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일하면서 화장실 한번 못가요"

[인터뷰] 2호선 차장 이기성씨... 하루 대부분 어둠에서 보내

등록 2014.01.02 10:52수정 2014.01.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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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운행 업무를 보는 서울메트로 소속 이기성(가명, 34세) 차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함께 탄 상황은 가상입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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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차는 외선순환 열차입니다. 2호선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2호선 운전 직원들은 보통 3시간에서 4시간 동안 연속 근무한다. ⓒ 이홍찬


"이번 열차는 외선 순환, 외선 순환 행 열차입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을지로 4가로 가는 승강장. 10-4번 문보다 조금 더 뒤에 있는 문. 지하철 차장이 타는 곳이다. 재빠르게 스크린 도어와 지하철 몸체 사이를 지나 그곳으로 들어갔다. 한 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 열린 창문으로 겨울바람이 들어왔다. 찬바람에는 사람 몸속에서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대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운행 차장 업무 이기성(가명, 34세)씨는 말했다.

"이전 타임에 근무한 분이 여기서 일을 봤나 봐요."

전철에서 '일' 보는 사람들

2호선 탑승 승무원은 한 번 탑승하면 보통 두 바퀴를 돈다. 총 소요 시간은 3시간여. 열차 기지까지 지하철을 끌고(이 차장은 열차를 기지로 몰고 들어가는 것을 '끈다'고 표현했다.) 들어가는 업무까지 할 때면 거의 4시간 동안 열차에 머무른다고 했다. 이기성씨는 이번 두 바퀴 업무가 끝나면 세 시간을 쉬었다가 다시 한 바퀴를 더 돈다. 그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서너 시간 동안 여기에만 있어야 한다는 거, 그게 힘들죠. 대소변을 처리하는 거 지금은 익숙하지만 처음엔 어려웠어요. 담배를 자주 피우는 편인데, 그거 참는 것도 힘들었고요. 결국 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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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 봉지와 대변 봉지 소변 봉투에 내용물이 차면, 젤리 형태로 변한다. 대변의 경우에는 일 처리를 한 다음 분말을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수분이 빠지고 고체 형태로 변한다. 이기성 씨는 냄새 때문에, 실내에서 대변 보는 게 싫다고 한다. 그래서 기관사에게 알린 다음 얼른 선로에 내려가 일을 본다. 이기성씨 제공.


"이번 내리실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 역입니다."

출입문을 열고 닫고, 안내 방송을 하고, 기관사를 보조하는 그밖의 업무가 차장의 일이다. 이야기는 자주 끊겼다. 짧게는 1분 길게는 3~4분, 그가 지나는 모든 역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기관사에게서 무전이 왔다. 생리 현상이 급하다고 했다. 이기성 차장은 서둘러 방송 마이크에 입을 댔다.

"이 열차, 이 열차는 열차 신호 정지 관계로 이 역에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열차는 당산대교를 건넜다. 넓게 펼쳐진 한강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풍광이 좋다는 기자의 말에 이기성 차장은 밤에 실내 등을 끄고 보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2호선 업무 강도는 다른 호선에 비해 높다. 연속 운행 시간이 가장 긴 것은 물론, 이용 승객 수가 서울 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가운데 가장 높다. 하루 기준 절반 가까이가 2호선을 이용(206만2000명. 2012년 현재)한다. 그런 만큼 이용 승객들의 민원이 많다. 민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돌발 상황도 많이 일어난 다는 것. 그래도 이기성씨는 2호선을 모는 게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2호선 모는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2호선은 지하로도 달렸다가 지상으로도 달렸다가 하잖아요. 1, 2, 3, 4호선 전부 마찬가지지만. 나머지 5, 6, 7, 8호선은 다 지하로만 달려요. 저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계속 지하에만 있는다는 게."

"지하철 2호선은 그래도 행운"

영등포구청역을 지나자 열차는 다시 지하 구간으로 들어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밖혀 있는 터널 지붕의 형광등과 열차 전조등이 내뿜는 빛으로 조금 밝아지는 부분을 빼고는 완벽한 어둠. 이기성씨는 영등포구청역에서 잠실나루역까지 약 40분 동안 다시 지하에 머문다.

기자는 2013년에 있었던 지하철 기관사 자살 사건을 이기성 차장에게 이야기했다. 6호선 운행하던 한 기관사가 운행중 사고를 겪고 나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2013년 1월 그 기관사는 결국 자기 집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이기성 차장도 그 사건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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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다니는 터널 어두움뿐이다. 5678호선을 운행하는 기관사들은 2시간에서 3시간 동안 지하에만 머무른다. 이기성 씨 제공


"안 좋은 일 한 번 겪고 나면, 이 어둠 속에서 오만 생각이 다 나겠죠. 아, 그러고 보면 2호선이 또 좋은 점이 있어요. 전 역에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다는 거죠. 물론 열고 닫아야 할 문이 40개에서 80개로 늘었지만, 그래도 더 안전하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더 놓이죠. 반면 다른 호선에는 아직도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역도 많지요. "

그때, 운전실 안쪽으로 '삐용삐용' 소리가 갑작스레 울려 퍼졌다. 귀가 먹먹할 정도다. 그리고는 승객의 목소리가 들린다. 승객은 춥다며 실내 온도를 좀 높여 달라고 말했다. 그는 서둘러 히터를 온도를 조금 높인 다음, 방송용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그리고 객차 내의 기온을 조금 높인다고 방송했다.

"열차 내 인터폰을 쓰면 이렇게 큰 알람이 울리죠. 이거 비상시에만 쓰도록 되어 있는데, 여름이나 겨울엔 이렇게 실내 온도 때문에 인터폰을 사용하는 승객들이 꽤 많아요. 아, 그리고 바로 뒤에 있는 문을 발로 빵빵 차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는 기자가 앉은 보조 의자 뒤쪽에 있는 객실과 연결되는 통로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서울 지하철 선로에 대한 운영권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 선로 가운데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선로가 많다.

1호선의 경우 지하 구간(서울역~청량리)에 대해서만 서울메트로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구간은 코레일이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 3, 4호선은 대략적으로 경기도권의 선로들에 대해서만 코레일이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서울 안쪽의 선로는 서울메트로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2호선은 온전히 서울권 안에서만 운영하니 전 선로를 서울메트로가 운영한다.

선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선로의 운영이 분할되어 있는 상황. 그래도 지하철은 함께 운행할 수밖에 없다. 서울메트로 홍보실에 따르면, 1호선 위를 달리는 열차 가운데 약 82.4%는 코레일, 17.6%는 서울메트로가 운행한다. 3호선의 경우에 이 비율은 24대 76이다. 그리고 4호선의 경우는 32대 69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최근 이슈가 된 철도 민영화로 옮겨 갔다. 여러 회사가 복합적으로 운행하는 현실, 이기성 차장의 생각은 분명했다.      

"경쟁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부분 어떻게든 더 친절하고 안전하게 서비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서비스의 질 차이를 느낄까요? 설사 느낀다 해도, 무슨 회사가 좋고, 무슨 회사가 안 좋다, 이렇게는 판단 못할 거예요. 경쟁을 어떻게 합니까? 수서발 KTX가 생길 텐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어요. 지하철도 그래요. 어차피 공기업 형태로 같이 운영할 건데, 왜 이렇게 운영권을 나눠놨는지... 뭐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습니다." 

"요금 올리고, 사람 줄이고, 임금 깎으면..."

지하철은 계속 어둠속을 달렸다. 

"솔직히 지하철이 민영화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최근 코레일 파업을 보면서 착잡한 것은 사실입니다. 불안하기도 하고요. 제가 보기엔 자회사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부채를 근거로 들잖아요. 근데 공공사업에 부채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웃긴 건, 그렇게 민영화를 한다고 쳐봐요. 과연 그 회사는 부채가 안 날까요? 정부가 수익보전한다고 돈을 또 넣겠죠. 결국 악순환일 겁니다. 공항철도 봐요. 코레일이 다시 사들였잖아요. 민영화해 봤자 국민들 세금만 더 먹을 겁니다."

최근의 철도 민영화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기성 차장은 깜깜한 터널처럼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화는 중간중간 끊겼다. 선릉을 지나 삼성역으로 가는 길. 이기성 차장은 운전실 오른쪽에 있다가 왼쪽으로 이동했다. 실내가 좁아 의자 뒤로 이동할 때 의자등과 벽 사이에 몸이 걸렸다.

"연말이라 그런지, 오늘 진짜 많이들 타네요."

"그래도 민영화하면 수익이 난다고 정부와 일부 언론은 말한다"고 기자가 말했다.

"요금 올리고, 일하는 사람 수 줄이고, 임금 깎으면 수익 납니다. 아, 그리고 정부 보조금도 함께 챙겨야겠죠. 그러면 수익 못 내라는 법 없죠. 근데 한 번 상상 해보세요. 과연 그런 철도가 어떤 철도가 될지?

저는 도대체 귀족 노동자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어요. 제가 하는 노동이 귀족 노동인가요? 노동자 앞에 귀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웃겨요. 귀족이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잖아요. 대통령에게 노동자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듯이 말이에요. 귀족들은 노동 없이 군림하는 사람들인데."

그는 담담하게 7년 차인 자신의 소득을 밝혔다. 초과(야근, 휴일 반납) 근무를 제외하고, 그가 받는 월급은 250만 원 남짓이다. 2007년 입사 당시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그의 월급은 귀족 수준이 아니다. 1년 차 시절, 매월 통장에 찍히던 금액은 200만 원도 안 됐다.

"지금 1년 차 후배들은 연봉 2800만 원 받는다고 들었어요. 걔네도 이것저것 다 빼고 통장에는 200만 원 정도 찍힐 거예요. 적지도 않지만, 많지도 않은 수준이죠."

"노동하는 귀족이 어디 있나..."

"그래도 평균 연봉이 6000만 원대인 건 사실 아니냐"고 기자가 물었다.

"평생 철도에서 일한 사람들(20년 차에서 30년 차)이 많아요. 그 분들이 서울메트로 전체 직원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쳐요. 여기는 위로 갈수록 있을 자리가 줄어드는 회사가 아니에요. 꾸준히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은 회사죠. 그러니까 연차가 많은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연차 높으면 연봉이 그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 거고요."

올해 7월에 이뤄진 한 취업 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100대 대기업의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 정도인 반면, 공기업 평균 근속년수는 15년이 넘었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직원 평균 근속 기간이 2012년 기준으로 20년을 넘어섰다.

잠실역. 기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뉴스 속보가 떴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했다는 소식이었다. 기자가 그 사실을 말하자, 이기성 차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파업이 끝난 것 같네요. 지하철 운행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뭐가 코레일인지, 메트로인지, 도시철도공사인지 몰라요. 어제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근무하는 동료를 만났어요. 역무실로 어떤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파업 좀 그만하라고, 쌍욕을 그렇게 했다고 하대요. 우리는 파업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런 일들 자주 있죠."

잠실나루를 거쳐 열차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강을 건넜다.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한강은 반짝반짝 빛났다. 기자는 두 바퀴 모두 함께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너무 갑갑했다. 화장실도 급했다.

"이번 내리실 역은 강변, 강변역입니다."
#지하철 #2호선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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