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도 좋아했던 그림, 여기에 많아요

맛과 멋, 풍광까지 즐길 수 있는 따뜻한 통영 이야기

등록 2014.01.02 14:14수정 2014.01.02 14:14
0
원고료로 응원
a

통영 사람들의 활기차고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강구안 - 동피랑 마을에서. ⓒ 김종성


잘 알려진 명소가 단순한 관광지에서 풍성한 여행지로 변모하게 될 때 생기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게스트 하우스의 존재다. 올레길이 생겨나면서 제주도가 그랬고, 부산도 마찬가지.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포근한 남쪽나라가 연상되는 경남 통영도 그런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숙박할 곳을 찾다가 이 작은 항구도시 곳곳에 예닐곱 개의 게스트 하우스가 성업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성수기 때와 달리 한겨울이라 가뿐하게 예약을 하고 한국의 나폴리 통영을 향해 떠났다.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서 통영의 미항(美港) 강구안, 항구 시장, 정겨운 언덕 동네, 해저터널,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해안도로를 구석구석 달려 보았다. 미식의 도시답게 시락국, 꿀빵, 고구마로 만든 빼떼기죽, 충무김밥, 굴밥, 물메기탕 등이 있어 자전거 페달질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통영의 정겨운 동네, 항남동

a

시장 상인들의 점심시간,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에 나도 옆에 끼고 싶었다. ⓒ 김종성


a

굴뚝이 있는 목욕탕, 대장간 등이 남아있는 정겨운 동네 항남동. ⓒ 김종성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처음 내린 곳은 통영의 대표시장 서호시장과 항남동. 새벽 4시, 서호시장의 부지런한 상인들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장통에 모여 있는 시락국집(시락은 시래기 혹은 무청의 사투리)에서 시장상인들과 함께 진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을 땐 포만감과 함께 여행자만의 묘한 기쁨이 몰려온다. 서호시장에도 매 2일, 7일에 오일장이 열린다고 한다.

서호시장을 지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통영 꿀방의 원조 '오사미 꿀방'집에 들렀다. 가게가 아닌 꿀빵집이라 표현한 건 수년 전 찾아왔을 때와 똑같이 변함없는 소박한 모습 때문. 달콤 쫀득한 꿀빵을 입에 물고 항남동 골목길을 누볐다. 하늘 높이 치솟은 목욕탕의 굴뚝이 눈길을 끈다. 통영은 곳곳에 뜨끈뜨끈한 정이 느껴지는 목욕탕들이 많이 있다.

가까이에 강구안 항구, 시장, 동피랑 마을 등 여행지가 많다보니 항남동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화려한 숙박시설과 카페들 사이로 웬 망치질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대장간이 나타난다. 그런데 간판 이름이 '삼성 공작소'다. 스무 살 이후 40년이 넘게 대장간 일을 했다는 대장장이 아저씨는 통영에선 대장간을 공작소라 부른단다. 그전엔 재밌게도 '성냥간'이라 불렀단다. 10개가 넘었던 항남동의 주변의 공작소는 이제 두 군데만 남았다고 한다.


강구안을 마주보고 있는 중앙시장에 들어서면 활기가 넘친다. 입을 벌리고 꼼지락 거리는 조개, 두 개의 촉수를 꺼내어 더듬거리며 움직이는 전복, 인간에게 잡힌 게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물메기들 (표준말은 꼼치)이 수족관에 가득하다. 어류들이 겨울추위를 피해 남쪽 바다로 떠났다더니 이곳 통영으로 다 모였나보다.

a

강구안 앞 중앙시장 아지매들이 찬물을 만지느라 시린 손을 녹이고 있다. ⓒ 김종성


a

항구 옆 바닷가의 달동네 동피랑 마을 풍경. ⓒ 김종성


눈만 마주치면 "보이소, 사이소~"를 외치는 중앙시장 통 상인 아지매들의 강한 생활력에 놀라다가도, 뜨거운 물을 담근 그릇에 고무장갑 낀 시린 손을 덥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까마득한 언덕 위에 있지만 통영에 왔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동쪽에 있는 벼랑 '동피랑' 마을이다. 동암산(東岩山) 위에 생겨난 초라했던 바닷가 달동네가 남녀노소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동네가 되었다. 수없이 보아왔던 파괴와 이산을 통한 도시 개발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것의 보존을 통해 이루어낸 동네라 그런지 정감이 간다.

동피랑 마을에서 가장 전망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한 어느 집 옥상이 작은 가게가 되어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옥상집에 대대로 살던 중년의 부부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바쁜 통에도 웃는 표정이라 보기 좋다. 통영이 고향인 아내를 따라 왔다는 아저씨는 건너편에 훤히 보이는 '서피랑' 마을이며, 임진왜란 때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는 '세병관' 자리, 쪽빛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는 이순신 공원 등을 소개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뚱보할매'가 개발한 '충무김밥'을 한 봉지 샀다. 남해 바다 풍경을 보며 먹으려고 자전거 짐받이 가방에 김밥을 싣고 동피랑 옥상가게 아저씨가 추천한 정량동 이순신 공원을 향해 페달을 부지런히 돌렸다.

송장목, 판데목... 해저터널의 다른 이름

a

남해바다와 통영의 많은 섬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보이는 이순신 공원. ⓒ 김종성


a

일제강점기때 지은 해저터널엔 의외의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김종성


통영(統營)이란 이름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금방 떠오르는 명칭이다. 정량동에 있는 이순신 공원은 한산해전의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통영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그 유명한 학익진 전술로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이기도 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려 1994년까지 충무시(현재 통영시)로 행정구역상 존재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해저터널에도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남아있다. 해저터널 앞 관광 안내소의 직원이 터널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물목, 운하처럼 생긴 이 좁은 수로는 병목현상 때문에 조류의 흐름이 매우 빠르다. 때문에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많이 빠져 죽은 곳이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쫓긴 적선이 썰물 때 이 좁은 목에서 걸리자 수로를 파서 도망치려다 떼죽음을 당했다 해서 판데목, 수많은 왜군의 시신이 떠밀려 왔다고 해서 송장목이라 부르기도 했다. 판 곳이라는 의미로 판데목 혹은 한자어로 착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까운 당동에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단다.

a

통영의 색과 풍광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전혁림 미술관. ⓒ 김종성


a

추상적이고 화사한 그림속에서 우리 전통의 색과 미가 느껴지는 전혁림 화백의 그림. ⓒ 전혁림 미술관


해저터널을 지나 바로 바닷가 해안도로로 가지 않고 미륵산 자락 봉평동에 있는 전혁림 미술관에 찾아갔다. 허벅지 아프게 언덕길을 달려 미술관으로 간 건 한 가지 궁금증 때문이었다.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유치진, 김상옥, 김춘수, 전혁림 등 이 작은 항구 도시 통영에서 어떻게 많은 예술가가 배출될 수 있었을까.

단층의 아담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전혁림 미술관은 건물 외관도 미술작품처럼 멋있다. 전혁림 화백(1916-2010)이 30년간 살던 집을 고쳐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전혁림 화백은 색채의 마술사, 다도해의 물빛 화가, 색면 추상의 대가, 한국적 추상화의 비조, 한국의 피카소 등으로 일컬어진다. 그가 가진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다채로운 작품들이 1층부터 3층까지 내 눈길을 휘감는다. 전 화백의 뒤를 이은 아들 전영근 화가의 작품들도 상설 전시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따로 없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기분이 환해진다. 마치 미술관이 아니라 배를 타고 다도해 바다에 들어선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 남해바다, 한려수도를 연상하게 하는 쪽빛, 코발트블루 색채가 추상화 속에서 한껏 넘실거린다.

추상적이고 화사한 그림 속에서 화가가 좋아했다는 민화가 보이고, 한국사람 만이 감지할 수 있는 우리 전통의 색과 미가 느껴진다. 전혁림 화백은 유학은 커녕 미술 대학을 다닌 적도 없이 홀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생전에 그는 '나의 스승은 책과 자연, 통영의 바다'라 했단다.

해방 후 1947년 통영이 낳은 윤이상, 김춘수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일흔이 넘어서야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남들은 은퇴하는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그림을 팔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고 하니, 화사한 색채 뒤로 숨겨진 예술가의 고뇌가 보이는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의 그림을 좋아해 <통영항>이란 작품을 구입해 청와대에 걸어 놓고 늘 감상했다 한다.

"추상화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많은 그림을 보지 못했다는 증거예요. 더 많은 그림을 보세요. 그러면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참, 그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느끼는 것이지!" - 전혁림 화가의 구술집 <전혁림 다도해의 물빛 화가>

이름만큼 편안한 자전거길, 삼칭이 해안길

a

통영 도남동 부근의 삼칭이 해안도로는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이다. ⓒ 김종성


a

바다 풍경의 진수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미륵도 동남쪽 해안도로. ⓒ 김종성


바닷가 마을 통영은 산자락이 많고 평지가 드물다. 이 가운데 삼칭이 해안도로는 걷거나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은 평탄한 길이다. 이 해안 도로는 해저 터널을 지나 도남동 마리나 리조트나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만든 통영국제음악당 옆 바닷가를 따라 산양읍 영운리 어촌 마을까지 약 4km로 이어진다.

삼칭이란 재미있는 이름은 삼천진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이 길 끝자락 마을인 영운리에 삼도수군통제영 수군의 주둔지인 삼천진이 있었다. 삼천진은 본래 삼천포에 있었으나 1619년(광해군 11년) 영운리로 옮겨오며 삼천진이란 이름도 함께 가져왔다. 과거에는 진이 옮겨가면 이름도 옮겨갔단다. 본래 삼천진은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고 만들었던 진이다.

펜션들과 함께 아담한 모래해변의 통영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은 이름도 특이하다. 바로 수륙리(水陸里)다. 삼도수군통제영 시대 죽은 수군들의 원혼을 달래는 수륙제를 행하던 장소라 해서 수륙리란 이름을 얻었단다.

a

바닷가의 작은 어촌마을 영운리에 있는 영운분교의 전교생들이 선생님과 운동을 하고 있다. ⓒ 김종성


본래 수륙제란 수륙(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공양(供養)하는 불교의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부근에서 얼마나 많은 수군들과 적병들, 무고한 백성들이 죽었을지···. '더없이 평화롭고 무심하고 푸르른 저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품은 무덤이기도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삼도수군통제영 수군의 주둔지인 삼천진은 이제 없지만 영운리엔 한려초등학교 영운분교가 있다. 바닷가의 작은 어촌 마을 분교가 폐교되지 않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반갑다. 아담한 학교 운동장에서 10명이 채 안 되는 전교생이 나와 선생님과 운동을 하니 모습이 참 정다웠다.

어느 덧 해가 저물고 삼칭이 해안길을 다시 달려 숙소인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통영 항남동으로 돌아오는 길, 통영의 풍경에 반해 어찌나 사진을 자주 찍었는지 배터리 2개가 모두 방전이 되고 말았다. 덕택에 해 저무는 바닷가와 통영 운하, 거북선이 들어선 강구안의 항구 야경은 추억 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꽃피는 봄엔 어떤 풍경과 맛, 멋을 느끼게 해줄 지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서호시장 - 항남동 - 중앙시장 - 동피랑 마을 - 이순신 공원 - 강구안 - 해저 터널 - 전혁림 미술관 - 삼칭이 해안길 - 영운리 한려초등학교 영운분교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http://sunnyk21.blog.me 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자전거여행 #통영 #항남동 #강구안 #삼칭인 해안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