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에서 희한한 경험...이 영화 꼭 봐야겠다

[주장] 고 황유미 4주기에 내가 겪은 일... <또 하나의 약속>, 아버지가 봐야 할 영화

등록 2014.02.06 21:21수정 2014.02.06 21:21
1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2011년 3월 6일, 울산바위에서 만난 새 2011년 3월 6일, 우연히 올라간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속초 시내쪽을 바라보던 새 한마리. 그 새가 너무도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며 접한 황유미양 이야기를 통해 나는 이 새의 의미가 새로웠다.

2011년 3월 6일, 울산바위에서 만난 새 2011년 3월 6일, 우연히 올라간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속초 시내쪽을 바라보던 새 한마리. 그 새가 너무도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며 접한 황유미양 이야기를 통해 나는 이 새의 의미가 새로웠다. ⓒ 고상만


2011년 3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혼자 오르고 있었다. 아직 잔설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날,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며 한 발 한 발 울산바위를 향해 발을 내 딛었다. 그렇게 약 두어 시간에 걸쳐 올라선 울산 바위. 목적지까지 올랐다는 성취감에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낯선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순간 신기했다.


"이 높은 울산바위에 새가 다 올라왔구나."

나는 카메라를 꺼내 그 새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금세 파다닥하며 날아갈까 싶어 조심스럽게 촬영했는데 묘하게도 새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참 특이한 새구나" 싶었다.

결국 울산바위를 먼저 떠난 것은 새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잠깐이나마 함께했던 새를 향해 가벼운 손짓 인사를 한 후 다시 내가 있어야 할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운전중 라디오를 틀어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 나는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2007년 3월 6일 딸 황유미양을 산업재해로 잃은 아버지 황상기씨 사연이었다.

아버지의 낡은 택시 바꿔주고 싶었던 착한 딸 유미

a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중 한 장면. 진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윤미(박희정 분)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중 한 장면. 진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윤미(박희정 분)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황상기씨의 직업은 택시 기사였다. 강원도 속초에서 30년 넘게 택시를 운전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의 낡은 택시를 새 차로 바꿔주고 싶었던 착한 딸이 바로 황유미양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3년, 열 아홉살 딸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고 한다. 입사 당시 면접관에게 "아버지의 낡은 택시를 새 차로 바꿔주고 싶어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딸이었다.


하지만 딸의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입사 2년 만에 딸 유미가 얻은 것은 아버지의 '새 택시'가 아니라 '병'이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그 병, 백혈병이었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버지 황상기씨는 산업재해로 딸을 잃게 된 경위와 그 딸을 빼앗긴 후 대기업 삼성과 싸워온 과정을 말하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그 아비의 참담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아픈 사연 하나 하나가 내 가슴에 맺힌 이유였다. 그때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고 있던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순간이었다. 아버지 황상기씨의 말이다.


"사실 오늘은 우리 유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이에요. 그런데 아버지인 제가 삼성 본사 앞에서 오늘도 1인 시위하다 보니 유미에게 가 보지도 못했네요. 4년 전 유미를 떠나보낼 때 설악산 울산바위에 뿌려 줬어요. 유미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삼성에 취직했기 때문에 세상 구경도 못해보고 죽었잖아요. 그래서 죽어서라도 어디 매이지 말고 훨훨 돌아다니며 세상 구경하라고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오늘 제가 그곳에 가 보지도 못했으니 유미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하네요."

2011년 3월 6일, 고 황유미씨 4주기 기일에 내가 겪은 일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이 세상 아버지가 봐야 할 영화

우연히 듣게 된 그 아버지 인터뷰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황유미양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울산바위에서 마주한 새가 혹 "황유미양의 영혼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니 더욱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황유미양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 보기도 했고 연극 <반도체 소녀>를 관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황유미양의 사연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 황유미양이 입사 2년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리자 삼성 측에서는 곧바로 사표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른바 '백지 사표'였다.

급성 백혈병에 걸려 생사를 알 수 없는 노동자를 위해 치료비로 백지 수표를 준 미담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를 가져와 그곳에 황유미양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적어 달라며 받아가 그것으로 사표를 대신했다는 사연이었다. 치료나 보상도 없는 '내몰림'이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죽어간 그때로부터 세월은 수없이 흘렀지만, 산재 피해자를 향한 기업의 야만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한편, 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골수 이식 등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하고자 몸부림쳤다. 그 병원비에 얽힌 사연 역시 기가 막혔다. 외손녀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할머니가 끝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 외할머니 장례 때 들어온 조의금이 황유미양의 치료비로 보태졌다는 대목 역시 가슴 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병은 회사가 들게 만들고 그 책임은 가난한 아버지의 몸부림에 맡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2007년 3월 6일. 그날 역시 병원 치료를 위해 서울로 향하던 아버지의 낡은 택시 뒷좌석에서 딸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결을 내려 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는 아버지의 눈물은 자식을 키우는 같은 아버지 입장에서 너무도 눈물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버지 황상기씨와 딸 유미양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황유미양의 7주기를 꼭 한 달 앞둔 2014년 2월 6일 개봉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그것이다. 딸의 죽음 이후 '초일류기업'이라고 불리는 삼성과 근 6년을 싸워 마침내 산업 재해를 인정받게된 그 아버지의 위대한 부성애. 거대 기업이 돈과 힘으로 매수하고 억압하려던 '또 다른 진실'을 아버지 황상기씨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다.

"나한테는 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딸을 잃었는데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 딸에게 약속을 했어요. 딸과 동료들이 왜 그런 지독한 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과 책임을 밝히겠다고 말이에요."

제2, 제3의 황유미양 막기 위해 나는 이 영화 보겠다

a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한 장면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황유미양 사건은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산재 피해자는 황유미양 하나로 끝나지도 않았으며 이 비극이 여기서 멈출 가능성도 전혀 없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측에 따르면 삼성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중 피해를 입고 산재신청을 한 이들은 2014년 1월 현재 모두 42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산재 피해자는 넘쳐나는데 산재로 인정된 사례는 황유미양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삼성 측은 산재 피해를 인정하는 데 있어 왜 이리 야박하게 구는 것일까. 기업 이미지 등 또 다른 이유야 많겠지만 눈에 드러나는 사실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돈을 벌어주는 현 산재 보험료 구조 역시 한 몫 하고 있다.

2012년 당시, 20개 대기업이 정부로부터 감면받은 산재 보험료는 무려 3460억 원에 달했다. 산재 발생 시 지급하고자 기업으로부터 걷는 산재 보험료를 산재 미발생으로 돈이 남았다며 그만큼 감면해 주면서 발생하는 이익이다. 쉽게 말해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매년 자동차 보험료를 깎아 주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문제는 산재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아서 보험료를 감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산재를 기업이 산재로 인정하지 않아 '왜곡된 이익'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2012년 당시 산재 보험료를 가장 많이 감면 받은 대기업 1위는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모델인 '삼성전자'였다. 산재 사고 발생률이 적다며 삼성전자가 2012년 감면받은 산재 보험료는 무려 201억 원에 달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지난 1997년부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국민들은 '삼성'하면 '따뜻한 가족'을 연상하곤 한다. 그러나 국민을 향해 인위적으로 만든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미지와 달리 삼성은 자신의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야멸찬 행위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아픈 가족에게 백지 사표를 받아내는 위선은 결국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볼 것이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에 진학하는 딸을 둔 아버지로서, 사랑하던 딸 유미양을 잃은 아버지 황상기씨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또 다른 연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딸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더 이상 산재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힘을 주고 싶다. 이 억울한 사연의 피해자가 오늘까지는 그들이지만 우리가 지금 이 사연을 외면한다면 다음 피해자는 바로 우리가 될 것임을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함께 보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이제 곧 다시 황유미양의 기일인 3월 6일이 다가온다. 그날 세상 구경을 마치고 다시 '새'가 되어 울산바위로 돌아온 황유미양에서 많은 이들이 손짓하는 상상을 해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우리가 지켜냈다고 말하는 상상 말이다. 때로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그 아름다운 연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 #황상기 #황유미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