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차단기 없애면 아파트 품격 떨어진다?

[주장] 설치 여부 놓고 입주민 설문조사까지... 이웃과 통합하는 새해 되길

등록 2014.01.01 21:36수정 2014.01.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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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정문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차량 차단기 시스템 모습. 한가한 아침 시간이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차단기 개폐 지연으로 혼잡해질 때가 많다. 입주민과 경비실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 정은균


나는 출근길마다 승강기에서 두 명의 학생을 만난다. 한 학생은 같은 층에 사는 남자 고등학생이다. 다른 학생은 우리 집보다 몇 층 아래 사는 여고생이다. 이들은 모두 인사성이 밝다. 건성으로 하는 인사도 아니다. 이른 아침, 제법 머리를 깊이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는 예의바른 청춘을 보면 기운이 절로 난다. 누가 아파트를 삭막한 주거시설이라 했던가.


사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들은 대체로 인사성이 밝은 편이다. 승강기 앞에서 만나면 서로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놀이터를 오가는 초등생들도 단지 안에서 어른을 만나면 넙죽넙죽 인사를 잘 한다. 이웃들은 승강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올라가세요', '먼저 갑니다', '살펴가세요'를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여느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따사로운 풍경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진 배경이 있다. 우리는 2009년에 이곳에 입주했다. 단지에 입주민이 처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전북 군산에서도 조금 외곽 쪽에 있었다. 관청이나 기관이 밀집한 도심과 거리가 멀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택지개발지구로부터도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대형마트나 학교, 기타 편의시설도 시원찮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식구가 입주했을 당시만 해도 빈 집이 상당히 많았다. 승강기를 기다리며 홀로 서 있으면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분위기인데 말할 나위없이 스산했다. 그런데 그런 스산함을 느낀 이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현관에서 이웃을 만나면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새로 이사를 온 이웃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입주민 사이에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는 '문화'가 자리잡혔다. 어른들이 서로 흉허물없이 인사를 나누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따라했다. 나는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에게도 인사를 하는 편이다. 그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하기야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이 먼저 건네는 인사를 무시하겠는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아파트의 아직 '열리지' 못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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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정문의 차량 차단기 시스템 모습. 차단기와 조응하는 전자카드 비용 문제와, '내 집에 마음대로 드나들지도 못하느냐'는 심리적 저항감 때문에 입주민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하다. ⓒ 정은균


그런데 우리 아파트에는 아직 '열리지' 못한 문이 하나 있다. 열렸으면 좋겠는데 열리지 않는 문이다. 왜 그런지는 아직 확실하게 가늠이 서지 않는다. 열려서는 안 되다고 여기는 사람들 때문인지, 아니면 열어서는 안 된다고 강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차량 차단기 이야기다.

아파트 정문 입구에 설치된 차량 차단기는 전자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개폐된다. 입주민들은 그 센서에 반응하는 전자카드를 차량 전면 유리에 부착해야 한다. 차단기는 그 본체의 센서와 전자카드가 함께 작동하면서 오르내린다.

문제는 입주민들이 차량에 부착하는 전자카드다. 우선 구입 비용이 만만찮다. 카드 한 개당 2만5000원이나 된다. 차량별로 붙여야 하니 차가 두 대 있는 집은 카드 두 개를 구입해야 한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카드가 영구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 2년에서 4년까지 밖에 쓰지 못한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하는 첨단기술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최소 5년, 아니 영구용으로도 쓰지 못하는 카드를 2년마다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재구입해야 하는 사실을, 센서 기술에 과문한 나로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차량 차단기와 전자카드 문제로 부딪히는 입주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차량 차단기 앞에서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띌 때도 있었다. 자기 집 들어가는데 카드 안 달았다고 제지하고 확인하겠다는 걸 어느 누가 너그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런 심리적인(?) 이유 외에도 문제는 많았다. 차량이 짙게 선팅되어 있으면 전자카드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차량 차단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면서 수리비가 증가하는 문제, 경비 관리원과의 시비 문제, 경비 관리원의 순찰이나 청소 등으로 인한 사무실 부재 시 차량 차단기 운용 문제 등 사소한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차량 차단기 문제는 결국 전체 입주민의 설문조사에 부쳤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개별 세대를 방문해, 차량 차단기를 전면 개방하여 입주민 불편 사항이나 기타 문제를 없앨 것인지, 아니면 현재 시스템을 좀 더 보강하여 현행대로 차량 차단기를 유지할 것인지를 모든 입주민에게 조사해 그 결과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지난 12월 23일부터 시작된 설문 조사는 아직 진행중이다. 얼마 전, 우리집을 방문한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두말없이 차량 차단기 폐지 의견을 주었다. 전자카드 비용 문제도 크지만, '내 집 출입하는 데 웬 검문(?)이냐'는 심리적 저항감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차량 차단기 운영에 반대하는 이웃들의 주류 의견이기도 하다.

거창하게는 인근 지역이나 이웃 주민과 동떨어진 채 '내'가 사는 아파트 '품격'만 따지는 반공동체적(?)인 이기주의 논리에 대한 거부감도 폐지 의견을 던진 큰 이유였다.

분리가 아닌 '통합'이 대세... 우리 주민의 양식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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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아파트 승강기마다에 게시된 관리사무소의 공지문. 차량 출입 차단기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없앨 것인가의 문제를 입주민 의견 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정은균


차단기를 유지하자는 이들은 '명품 아파트론'을 내세운다. 외부인들이 무분별하게(?) 출입하면 아파트의 '품격'이 떨어져 아파트 값이 추락한다는 논리다. 참으로 속물적인 발상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삭막한 아파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도 이웃이나 인근 지역과 격리된 채 자신들의 아파트를 '성역화'하려는 이들이 많다. 서울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따로 무리를 지어 논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른들의 부끄러운 행태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형국이다. 한 단지 안에서도 아파트 크기에 따라 출입구를 따로 설치하는 데까지 있다고 하니 경악스럽기만 하다.

어디 아파트뿐인가.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서는 편가르기의 달인들이 극성을 부린다. 그 맨 앞자리에 정부가 있다. 정부와 사정당국은 올 한 해 내내 '종북몰이'로 불리는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덕분일까. 이제 정부에 조금이라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일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졸지에 '종북이'가 돼 버린 이들의 참담한 심정을 정부는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최근의 철도 파업 문제는, 거칠게 단순화하면 '분리'와 '통합'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벌이는 싸움이었다. 통합을 주장하는 노동·시민단체와 달리 정부와 철도공사는 자회사 분리를 통한 경쟁과 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에 관한 한 세계적인 흐름은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다.

'분리'와 '통합'이라는 키워드가 철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와 기술 개발, 교육·연구 분야의 첨단 열쇳말이 통합의 또 다른 말인 '융·복합'이 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서구 선진국의 저력이 차별화와 분리가 아니라 통합에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다가오는 갑오년이 그런 상식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실천하는 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다. 평소 따뜻하게 인사를 나눌 줄 아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의 양식을 믿고 싶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차량 차단기 #전자카드 #'명품 아파트론' #통합 #지역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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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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