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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대, 대소변보다 못한 이 남자"

[인터뷰] 연극 '헤르메스'의 작가 겸 연출가이자 '이(爾)'를 만든 김태웅

14.02.07 15:41최종업데이트14.02.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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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르메스> 포스터. ⓒ 한강아트컴퍼니


연극 <헤르메스>는 성을 미끼로 연극을 만드는 제작자 남건을 통해 천민자본주의의 해악을 이야기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노동 운동을 같이 했다는 옛 정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연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남건을 가해자로만 몰아붙이지 않는다. 남건 역시 천민자본주의에 유린 당한 희생자로 바라보기에 치유가 있어야 한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헤르메스>의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김태웅은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爾)>를 만든 작가이기도 하다. 김태웅을 4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남건이 여자에게 대소변을 싸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대소변도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 아니면 대소변보다 못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가.
"배설물도 자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보다는, 거액의 돈을 제시하는 남자주인공 남건이 대소변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강하다. 자신이 더렵혀져야 대소변처럼 더러운 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더러워지기 위해 대소변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게 남자주인공의 심리다."

- 사람 위에 돈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사례가 있다면.
"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떼먹히는 일을 여러 번 당했다. 모든 걸 다 줄 것 같던 사람이 실은 돈을 빌리기 위해 저를 이용하려 한 거다. 하지만 사기당한 것보다 안타까운 건 사람을 잃어버린 배신감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 하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하면서 '그렇다면 나 자신도 자본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해 보았다."

- 그렇다면 이런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할 대안이 있는가.
"싫으나 좋으나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게 우리들이다. 분명히 자본보다 상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선물 가치'라는 게 있다. 가령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선물을 주는 행위를 통해 제게 많은 기쁨을 준다면 이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난다고 본다. 물질의 증여를 통해 정신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어서다.

자본주의는 '선물 가치'가 무너지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선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대안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보다 중요한 가치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다."

▲ <헤르메스> 의 작가 겸 연출가 김태웅 ⓒ 한강아트컴퍼니


- 연극 제목 <헤르메스>는 명품 이름인가, 아니면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건가.
"제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자본주의의 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따서 연극 제목을 만들었다. 헤르메스의 신화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상업의 신이기도 하면서 거짓말쟁이를 도와주는 신이기도 하다. 명품의 뜻이냐, 아니면 신화적인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하는 정확한 의미를 제시하고 싶지 않았다. 연극 제목을 관객이 스스로 찾게끔 의도적으로 중의적인 의미의 제목을 만들었다."

- 관객이 제목의 뜻을 스스로 찾게끔 한다면,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게끔 할 법하다.
"둘 다다. 제일 중요한 건 학생이 정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상징을 찾아야 하거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많이 유도하고 요구한다. 이런 교수방법은 분명히 정답을 가르쳐주는 강의보다 시간을 많이 요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민하다가 정답을 찾는 게 교수가 바로 정답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학생이 성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 '남로당이나 '촛불 백만 개' 같은 단어가 연극 대사에 있다.
"남로당 같은 단어에는 한국 근현대사라는 역사성이 있다. 극 중 말장난 속에서 역사성을 건드리고 싶었다. 연극에서 촛불은 여러 의미로 나온다.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이 대사로 등장하는가 하면 실내에 비치된 촛불도 있다. 광장의 촛불은 수평적이면서도 축제적인 의미를 가진다.

광장의 촛불이라는 수평적인 촛불과 방 안의 촛불이라는 수직적인 촛불이 만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촛불은 정신적인 의미를 갖는다. 촛불은 살아있음과 축제를 의미한다. 이런 세계로 나아가야 자본에 의해 훼손된 세상이 치유를 받는다고 본다. 촛불이 치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다."

- 연극 <이(爾)>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극 <이(爾)>는 대학로 들어와서 두 번째 연출한 작품이었다. 연극을 평생 할 건데, 기왕이면 다부지게 해보자는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작품이 크게 성공했다. 그렇게 크게 성공하리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 야구로 비유하면 <이>는 만루홈런 연극이었다. 연극 <이>를 능가하거나 필적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야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다.
"<이>가 워낙 대중적이고 입소문이 좋게 나서 <이>만한 작품이 왜 안 나오느냐고 묻는데 이미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만든 모든 작품이 <이>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링링링링>이나 <둥근 해가 떴습니다> 같은 모든 작품들이 소중하고 <이> 이상의 세계관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김태웅 왕의 남자 헤르메스 촛불 남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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