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건 축소 시도 의혹, '정통성' 트라우마 때문"

[인터뷰 전문 ②] 500회로 종방한 <이털남> 진행자 김종배 시사평론가

등록 2014.01.02 16:26수정 2014.01.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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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500회를 끝으로 종방한 팟캐스트 방송 <이슈털어주는남자>(아래 이털남) 진행자인 김종배 시사평론가를 30일 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김종배 진행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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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정치적 프로세스인데, 박근혜 정부는 이걸 상당히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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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평론가로서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을 평가해달라.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을 두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많다. 100% 공감하고 동의한다. 단순히 최근까지 불거진 몇몇 현상에 국한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집권 이후의 국정 운영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리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경찰 병력이 민주노총을 침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적당한 타협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게 민주주의 원리 전반이 무너지는 단적인 표상이다. 사실 철도민영화 논란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하는 문제다. 정부가 임의대로 세워놓은 원칙에 맞게 그냥 가서는 안 된다. 국민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충실해야하고, 합의에 기초해서 국정을 펴야 한다. '적당한 타협'이라고 폄하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번 사안은 박 대통령이 숙지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원리가 어느 정도 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민주주의 후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든 청와대로 들어가면 정치적 프로세스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정치적 스케줄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5년 단임제이다 보니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겠나. 그래서 스케줄을 짜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케줄은 무엇을 실행하자는 합의가 전제돼야만 성립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정치적 프로세스인데, 박근혜 정부는 이걸 상당히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전 대통령에게도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났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 좀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동반될 수 있는 갈등과 진통을 소모적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이 이전 정부보다 더 심해졌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가 외치 잘했다? "한복 말고 결과 살펴봐야"


- 박 대통령이 후보 당시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과 달리, 진보-보수 또는 연령대별 분열 양상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집권 초기 '박 대통령 대 문재인 후보 지지 국민' 간의 갈등 구도가 점차적으로 '박 대통령 대 일반 국민'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문 후보를 지지한 국민 의외에 다른 국민들에게도 점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댓글 몇 개 단 게 대선 결과에 큰 영향 미쳤겠느냐고 했는데, 댓글 개수가 갑자기 2만개, 200만개, 2000만개로 늘어나니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또한 대선과정에서 밝힌 복지공약이 파기되면서 삶의 조건 더 나빠지는 게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이 퍼졌고, 이것이 갈등구도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30일자 <한겨레>에 실린 중도·무당파 층의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기사를 보면, 12월 셋째 주 마지막 조사에서 '잘못하고 있다'(49%)는 답이 '잘하고 있다'(33%)보다 16%p 높게 나타났다. 이런 추세가 나타날수록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대통령 본인에게도 좋은 바가 아니다.

내년 초가 되면 민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현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분기점은 내년 초에 형성될 것이다. 불만이나 문제의식이 여과되느냐, 아니면 더 누적이 되느냐의 갈림길은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 하지만 전반적으로 박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 2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40~50%대를 유지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변수가 고려되지 않았다. 하나는 언론 환경의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경우 국정수행 지지도가 L자형이었다. 초반에 높다가 급락했다. 그때는 언론이 대통령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공중파 방송 뉴스가 '땡박뉴스'로 표명되는 등 질적으로 언론 환경이 다르다. 여기에다가 국정사안, 정치적 이벤트만 언론에서 부각된다. 해외 순방을 가서 한복을 입었다는 등 퍼포먼스적인 요소들이 보도되면서 일정하게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부분이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내치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지만 외치에서는 나름 성과를 이뤘다는 평도 있다.
"이해할 수 없다. 대북관계도 외치로 놓는다면, 대북관계는 지금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다. 개성공단 문제가 불거진 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했는데 급수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파토를 내지 않았나. 이게 잘하는 외치인가 싶다. 또 박 대통령이 취임 후 방문한 게 중국이다. 거기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온 게 방공식별구역 갈등이다. 미국 방문 때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평화 모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입각해서 볼 때, 한미 간의 굵직한 현안인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나 북핵 대응 문제와 관련해 이해하기 힘든 결과물이 나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하면서 한복을 입는 등의 퍼포먼스를 벌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상외교를 통해 무엇을 얻어냈고, 그것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국익증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등의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과연 어떤 결과를 냈는지 근거를 제시해보라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 축소 시도 의혹, 박 대통령 '정통성' 트라우마 때문?

- 국가정보원 등의 국가기관 대선개입 이슈가 1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나.
"박 대통령이 실기를 했다. 때를 놓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입만 열면 되뇌는 법과 원칙 따라 집권 초기에 처리하면 되는 문제였다. 이 사건은 MB정부 국정원장이 저지른 일이다. 정말 박 대통령 말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으면 이렇게 까지 문제가 커졌겠나. 그런데 도리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이 터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지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가 갈등을 벌인 끝에 결국 선거법 위반이 적용됐다. 그러고 나서 발생한 게 채동욱 사건이다. 정황상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축소시키려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정통성 문제에 대한 나름의 상처가 있다고 본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번이나 정통성 문제를 겪었다. 하나는 5·16 군사 쿠데타고 또 하나는 유신 독재다. 이게 지난 대선과정에서 선거 쟁점이 됐다. 이러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 따른 해결을 주저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따라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규정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확히는 '관권이 개입한 부정선거'라고 규정해야 한다. 우리가 '3·15 부정선거'라고 얘기하는 역사적 사건도 몇 표가 어떻게 왜곡됐는가라는 집계가 나와서 부정선거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서 부정선거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 활동에 나선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현 정부의 핵심 이슈인 국정원 사건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 보는가.
"냉정하게 얘기하면, 최근까지 국정원 사건은 소강국면에 있는 상태다. 이게 다시 발화점을 형성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지금 여야 모두 이 문제를 퉁치고 가려는 거 같다. 민주당의 이런 스탠스에서는 발화점을 찾기 쉽지 않다. 야당의 또 다른 폭로나 문제제기에서 다시 발화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원세훈-김용판 1심 판결 결과가 발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까딱하다 국민 계속 피곤하게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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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네가 말하는 거 한번 들어보자'는 게 아니다. 소통이라는 단어의 정치적 함의는 '이런 사안은 국민 의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합의를 도출한 다음 집행하라'는 뜻이다." ⓒ 권우성


- 앞으로 4년이 더 남은 박근혜 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정현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지적에 '대통령이 얼마나 신문을 얼마나 꼼꼼히 챙겨 읽고 그러는데 무슨 불통이냐'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저항세력과의 불통이라면 우리는 5년 내내 불통으로 가겠다'고 하기도 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세가 부족하다는 단적인 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불통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의 핵심도 이런 데 있다.

소통은 '네가 말하는 거 한번 들어보자'는 게 아니다. 소통이라는 단어의 정치적 함의는 '이런 사안은 국민 의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합의를 도출한 다음 집행하라'는 뜻이다. 뭔가 잘못 알고 있다. 이게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4년도 지난 1년과 다를 바 없다.

특히나 더 우려스러운 건 내년 지방선거 결과다. 만에 하나라도 청와대 입장에서 흡족한 결과가 나온다면, 지난 1년 보다 더 악화되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소통이라는 두 글자 갖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게 돼야 이후 4년 동안 국민이 편안해진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광화문 광장에 나와야 하나. 좀 편하게 살자는 것이다."

- 박 대통령 주변 참모진을 두고 '민주주의 사고방식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평이 많다.  과연 '소통'의 정치적 함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식의 효율주의라는 게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 시대에는 중앙집행기관인 행정부에서 모든 계획을 짰다. 이 일정표에 맞추기 위해 공권력을 앞세워서 반대 의견을 밀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국정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 그림자가 여전히 너무 짙다. 지금의 청와대도 이런 효율주의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항세력'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항세력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다. 저항세력으로 정의하면 이들은 도려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돌격 앞으로' 모드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들과 논의해서 손을 맞잡는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 이대로 가다가는 시민들의 반발이 극심해져서 정국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 병력이 민주노총을 침탈했을 때, 20대에서는 '무섭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실 20대는 유신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당시 상황을 모른다. 그런데 경찰의 강제 진입 장면을 보고 '저런 게 유신인 거냐'고 하는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철권통치를 할 때의 과정을 보면, '무서워'가 불만이 됐고 불만이 분노로 확장돼 결국 표출됐다. 불만이 표출되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니 바람직하지 않다. 표출이 안 되도록 하는 게 박 대통령 입장에서나 국가에서나 좋다. 결국 박 대통령이 변하는 게 가장 생산적이다.

'박 대통령 대 국민'이라는 대결구도 전선이 갈수록 넓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걸 정부가 인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계속 피곤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김종배 #이털남 #박근혜 #박근혜정부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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