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등장한 뚝뚝 동남아나 인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뚝뚝을 이집트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카이로 거리 한복판을 유유히 지나가는 뚝뚝이라니!
김산슬
샴스가 지나가는 뚝뚝을 멈춰 세우고 우리에게 타라 손짓한다. 샴스까지 아슬아슬 남은 자리에 가방을 붙들고 앉자 뚝뚝이 출발했다. 역을 벗어나니 내게는 언제나 이집트와 동일 어인 예의 그 투박한 골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집은 4층이었는데, 그야말로 현지인 중에서도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 큰 백팩을 멘 이웃 뒤로 백인 남자와 동양인 여자가 졸졸 따라오고 있으니 신나는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짙게 드리운 속눈썹을 깜빡이며 우리를 쳐다보고 킬킬거리고 손을 흔든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자 그의 친구들이 우리를 맞았다. 아프가니스탄 전통차라며 컵과 함께 쟁반에 내어온 물주전자는 어찌나 펄펄 끓었던지 뜨거운 쇠 표면에 닿은 물방울들이 죄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튕기더니 증발해 버린다.
그들은 늦은 밤 짐을 둘러메고 찾아온 낯선 이방인 친구를 위해 좀처럼 앉아 있지 못한 채 수선스레 무언가를 요리하고 끓이고 내어오고 또 청소했다. 무얼 그리 볶고 튀기는지, 야심한 밤에 음식 대접은 끝날 줄을 모른다. 배가 점점 빵빵하게 불러오고, 3년 만에 만난 샴스와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친구들과의 대화에 빠져들 무렵 시계를 보니 젠장. 어느덧 시간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난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아.""뭐? 지금 가겠다는 거야? 여기서 하루 그냥 자고 가. 넌 내 방을 쓰면 돼.""아니야, 이보도 여기 있고, 사람이 많은 걸, 게다가 내일 교회를 가야 하는데 세면도구도 미처 챙겨오지 못했어.""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어. 옷만 입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샴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외투를 챙겨 입기 시작했고, 놀란 내가 말했다.
"뭐야 다들 뭐 하는 거야? 저기, 난 괜찮아 혼자 갈 수 있다고. 나도 여기 살았었어, 까먹은 거야? 나랑 같이 마디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소피, 너야말로 헛소리하지 마. 아무리 네가 이집트에 살았었다 해도 지금은 밤이고, 여자 혼자 택시를 타는 건 절대 안전하지 못해. 내가 널 데려다 줄 테지만, 저 아프가니들이 따라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 가던지, 그게 미안하면 그냥 하루만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때?"이보의 말이 맞다. 오늘 나는 내가 그들의 집 문을 나서 안전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내 안전을 지킬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초대를 받았다. 게다가 택시비도 절대 내가 내지 못하게 할 테고, 그렇다면 내가 폐를 덜 끼치는 방법은 하나다.
"아 정말이지 너무 미안해. 내가 좀 더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만 신세를 져도 될까?"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똬브안! 베이티 베이탁 야 하빕티."베이티 베이탁. 내 집이 곧 당신의 집이니 편하게 머물라는 아랍어이다. 친절하고 정 많은 무슬림들은 종종 길가는 나그네에게 이러한 친절을 베풀곤 했다.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예 마음 편히 앉아 다시 수다를 떠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파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 샴스의 친구 둘이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채 들어왔다.
언제 나갔었지? 그들이 사온 것 중 몇 개를 샴스에게 건네고 그중 한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안을 보니 거기는 세안제와 샴푸, 칫솔, 티슈가 들어있었다. 이보가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어깨를 넓히고 고개를 쳐들더니 다분히 마초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남자들은 절대! 이런 거 안 써. 비누 하나면 된다고. 머리도 얼굴도 샤워도 전부!" 하, 웃기시네. 그에게 처음 재미삼아 코팩과 마스크팩을 보여준 이후 그는 세수만 하면 그 신기한 코찍찍이를 해달라며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난 결국 화장품을 모두 숨겨야만 했다. 근데 뭐? 나도 질세라 그에게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래? 그럼 이제 양치질도 비누로 하지 그래?" 수줍음 많고 모든 일에 겸손한 샴스는 고마움을 전하려 입술을 달싹이는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 자꾸만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욕실을 청소하다 말고 친구에게서 짐을 건네들며 내게 말했다.
"가다, 오늘 이걸 덮고 자면 될 거야."그가 꺼내든 것은 한눈에도 두툼하고 따뜻해 보이는 이불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고른 것인지, 아주 여성스러운 분홍색이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샴스? 이게 뭐야? 맙소사, 지금 나 때문에 이불을 사 온 거야? 난 하루만 여기 묵을 거야, 네겐 난로도 있고 이건 낭비야. 네 성의는 알겠지만 이건 내일 도로 환불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는 예의 그 고요하지만 완고함이 어린 목소리로 자신이 쓰는 담요가 너무 낡아 하나 사려고 했었으며, 내가 그 이불을 써야만 이보와 자신이 난로를 쓸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건만, 나 때문에 샴스와 그의 친구들이 신경 쓸 일이 더욱 늘어난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새 이불을 깐 침대를 내준 것도 모자라 여자인 날 배려해 주려 온돌식 난방도 없는 차가운 거실 바닥에서 자겠다고 나가는 이보와 샴스를 겨우 붙들어 침대 바닥에도 카펫이 깔린 샴스의 방에 침낭을 깔고 난로를 켠 채 자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서야 나는 먼저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따뜻한 담요에 싸인 채 침대에서 잠을 깨어 보니 방바닥에는 잔뜩 웅크린 채 잠든 이보와 샴스가 있었고 전기난로는 나를 향해 세워져 있었다. 이보에게 잠시 후 만나자고 조용히 말했더니 잠꼬대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졸린 목소리로 그가 웅얼거리며 대답한다.
"소피, 아프가니들은 정말 미쳤어. 네가 잠든 후에도 그들이 새벽 네시까지 요리를 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난 그들과 먹고 마셨다고. 신이시여, 정말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야("Sophie, the Afghanis are totally crazy. After you sleeping, they didn`t stop cooking till 4a.m. And I had to eat and drink all the night with them. God, They are amazing guys").
지난 하루, 우리는 특별한 계획 없이 관광지가 아닌 곳들을 쏘다녔고, 그 결과 그 하루는 정 많은 사람들과의 눈 맞춤과 미소로 채워졌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집트에서의 3주는 3년 전에도 그랬듯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알록달록 수놓아졌다. 아마 내가 이집트를 잊지 못하고,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것도 그 조건 없고 계산 없는 순박한 우정과 사랑 때문일지 모른다.

▲ 샴스의 집과 그의 친구들. 나의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친구는 무함마드이다.
김산슬
내가 전날 밤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었던 건 잠들기 전 그들을 위해 올린 기도가 전부였듯이, 벅찬 마음으로 이 따뜻한 아침에 조용히 감사한 뒤 쪽지를 남기고 옷을 챙겨 입고 나오니 그새 잠이 깬 샴스가 굳이 나를 따라 나와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말없이 같이 걷는다. 고맙다는 말도 부족하다. 그냥 나도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행복으로 벅찬 가슴이 카이로의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더욱 부풀어 올라온다.
*잠깐 말해보자면 아랍인과 무슬림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랍인은 아라비아 지역에서 유목민을 조상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무슬림은 이슬람을 종교로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레바논과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에는 아랍인이지만 기독교인인 아랍인도 있고, 이란은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랍 국가는 아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는 아랍인이 아니지만 국교가 이슬람인 만큼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아랍인 기독교인들은 '아쌀라무 알레이쿰'이 아닌 '마르하반'으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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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간다고 했더니... 이 사람들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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