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서 넘어온 바람... 갑자기 부러웠다

[포토에세이] 평화누리 공원에서 맞이한 새해

등록 2014.01.01 22:17수정 2014.01.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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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공원 평화누리 공원의 바람개비 동산, 바람에 바람개비들이 힘차게 돌아간다. 그 소리들이 경쾌하다. 빈 벤치가 넉넉해 보인다. 누군가 앉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비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김민수


새해 첫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보수언론에서는 어쨌든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고 싶어 안달이지만, 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진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도 권력의 보수언론들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욕되게 하는데 앞장섰다.


"누가 죽음을 사주했다, 방기했다"는 등의 구실을 내세워 또다른 억울한 이들을 권력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도 그런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이번엔 빚 때문이란다. 정말, 그것 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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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센 바람에는 힘차게, 작은 바람에는 부드럽게 돌아가며 내는 저마다의 소리들이 노랫소리같다. 어릴 적, 바람개비를 만들어 바람을 맞서며 뛰어다니던 추억이 떠올랐다. ⓒ 김민수


새해 첫날,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찾았다. 바람개비동산엔 바람개비들이 힘차게 돌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들이 장엄한 음악처럼 들려온다. 바람이 강하면 강하게, 부드럽게 불어오면 부드럽게 노래를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마주한다. 북녘땅 개성 쪽이다. 그러니까 바람은 저 북녘땅에서 불어오는 것이구나. 거기서 바람이 불어오고 여기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이다. 바람처럼, 자유로이 남과 북을 오갈 수 없는 것일까? 그날이 오기는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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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동산 저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자유로이 남과 북을 오가는 바람처럼, 우리도 남과 북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 김민수


문익환 목사님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때는 정말 통일이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았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개성공단이 문을 열었을 때에도 이렇게 십 수년만 오가다 보면 평화통일도 멀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그때 나는 금강산과 개성을 한 차례씩 다녀왔다. 그때에도 이렇게 오가다보면 곧 통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역사는 급격하게 뒷걸음질 쳤다. 2014년 1월, 통일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자유로를 타고 평화누리 공원으로 가는 길 이정표에 개성과 평양이라는 이정표도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평화통일이 되면 말이야. 여기서 쭈욱 가면 평양을 지나서 중국, 러시아, 유럽까지 갈 수가 있어.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그런데 통일이 멀게 느껴지네. 그래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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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바람개비 아직도 노랑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지 않은가 싶다. 여지껏 죽은 자를 끌어내어 능멸하며 자심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이들이 희희낙락하는 세상이다. ⓒ 김민수


바람개비 동산 한 곳에는 노란 바람개비들이 모여 있다. 상징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는 지금도 권력자들과 보수집단에 의해 능멸당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 들었던 안타까운 소식과 문익환 목사님이 살아생전 분신정국에서 "목숨을 끊지 말고 죽을 각오로 싸우라"던 말씀과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에 목놓아 외치던 열사들의 이름.

열사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문익환 목사님은 목놓아 불렀다. 맨 처음에는 무슨 말씀도 아니고, 저렇게 하시나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어갔구나, 이한렬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둔 뒤에도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어간 현실이 너무도 슬펐다.

문익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죽지말고, 스스로 죽지 말고 그 용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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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공원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예술작품, 그는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서있다. 오가는 사람들만이 흔들릴 뿐이다. ⓒ 김민수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있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그러니 흔들린다고 약한 것도 아니고 흔들린다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 때론 흔들리지 않는다고 무작정 강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세파에 흔들린다. 그것도 바람이다. 사람은 바람이 불어와야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때로는 자기 안에서 태풍을 만들어 내듯 소용돌이 칠 수 있는 것이 삶에 불어오는 바람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훈풍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살을 에는 것과도 같은 한풍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진 사람, 죽어간 사람, 스스로 목숨을 놓은 사람을 욕하지 말자. 비록 자신은 훈풍으로 여겨져 살 만하다고 할지라도 망자에 대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것, 사람의 도리를 바라는 것 조차도 사치일 정도로 타락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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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공원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흔들리며 살아가도 좋다.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남은 이들에게 너무 큰 아픔이다. ⓒ 김민수


새해 첫날, 가볍게 기분 좋게 출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새해 첫날부터 마음이 무겁다. 마냥, 새해가 되었다고 좋아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새해니 어쩌랴! 좋든 싫든 새해답게 맞이해야지 어쩌랴!

평화누리 공원의 바람개비 동산, 아무리 오랜만의 영상의 기온이라고 해도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바람처럼 나도 자유로이 오가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라면, 이런 시대의 아픔도 좀 덜하지 않을까? 최소한 분단의 상황을 이용해서 종북 딱지를 붙이거나 빨갱이라고 덧칠을 하진 않을 테니까.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사겠다던 시인 문익환 목사님, 그분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사셨던 분이시다. 그분이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이 시대에 뭐라 말씀하셨을까?

망자를 능멸하지는 말자. 그것이 살아있는 자들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그 어떤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놓았을 때에 그 얼마나 절절했는지 타인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다 아는 듯, 재단하고 색칠하여 네 편 내 편 나누는 일이 없어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아닌가.
#평화누리 #바람개비 #분신 #평화통일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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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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