | 무명인 | 2013년 6월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Q&A - 핵발전과 방사능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무명인, 2013


#후쿠시마 #핵발전 #전기 #방사능 #고이데 히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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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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