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살인자'는 마동석에게 빚을 졌다

[리뷰] 관객의 기대와 따로 노는 스릴러 영화라니!

14.01.30 12:38최종업데이트14.01.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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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영화 <살인자>의 한 장면 ⓒ (주)홍필름


주협(마동석 분)은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하고 신분을 숨긴 채 시골 마을에 숨어 지낸다. 그의 아들 용호(안도규 분)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 주협이 개장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수(김현수 분)라는 여자아이가 서울에서 전학을 오고, 용호는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지수에게 관심을 보인다. 엄마(김혜나 분)와 단둘이 시골로 내려온 지수는 바람둥이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은 아이. 용호와 지수는 서로의 상처를 공감한 듯 조금씩 가까워진다. 둘이 가까워질수록 지수는 주협의 정체를 기억해내고, 주협은 아들 용호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될까 두렵다. 주협은 자신과 아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 지수를 살해하려 한다.

연쇄살인마 강호순 사건을 모티브로 해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영화 <살인자>는 지난해 다양한 장르 영화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마동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는 육중한 몸집과 날 선 눈빛만으로 관객을 겁박하기에 충분한 마동석의 비주얼과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연쇄살인마 주협을 만들어냈다. 포스터나 예고편만 봐도 그가 이 영화에 적역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정도다. 관객이 이 영화를 기대했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마동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동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의 활동 반경을 제약하며,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마동석이 분한 주협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아내와 내연남을 그 자리에서 무자비하게 살해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첫 범죄로 입은 정신적 내상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의미도 명분도 없는 살인을 반복하던 살인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그에게 부여된 설정이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후, 주협은 과거를 묻어둔 채 한 시골 마을에서 개를 사육하며 지낸다.

<살인자>는 제목과는 반대로 주협이 살인마로 살았던 과거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현재에서부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러니까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살인마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주협의 고뇌와 그의 나쁜 피가 그대로 남아서 자신도 아빠처럼 나빠질까 봐 걱정하는 주협의 아들 용호의 내적 갈등이다. 선혈이 낭자한 하드코어 범죄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에게 영화는 심리 스릴러로 만든 요리를 들이밀고 있다. 관객의 기대를 전복시키면서까지 들이민 감독의 추천코스는 맛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감독이 추천한 요리의 맛은 '수준 미달'이다. 요리에는 누가 보기에도 싱싱하고 좋은 재료인 마동석이란 배우가 있었지만, 감독의 레시피는 재료의 신선함을 그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영양가 없는 요리를 만들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가장 큰 문제는 '현상'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협이 살인을 멈추게 된 계기는 없고, 살인을 멈추며 잘 지내는 현상은 있다. 주협이 지수(김현수 분)를 알아보는 현상은 있지만 그러한 현상에 대해 영화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단서는 없다. 주협의 직감, 불현듯 떠오른 옛 기억이라고 에둘러 암시할 뿐이다.

이처럼 개연성이 단순하고 성긴 영화의 서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꾸 시간을 확인하게 한다. 시나리오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 대사를 곱씹어 보자. 영화 속 인물은 하나같이 오글거리는 수준의 대사를 내뱉고 있다. 모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코스프레다. "행복해지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등 직접적인 감정 전달 외에 함의를 찾을 수 없는 대사가 대부분이다. 이는 주협이 숨겨 둔 살인마의 본능을 꺼내 들 때도 마찬가지다. "왜 나타나서, 너만 없으면 돼!"라고.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를 내세우면서도 욕설을 사용하는데 조심스러워한다. 그 정도로 대사 작법이 서툴다.

결국 <살인자>는 관객의 기대를 전복시킨 것도 모자라 적당한 만족도 선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제목과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아우라를 관객을 끌어들일 미끼로 사용해놓고, 정작 영화는 지나치게 온순한 흐름으로 지루함을 던진다. 스릴러라면 인물과 이야기로 긴장을 조성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족함을 음향 효과로 메우려는 꼼수를 잦게 부린다. 관객이 그 정도 꼼수에 속을 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을 감독은 간과한 것일까.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지루하다. 인물 간의 관계 설정과 이야기의 흐름은 뻔히 예상 가능하고, 결말에서는 장르의 변주를 시도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즉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살인마의 인생 후반부와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의 내적 갈등만을 뚝심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지수의 개입 없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에만 집중했다면 영화가 조금은 덜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영화 <살인자>는 마동석에게 빚을 지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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