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부터 김연아까지... 우리가 열광한 그들

[서평]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을 읽고

등록 2014.01.02 11:30수정 2014.01.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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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 ⓒ 미다스북스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미다스북 펴냄)은 손기정부터 김연아까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국제경기에서 우승해 우리를 열광케 했던, 체육인들 이야기다.

이야기는 모두 34꼭지. 책을 통해 만난 스포츠인들 중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주인공은 '성조기를 유니폼에 반반씩 새긴 까닭은'이란 제목의 주인공인,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 '서윤복'이다.


서윤복은 17년간 세계 마라톤을 지배한 조선의 아들 손기정이 배출해낸 마라토너다. 책을 통해 만나는 서윤복의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한편 짠하다.

손기정과 서윤복. 한국 마라톤이 낳은 '유이(唯二)'한 공인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다. 향후 한국 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손기정과 서윤복의 '족패천하'는 한국 육상의 전설을 넘어 마땅히 신화로 기록돼야 한다.

(줄임) 마라톤 선수로서 손기정의 전성시대가 일제강점기 한복판을 관통해 불운했다면, 서윤복은 광복 이후 당당히 코리아의 이름으로 첫 세계 정상에 오른 행운아였다. 그는 제51회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 스승 손기정이 12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2시간26분42초 세계최고기록을 1분3초 앞당긴 2시간25분39초에 골인했다. 백인종 우월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에 '듣도 보도 못한'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의 무명선수가 우승컵을 차지했으니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파가 만만찮았을 터. 키 166cm, 무게 56kg의 서윤복은 지금까지 역대 보스턴마라톤 최단신 챔피언으로 기록돼있다.

미국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기적'이라는 단어를 굵은 고딕체로 지면을 장식했다. 서윤복은 인터뷰에서 "어떻게 그런 힘을 길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신들은 바쁘면 차를 타고 가지만 우리는 두 다리로 달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반반씩 붙인 서윤복의 유니폼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한 1947년은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난 시기였다. 당시는 마라톤 대회 출전의 꿈조차 꿀 수 없던 때였단다. 이런 우리에게 출전해 달라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보스턴마라톤조직위원회. 이 뜻밖의 제안은 마라토너 존 켈리가 손기정과의 '신발 인연(아래 박스 기사 참고)'을 잊지 않고 보스턴마라톤 조직위원회에 건의한 덕분이라고 한다..

출전초청을 받았으나 여비와 체제비 마련이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설령 여비와 체제비가 마련되어도 미군정이 제때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으면 허사가 될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도움을 준 것은 미 군정청 고문 스매들리 여사와 미군 장교들.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마련해주는가 하면 미군정기 이용을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1947년 4월 3일 미 군용기를 타고 김포비행장을 떠난 선수단은 일본~하와이~샌프란시스코~뉴욕을 경유해 4월 8일 보스턴에 도착한다. 당시 단장 겸 감독은 손기정이 맡았고, 서윤복은 띠 동갑 대선배 남승룡과 함께 출전선수로 등록했다. 풀코스 완주 경험이 두 차례뿐이라 내심 불안했던 서윤복이 '함께 뛰어 달라"고 남승룡에게 부탁했는데, 36세의 고령임에도 기꺼이 후배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에 응했다고 한다. 책에 의하면 당시 남승룡도 12위로 레이스를 마쳤다고 한다.

4월 19일 일요일 낮 12시 8개국에서 출전한 156명이 보스턴 교외 홉킨턴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기만 기다렸다. 1946년 유럽 육상 선수권마라톤 챔피언 미코 히테넨(핀란드)을 비롯해 전년대회 우승자 스탈리아노스 카이리라키스(그리스) 등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카메라 세례를 받았지만 서윤복을 주목한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서윤복의 유니폼이었다. 정부수립 이전이라 서윤복은 태극기와 성조가를 유니폼에 반반씩 붙였다. 성조기를 새긴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띠고 있었다. 첫째 조국이 일제로부터 독립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미군정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 대회 출전 경비를 지원해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표현이었다.-<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에서

책에서 만나는 광복 이후 코리아 대표단의 첫 국제 스포츠 행사 출전에 얽힌 이야기다. 책에는 당시 서윤복의 우승 이야기와 감격어린 우승 소감, 이후 3년 후인 1950년 보스턴마라톤에서의 금·은·동 쾌거를 비롯하여 우리 마라톤의 급성장 등이 소개된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이후 감독을 하며 여러 선수들을 배출한 스포츠 영웅 서윤복은 현재 12년째 투병중이란다. 가족들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잃었음에도 마라톤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을 반짝인다고.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금메달리스트만 있는 게 아니다

손기정과 미국 마라토너 존 켈리의 '신발 인연'
서윤복이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손기정과 미국인 마라토너 존 켈리의 '신발 인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트랙을 빠져 나오자 18위로 골인한 존 켈리가 자신의 신발보다 가벼워 보이는 손기정의 신발에 관심을 나타내며 "나에게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 것. 이것이 인연이 되어 존 켈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손기정에게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권하는 편지를 수차례 보내기도 했다. 존 켈리는 이미 1935년과 1945년 두 차례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해 미국 마라토너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이들의 우정은 동아일보가 2004년 4월 보스턴마라톤을 현지 취재하러 갔다가 그를 단독 인터뷰하면서 확인됐다. 존 켈리는 "베를린 올림필 때 손기정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책에서
1947년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국제경기 대표단마저 꾸릴 수 없었던 우리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올림픽 5회 연속(동·하계 모두 포함) 종합10위 이내를 기록하며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에 올라섰다.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은 마라톤 영웅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77년 동안 국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이 되었던 이야기부터, 우리 스포츠 영웅들의 땀과 눈물, 열정과 희망 등으로 일궈낸 감동의 순간을 전한다.

금메달리스트, 즉 선수들로 스포츠 영웅을 한정 짓지 않아 읽을거리가 좀 더 풍부해지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 광복 후 정부수립보다 먼저 IOC에 가입하여 올림픽 참가를 준비한 이상백 ▲ 일본의 가라테와 중국의 쿵푸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 도장을 열기 쉽지 않았던 1950년대 미국에 태권도 열풍을 일으킨 이준구 ▲ 태릉선수촌을 제안해 우리 대표 선수 산실로 성공시킨 민관식 ▲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국호를 KOREA로 못 박게 만든 장기영 등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스포츠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런던 올림픽이 열렸던 2012년 여름, 개인적으로 우리 스포츠 영웅들만을 다룬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때문에 매우 반가운 책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다.
덧붙이는 글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최형철 (지은이) | 미다스북스 | 2013-11-18 |22,000원

한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 - 손기정부터 김연아까지

최형철 지음,
미다스북스, 2013


#스포츠 영웅 #금메달리스트 #서윤복 #이준구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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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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