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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잘린 손가락을 갈매기에게 던졌을까

[리뷰] 마이클 무어 감독, 미국 의료체계를 진단한 영화 <식코>

14.01.02 10:43최종업데이트14.01.0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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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식코(Sicko)>(2008년작)의 첫장면은 '애덤'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그의 다리를 치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거즈를 상처에 대어 피를 닦아내고, 실과 바늘로 벌어진 피부를 직접 꿰매고 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닉'은 더 심각해 보인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절단하다가 두 손가락이 잘린 그는 병원에 갔지만, 손가락 하나는 끝내 포기해야만 했다.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고? 왜 손가락 하나는 봉합하지 않았느냐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물음이다. 아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병원치료를 왜 이들은 온전하게 받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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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애덤과 릭은 대답한다. "제대로 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릭의 절단된 두 손가락 모두 봉합하는 수술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필요로 했다. 중지는 자그마치 6만 달러, 약지는 1만2천 달러였다. 한국 돈으로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기에 평범한 서민이었던 릭은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갈매기가 우글거리는 매립장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영화 <식코>는 120분의 상영시간동안,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국 국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애덤과 릭처럼 이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미국 내에서만 무려 5천만 명이나 되고, 매년 1만 8천 명이 의료보험 혜택의 부재로 사망하는 현실이다.
 
망가진 미국 의료보험제도, 그리고 드러난 이면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국가'로 이미지를 각인시킨 미국. 그러나 세계 보건복지 부문에서는 37위(영화 개봉 당시)로 떨어지며 망신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배경에는 닉슨 대통령 시절, 정부가 보험회사와 작당하여 국민건강보험 제도에 손을 대어 점점 그 혜택을 줄여나갔기 때문이다(영화에서 이에 관한 닉슨 대통령의 녹취록이 공개된다).
 
그 뒤로 수십년 동안, 최근에 이르기까지 보험회사의 만행이 이어진다. 아프거나 다쳐서 보험비용을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이건 보험보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서 어떻게든 돈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영화는 보험회사에서 일했던 두 사람의 양심선언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준다. "어떻게든 지급을 막으면 그 대가로 회사로부터 거액의 연봉과 승진이 보장되곤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일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서, 자신의 지급승인 거부로 인해 끝내 사망한 사람들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이를 폭로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국가의 의료보험제도는 점점 그 보장을 줄여가고, 그 때문에 사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정작 필요할 때에 '지급거부'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그런 착취를 대가로 보험회사 CEO들은 백만장자가 되어간다. 영화 <식코>는 이 불쾌한 과정을 취재에 가까운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국현실이 '시장경제' 아래에서 당연한 일? 천만의 말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누군가는, 미국의 이러한 현실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은 사람은 더 좋은 의료제도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은 의료제도의 혜택이 없어서 치료받지도 못하는 상황 말이다. 과연 그럴까?
 
영화 <식코>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직접 발로 뛰며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어떤 의료체제로 국민건강을 꾸려나가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말한 유럽국가는 '복지'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만한 스웨덴 같은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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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는 제일 먼저 영국과 캐나다, 프랑스의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 세 국가에서는 무상의료제도가 확립되어 국민이 아플 때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은 전혀 없다. 모두 사회주의같은 체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은 반드시 국가가 책임져야 마땅하다'는 이념 아래에서 국민 누구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 오지마라'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영국의 정치인이었던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도 흥미롭다. 1948년, 전쟁 직후에 무상의료체제를 시행한 것은 국민 누구든 평등하게 의료복지를 누려야 마땅하기 때문이라는 것. '전쟁 이후에 국가 발전만을 생각한' 한국과도 비교된다. 그는 심지어 대처 수상도 "국민건강보험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라 발언했단다. 대화의 마무리도 촌철살인이다.
 
"만약 대처나 블레어 수상이 의료복지를 서서히 없앤다고 발표했다면요?"
"그럼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어졌을테죠."
 
의료민영화는 단순한 괴담? 더 나은 제도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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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세계화가 이루어진 요즘, 외국에서 더 좋은 자동차가 제작되면 우리는 기꺼이 수입한다. 더 맛좋은 와인도 현지에서 바로 들여와서 마셔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더 좋은 제도'를 말하면 다들 국가가 무너진다며 두려워하는 것일까? 정작 그 제도로 더 많은 사회구성원이 더불어 잘 살아가고 있는 국가들이 많은 현실인데도 말이다.
 
영화 <식코>에서는 9·11 테러사건 당시 활약했던 구조대원들도 등장한다. 다른 도시에서 사고지역으로 달려와서 잔해에 깔린 생존자들을 구조하느라 애쓴 그들을 부시 정부는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후유증으로 병을 앓게 되자 치료비 지원도 없이 내팽개쳤다. 오히려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범들이 받는 의료지원이 더욱 호화스러울 정도였으니,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료복지가 엉망인 셈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마냥 천국일 수는 없다. 모든 일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고,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지옥같은 일로부터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멀어지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의료보험에 관한 정책을 정부가 잘 다듬어서 이끌어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해외에 많은 부문이 개방되고,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치솟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민심을 단순히 '괴담'으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오히려 국민들과 함께 더 나은 제도를 고민해야 마땅한 일이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당선된 정치인이라면, 의료보험과 관련된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직접 나서서 해소하기를 바란다. <식코>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상처를 꿰매거나 신체부위를 포기하던 미국인들의 끔찍한 모습들이 한국에서 재현될 일이 없도록.

마이클 무어 식코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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