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관심법' 넘버1은 어떻게 통과됐나

[분석] 2013년 12월 31일 국회의원들도 모른 '법안통과 미스터리'

등록 2014.01.08 08:10수정 2014.01.0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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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박근혜 관심법'으로 알려진 외국인투자촉진법과 NSC법 통과에 여야 지도부가 사전 합의한 배경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면합의설'까지 돌고 있다. 사진은 1일 새벽 본회의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 남소연


"NSC법이 그렇게 통과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도부가 사전에 합의했다니. 상임위 위원들도 모르는데 지도부 합의로 5분 만에 통과? NSC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연말 느닷없이 등장한 양대 법안은 국회의원들 사이에 '박근혜 관심법'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2014년 새해 벽두 우리는 로텐더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생각했다. 여당에 협조 잘 하는 게 야당의 정치라고 믿는 사람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민주당 한 의원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 법안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과연 이 법이 통과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2013년 12월의 마지막 날, 최소한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과 5분 만에 뚝딱 법안이 통과됐다. 이 행태에 그는 전율했다.

2013년 12월 3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 의원은 이토록 한국정치에 대해 개탄하고 있는 것일까. 사건 속으로 들어가보자.

"장성택 이후 안보가..." NSC법 검토도 없이 뚝딱 통과

12월 31일 오후 11시 8분.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이자 국회 운영위원장인 최경환 의원이 회의를 개의했다.

최경환 의원은 "이 회의는 위원회 소관 법률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법 개정 등을 위해 여야 교섭단체간 합의로 소집하게 되었다"며 "동 개정 법률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임위원회와 상설 사무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뒤이어 "이 법률안들에 대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48시간 전에 배부해야 하나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안보관련 지원조직 구축의 시급성 등을 감안해 금일 배부하게 돼 죄송하다"고 밝혔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이의제기에 나섰다. 정 의원은 "이게 사실상 지금 이렇게 처리하는 게……"라며 "(NSC) 설치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만 다만 안건 처리과정이, 이게 적법한 과정과 절차에 의한 것인지 위원장이 말해달라"고 말했다.


최경환 위원장은 또다시 시급한 안보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장성택 처형 이후 여러 안보 상황이 굉장히 시급하게 돌아가고 있고 해서 여야 간 이런 조직의 설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에 시급성과 필요성을 감안해서 조금 절차적으로는 서두르는 감이 있지만 조금 양해를 해 주셔서 하루속히 시급한 국가안보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데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나섰다. 은 의원은 "저는 굉장히 당황스럽다"며 "제가 23시 9분 여기 와서야 (새누리당 윤상현(안), 민주당 안규백(안) 이외의) 대안의 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떻게 대안에 대한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은 의원은 "도대체 얼마나 급한 일인지도 사전 설명도 못 들었다"며 "어떻게 국회가 법안 하나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NSC법안은 여당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낸 법률안 중 국회법 동의절차 없이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수정안을 낸 대안으로 통과됐다.

"대통령이 원하면 다 들어주는 국회, 권위주의 시대 통법부인가"

현장에 있던 의원들은 "현장에 있으면서도 현장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국회 운영위 소속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원래 법안이 발의되면 48시간 이전에 당연히 그 법안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절차도 없었다. 법안이 마련되면 법안소위로 가야 하는데 부의되자마자 통과됐다. 이런 것은 국회 안에서 거의 없고 굉장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최경환 위원장이 이 안은 이미 양당 대표가 합의한 바라고 했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현장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사전에 아무런 고지가 없었다. 법안통과의 형식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었다. 천재지변처럼 아주 긴급한 사안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지 않나. 그동안 NSC법 없어서 무슨 큰 문제가 있었나? 그것도 아니다. 장성택 처형이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나? 아니다. 안보위협을 부풀려 NSC법을 일방적으로 또 졸속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홍 의원은 "외국인투자촉진법 문제로 사단이 난 상황에서 이마저도 문제삼을 경우 어떻게 될까 솔직히 고민이 됐다"며 "NSC법은 내용상 상임위와 사무처 신설 등 조직구성과 관계된 것이어서 절차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는 있지만 내용상 처리해도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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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전병헌 새해 예산안 및 국정원 개혁 관련 법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1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피곤한 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다. ⓒ 남소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민주당 지도부는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게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이 법안의 통과를 약속했던 것일까.

홍 의원은 "외촉법과 NSC법이 일종의 패키지 법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전병헌 원내대표를 찾아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해해달라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국정원개혁법은 4자회담(대표(2)+원내대표(2))의 성과인데 왜 갑자기 외촉법과 NSC법이 끼어들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외촉법과 NSC법이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법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민주당 안에서 그 법이 협상용이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며 "전혀 다른 바구니에 들어 있는 법안을 대통령이 원한다고 해서 들어준 것이라면 국회는 권위주의 시대 통법부와 뭐가 다르냐"고 개탄했다.

무엇보다 외촉법과 NSC법까지 패키지로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원하는대로 해줬다면 민주당의 성과로 꼽을만한 법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와 관련해서는 홍 의원도 의문부호를 찍었다. 그 블랙박스의 진실을 모른다는 말로 갈음했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가 공세적으로 주도한 이슈에 대해 수세적으로 매듭을 지어 늘 지지자들로부터 비판받는 것 같다"며 "지도부의 자해적 전술로 당의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리더십은 약화되며 지지율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3년 12월 31일 밤 NSC법안은 10분만에 통과됐다. 반대토론은 정진후 의원과 은수미 의원 딱 둘 뿐이었다. 오후 11시 8분에 개의한 국회 운영위는 이날 오후 11시 18분에 끝났다.

특검 문제도 모자란 판에 외촉법과 NSC법?

2014년 1월 1일 오전 3시,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는 단연 외국인투자촉진법 문제와 NSC법안 처리과정의 문제점이 성토됐다. 특히 외촉법을 둘러싸고 국회 법사위원장인 박영선 의원과 김기식 의원의 비판이 거셌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현장발언을 통해 "2013년의 마지막 국회에서 민주당이 의논해야 할 것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인데 왜 우리가 외촉법 등에 대해 논의해야 되느냐"고 개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에서는 당 지도부가 외촉법과 NSC법 그리고 철도파업 해제와 국회 내 철도산업발전소위 설치, 국정원 개혁법 등을 패키지로 묶어서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새누리당과 일괄타결했던 것은 아닌가 진단이 흘러다닌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그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에 패키지로 넘기는 동안 민주당이 그토록 대외적으로 비판하고 문제제기했던 이슈들에 대해 단 하나의 알맹이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정원 개혁법안도 실질적 성과로 볼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올 2월 국내파트 해제와 대공수사권 등 이른바 첨예한 사안을 두고 국정원 개혁특위 안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무엇을 성과로 따낼 수 있나 벌써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박근혜에게 외촉법과 NSC법 주고 뭐 받았나?

민주당이 지난 연말 여당과의 협상에서 외촉법을 내주고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를 챙겼다고 하지만 이것도 실익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은 이미 정치권 안에서 구문이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제도특검으로 거의 상설화 단계에 왔으니 일단 반보는 뗀 셈"이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운영방식 때문이다. 상설특검이라고 해도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갖춘 기구특검이 아니라 사건별로 특검을 임명하는 제도특검으로 의견접근을 이룬 데다 제도특검은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특검과 다를 게 없다.

이름은 상설특검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비상설이며 특검 요구도 국회 의석 1/3 동의로 할지 1/2 과반 동의로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특별감찰관제도 새누리당은 감찰관의 소속을 행정부로 하고, 3권 분립에 따라 국회의원과 판검사는 감찰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같은 새누리당의 입장에 반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체로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니 외촉법을 내주고 받은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도도 검찰개혁의 성과로 내세우기 어렵다.

이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자, 민주당 안에서는 '이면합의설'이 돌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새누리당 지도부간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 이면합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현재까지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계속 여의도 정가를 떠돌고 있다.
#NSC법 #외국인투자촉진법 #국가안전보장회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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