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잘 노는 방법은 따로 있어요

[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32] 아이와 잘 노는 방법

등록 2014.01.01 15:41수정 2014.01.0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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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노는 걸 연구를 해 본 아빠들은 알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잘 놀 수 있는지. "아이들과 잘 노는 방법은 뭔가요?"라고 질문하는 순간, 아이들과 잘 놀지 못한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과 잘 노는 방법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잘 놀 수 있는지 이야기할까 합니다.


나도 한때는 아이들과 놀거리를 연구해서 아이들 앞에 내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 대견해하지만 아이들 보기에는 전혀 성에 안 차지요. 하지만 이 정도 아빠라면 전체 아빠의 2% 안에 들 것입니다. 20% 안에 드는 아빠들은 놀이공원이나 OO랜드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기구 줄을 서고 있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OO랜드의 주차장을 보면 '부모님들, 애 쓴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놀이공원에 가서 아이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공으로 만들어진 재미 같습니다. 음식점에서 어른들이 인공조미료 MSG에 마비된 것이나, 어린이들이 인공 재미에 마비된 것이나 진배없지요.

나는 22%의 아빠들이 애틋하고 안타깝습니다. 최소한 아이들과 잘 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아빠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아이들과 놀고 싶어하는 아빠들을 위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놀이 저런 놀이를 만들면서 생각난 것은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정신이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옛것을 전달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 - <논어> 7-1 일부

보수주의자인 공자의 '옛 것'을 나는 아이들의 놀이와 감정으로 응용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놀이를 새삼 만들 필요는 없고 그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그만이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은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음유시인처럼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놀이를 일부러 만들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알았습니다. 놀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른이 절대로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제는 최소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을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아이들이 놀이를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뒤탈이 나지 않도록 뒷받침을 해주는 게 부모의 포지셔닝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조연배우'라고 하면 딱 맞는 비유입니다.


아이들과 내 고향 성산포 마을을 여행하듯 돌아다녔습니다. 성산일출봉이 몸통을 담그고 있는 수메밑 바다는 기다란 해변이 장관입니다. 특히 둘째 민서는 모래사장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낭떠러지 옆에서 노는 것만 제어를 해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눈썰매장으로 바꿔 버립니다. 조금 경사진 모래의 지면을 이용해 엉덩이로 해변까지 20미터를 넘게 나아갑니다. 계단 옆에 나 있는 돌담을 짚어서 곧바로 암벽타기에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밑에서 보조를 해주고, 가끔 도움을 요청하면 들어서 올려줍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현란합니다. 갑자기 한데 모여 모래를 퍼 담으며 단숨에 둔덕 하나를 만들어냅니다. 그 옆에는 똑같은 둔덕이 하나 생겼는데, 어디서 구해 왔는지 나뭇가지가 송송 박혀 있습니다. 왜 나뭇가지를 박았는지 물어보니 '뾰족산'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공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하지 않으면 제자들은 어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를 운행하고 만물을 낳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 <논어> 17-19

우리 아이들은 생명과 자연을 많이 닮았습니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아이들이 내는 생명과 자연의 소리를 잘 듣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침을 깨우는 새들처럼 사람의 정신을 깨우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길들이려고 하기보다는 보조를 해주세요. '말의 무의미성'에 대해서는 동서양 할 것 없이 많은 말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불교의 사상을 비롯해서 노자와 장자의 철학 역시 말의 한계를 명확히 합니다.

<논어> 등 공자의 언행 기록 중에는 공자가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했던 모습과 하늘을 보고 깊이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동양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동양의 가르침을 따르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동양철학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서당에서 <맹자>를 읽으면서였습니다. <맹자>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구절 중의 하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였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알고,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배양한다."
공손추가 물었다. 
"감히 묻사오니,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하기가 어렵다. 그 기라는 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서, 이것을 곧바로 배양하여 상해가 없다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 메우게 되고, 그 기라는 것은 정의와 도덕에 배합된다. 이것이 없다면, 약해진다. 이는 정의가 모여서 생겨나는 것이지, 밖에서 엄습하여 이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행위가 마음에 만족하지 못하면, 기는 약해진다. - <맹자> 3-2 일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연지기'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 공감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슴으로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고향을 여행하면서 호연지기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을 뒤로 하고 해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놀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때마침 성산일출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밴드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자 어깨춤을 흠씬 추자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막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민서는 얼마나 흥겨웠는지 춤  추다가 자빠지고 일어서서 또 춤을 췄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신이 났는지 돌아오는 길에 식당 앞에서 다시 춤을 추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행복해졌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호연지기였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표정이 바로 호연지기였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밤 아홉 시에 일제히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10시나 11시에 겨우 자는 아이들이 일찍 단잠이 들었다는 말은 하루 종일 제대로 놀았다는 뜻입니다.

놀이공원과 이곳저곳 현장답사를 한 어른과 고향에서 하루 종일 신나게 논 어른은 여기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시골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게 함께 참여한 어른은 호연지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몸이 지치지만 마음은 지치지 않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놀이공원 등을 바쁘게 돌아다닌 어른은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칩니다. 규모가 큰 놀이공원에는 '놀이방' 시설이 있는데, 거기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의자나 모퉁이에 지친 표정으로 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 놉니다.

이것은 호연지기의 단절이자, 놀이의 단절이며, 어른과 아이의 단절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따로 놀고, 아이의 놀이에 어른이 참여하지 않는 놀이는 아이들에게는 인스턴트 음식과도 같습니다. 앞서 소개한 민준이와 민서의 신나는 하루를 '어른'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른이 어떻게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세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게임의 용어를 쓰자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플랫폼(platform)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항구의 접안 시설이나 전철역의 플랫폼은 배와 기차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승객들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바로 그 역할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과, 자신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무척 안정적이 됩니다.

다시 말해 맘 놓고 놀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놀이의 환경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추임새'로 재미를 더해줍니다.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로봇이 출동하는 산이라고 신나게 설명합니다. 아이들이 만드는 모습이나 만들어 놓은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뭇가지는 왜 꽂았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의 대답은 더욱 구체적이 됩니다. 자신들이 한 행동을 설명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놀이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놀이는 많은 말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잘 지켜보면 무척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노는 아이들과 말을 섞음으로써 함께 놀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추임새'의 세계는 어른의 독특한 영역이 될 수 있으며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의 추임새에 따라서 아이들의 놀이 쾌감이 무척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제 현장에서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냅니다. 나는 리듬에 맞춰 약간 어깨를 들썩거린 것뿐인데 아이들은 흥에 빠져 정신없이 춤을 춥니다. 식당 앞에서는 음악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흥겨운 음악을 조금 들려주면 아이들은 리듬에 맞춰 그 자리에서 춤을 춥니다. 어른의 추임새는 아이들에게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나는 '호연지기 스위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호연지기란 다름 아닌 '연결'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호연지기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나 혼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며,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호연지기를 이해한 것은 함께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과 잘 논다는 것은 '함께'와 '어떻게'의 문제입니다. 주연배우를 도와주는 조연배우의 포지셔닝과 추임새만 알아도 아이들과 잘 놀 수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 비싼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아이들의 단순한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보다는, 집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놀이 감수성'을 키워주세요. 장난감이 아닌 것을 장난감으로 놀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아이들의 놀이 감수성과 호연지기는 충만한 상태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동양철학으로 육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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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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