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근로계약서... 이게 새해 선물입니까

비참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새해엔 비정규직 제도 사라지길

등록 2014.01.01 20:31수정 2014.01.0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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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작성한 근로계약서 학교는 그동안 아무말 없다가 2013년 마지막 출근날 갑자기 불러서 근로계약서에 도장 찍으라 했습니다. 맨 아래 ②항이 새로 첨가됐습니다. ⓒ 변창기


"변 주사님, 도장 들고 교장실로 좀 오시죠."


갑자기 행정실서 온 호출. 또 올 것이 왔나 싶었습니다. 직장에서 이런 말만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 앉곤 했습니다. 이것이 고용 불안 일자리에서만 경험 할 수 있는 긴장감입니다. 지난 12월 31일. 그러니까 2013년 12월 마지막 날 오전 11시, 불안한 심정으로 교장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야 변 주사님처럼 일 잘하는 분이 계시면 좋지만, 3월 초 교육청에서 정규직 발령 날 확률이 높아서요. 미안하지만 근로계약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교장실로 들어가 푹신한 소파에 앉으니 행정실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연말이고 보통 6개월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했으니 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급히 작성한 듯한 근로계약서는 내용이 조금 달랐습니다. 새로 만들어 온 근로계약서는 예전과 같은 머릿말을 달고 있었습니다. '지방공무원 행정대체인력 근로계약서'라고 눈처럼 하얀 종이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너무 비참한 새해 선물

2012년 7월 초 면접을 통과하고 출근해 작성한 근로계약서와 같아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만 다르게 적혀 있었습니다.


'제4조(계약기간)  ①항 - '을'의 계약기간은 2014. 01. 01 부터 2014. 02. 28.까지로 한다.(단, 근로기간 중이라도 정규직 인사발령이 있을 시는 발령날 전날까지를 계약기간으로 본다.)

지난 연말에 새로 작성한 근로계약서엔 2013년 7월에 체결한 근로계약서에 없었던 ②항이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②항 - 본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근로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근로계약서 4조 ①항에 있는 단서조항만 가지고도 교육청 인사담당은 불안했던 것일까요? 저는 첨가된 ②항을 보면서 울산시 교육청 인사 체계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전 다녔던 학교에서처럼 같은 근로계약서라도 1년이 채 되기 전에 정규직 발령을 내버리면 저는 4조 단서 조항 때문에 자동 계약해지와 동시에 정리해고 될 텐데 말입니다. 굳이 ②항을 더 첨가해 당사자가 비참한 심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근로계약서를 보면서 2개월 후 강제로 해고 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근로계약서를 내밀면서 "(여기에 사인하지 않으면) 1월부터 출근 정지된다"니 '을' 중의 '을'일 수밖에 없는 제가 무슨 항변을 할 수 있을까요. 강원도에선 학교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울산은 저같은 학교 비정규직을 대체인력이라는 이유로 계속 이용하려나 봅니다.

'교육공무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에 잠시 희망을 품어 보았으나, 역시 절망스럽습니다. 교장과 행정실장이 말한 내용과 ①항과 ②항을 연결해보면 그 내용이 이렇게 정리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똑같은 내용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3월 초에 정규직이 발령나도 계약해지 되고, 발령나지 않아도 계약은 해지된다.'

교장과 행정실장은 저에게 "2014년 3월 초에 울산시교육청으로부터 정규직 발령 날 확률이 높아서" 근로계약을 재갱신한다고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학교는 이미 교육청에 알아보고 저에게 통보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2월 말 근로계약서 내용에 따라 제가 계약이 해지됐는데도 정규직이 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학교 자체적으로 다시 대체인력을 뽑는다면? 교육청과 학교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지켜 볼 것입니다. 법적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대체인력 채용 공고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때 보면 알겠지요.

2013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감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2014년을 맞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개월 시한부 근로계약에 어쩔수 없이 도장을 찍어야 했습니다. 비정규직 처지가 참으로 비참합니다. 지난 1년간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치고는 너무한 것 같아 참 섭섭했습니다. 2개월 후 다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아내에게 어떻게 말할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근로계약서라는 '노비문서' 한 장으로 채용과 해고를 맘대로 할 수 있는 비정규직 제도가 2014년엔 사라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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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울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산시교육청에서 철야농성을 했을때 하룻밤 함께 했었습니다. ⓒ 울산학비노조


#학비노동자 #울산시교육청 #대체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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