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군인 한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습까?"

[단편소설] 어느 탈영병 (2)

등록 2014.03.03 14:14수정 2014.03.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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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희 기자의 '베트남 평화기행'을 매우 가슴 아프게 읽으면서 마침 그 시대 군대생활을 하며 파월자를 목격하고 쓴 단편소설이 있기에 독자들의 시대상 이해를 돕고자 찬조로 2회 송고합니다. - 기자의 말

김재수 병장, 그는 동해안 최북단에서 해안 초소 근무를 했다. 밤낮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만 듣기가 너무 단조롭고 따분해서 전투수당도 한목 챙길 겸 파월을 지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장차 시를 쓰겠다고 작정했던 그에게 파월은 체험의 폭도 넓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제대 후 전투수당을 모아 그 지긋지긋한,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막장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복학해서 남은 학기를 마치고 싶었다.


그는 맹호부대로 파월, 메콩 강 기슭에 주둔하면서 매복 근무생활을 했다. 그가 귀국하기 한 달 전 어느 날 밤, 그의 분대원 둘이 매복 초소에서 베트콩의 기습을 받아 가슴이 죽창에 찔리고 목이 잘려 나갔다. 날이 샌 후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그의 소대는 베트콩에 보복하고자 베트콩 은거지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베트콩이 숨어 있는 초막을 찾아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고 Ml6 소총을 연발에다 놓고 신나게 갈겨 버렸다.

한참 후 그 초막을 수색하는데 베트콩은 이미 온몸이 벌집이 돼 죽어 있었고 그의 아내와 딸은 머리가 반 이상 그을린 채 살려달라고 손을 비비고 있었다. 여인은 만삭인 듯 배가 불룩했다. 그때 눈에 핏발이 치솟은 그의 분대장은 "이런 빨갱이 종자들은 씨를 말려야 해" 하면서 Ml6 소총으로 갈겨 버렸다.

그들 모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부릅떴다. 가슴에서는 선혈이 쏟아졌다. 그 전투 후 김 병장은 그들 모녀의 눈빛을 뇌리에서 지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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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겨울 전방소총소대원들. 그 무렵 파월자가 많았다. ⓒ 박도


자비심

"전쟁에서 도덕률을 지키기란 창녀에게 정조를 지키기를 기대하기보다 어려울 테지. 전쟁은 그 수행에 있어 악한 사람보다 선량한 사람을 더 많이 학살한다고 일찍이 소포클레스가 말한 바 있어. 김 병장이 직접 그들 모녀를 죽인 건 아니잖아?"
"아닙니다. 저도 공범자입니다. 분대장의 사살을 저지했어야 옳았는데…." 


"분대장으로서는 어차피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자비심에서 편히 눈을 감겨 준 게 아닐까?"
"자비심이라뇨? 자비란 말은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닙니다!"

갑자기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 말 취소할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치 부여는 말한 사람의 자유라고 말하셨잖아요."

나는 내가 뱉은 말이 후회스러웠다. 그래, 맞아. 자비란 말은 거룩한 말이다. 그런 거룩한 말을 아무데나 억지로 끌어 쓸 수는 없다.

"지금은 모두들 미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아무 죄의식이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죄의식을 느낄 테고 그 죗값을 받을 겁니다. 과연 우리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잔학성을 규탄할 자격이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김 병장! 말조심해. 아직도 월남전은 계속 중이고 지금도 많은 전우들이 파월되고 있어. 너 이런 말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보안대에 끌려간다."
"잡아가라지요 뭐. 차라리 그곳에 끌려가서 실컷 얻어터졌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속죄의 한 방법일 테니까요. 저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누가 미친놈인지 그것은 하늘에 계신 분만이 판단할 겁니다."
"……."

나는 그의 얘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의 어조는 너무나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모두가 미쳐 날뛸 때는 미치지 않는 사람이 미친 사람일 지도.

"귀국 보름을 앞두고 귀국 준비를 하는데 참 가관이었습니다. 모두들 굶주린 이리떼 같았어요.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느라고 눈에 핏발을 세우대요. 월남에 돈 벌러 왔다는 적나라한, 탐욕스런 모습들의 극치였어요. 우리 같은 소총병들이야 한계가 있었지만 총 한방 쏘지 않았던 비전투요원이나 장교들이 더 극성이었어요. PX에 물건이 바닥이 나고 워커, 위장포, 정글 복, 심지어 포탄 껍질까지 배에다 실었어요. 일 년간 피땀 흘린 값을 보상받겠다는 심보는 이해가 갔지만‥‥."
"그게 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로 그랬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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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적군의 시신을 밧줄로 끌어 모으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찢어진 영혼

"그것도 애국심입니까? 차마 그렇다곤 말 못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한통속으로 좀 가지고 왔습니다. 귀국 후 제 주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18피트의 녹새치를 뜯어 먹겠다고 덤비는 상어 떼와 같았습니다. 저는 그 악다구니들이 보기 싫어 보름의 휴가 동안 계속 술만 퍼마셨습니다. 그 술은 곧 오줌이 됐고, 나는 오줌이 마려울 때마다 바지춤을 내리고 태평양에다 쏟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더러운, 생명을 담보로 한 전투수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은 앙상한 뼈다귀만 남았습니다. 대어 녹새치를 잡은 노인처럼 상어떼에게 살점은 다 뜯기고 남은 뼈대까지 다 처분해서 또 술을 마셨습니다. 귀대 전날 밤 마지막 남은 돈으로 맥주를 잔뜩 퍼마시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북악산 쪽을 향해 바지춤을 내리고 신나게 갈겼습니다. 통쾌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뿐, 남은 것은 나의 찢어진 영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악몽에 시달리고 있군 그래?"
"그런 셈이죠.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죠. '어떠한 생명이든지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남의 생명도 소중하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미치도록 괴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죄를 닦고자 하루에도 몇 번씩 염불을 외곤 합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어쩌면 산다는 그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 아니겠니?"

"전 직접 남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군인은 별수 없이 명령에 따라 적을 죽여야 돼. 군인은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훈장을 받고 영웅이 된다. 너무 지난 일에 집착하지 마. 남은 군대생활 무사히 마치고 군복을 벗은 후 좋은 일 많이 하면 죄 닦음이 될 거야."
"말씀 감사합니다. 노력은 하겠습니다. 하지만 밤낮없이 떠오르는 그 모녀의 눈빛이…."
"밤이 많이 깊었다. 나도 상황실을 너무 비웠고…."

나는 그날 밤 김 병장과의 대화가 떠오르자 어쩌면 김 병장이 어느 한적한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든지, 아니면 외딴 절간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예감이 퍼뜩 머리에 스쳤다.

"통신병, 중대장 좀 대 줘."

수색 작전 때는 항시 무전기를 켜고 있다. 오늘도 수색 작전 때처럼 무전기를 열고 있었다.

"독수리! 독수리! 여기는 갈매기 둘이다. 독수리 장 나와라. 이상."
"소대장님! 중대장님이 나왔습니다."

나는 통신병에게로 가서 수화기를 받아 교신했다.

"독수리 장! 갈매기 둘 장이다. 이상."
"갈매기 둘 장! 여기는 독수리장이다. 용건을 말하라. 이상."
"독수리 장, 수색 중 토끼는 발견치 못했다. 철수하고 싶다. 이상."
"그럼 철수하라. 이상."
"쫓는 토끼는 다른 곳에 있을 듯하다. 그래서 세 갈매기만 데리고 가겠다. 나머지 갈매기는 선임하사가 인솔하여 철수시키겠다. 자세한 상황은 귀대 후 보고하겠다. 이상."
"잘 알았다. 갈매기 둘 장, 계속 수고하기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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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상 ⓒ 박도


나무대비관세음

나는 내무반장 안 하사에게 소대 병력 철수를 지시하고 통신병, 전령과 가장 구보를 잘 하는 1분대 장 하사만 데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심학산 뒤편 산기슭으로 향했다. 탑골 마을 뒤편에 조그마한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절의 위치를 몇 차례 물은 끝에 마침내 절을 찾았다. 산중턱에 숲으로 파묻힌 법성사(法成寺)란 자그마한 암자였다. 우리 일행이 들이닥치자 주지 스님이 합장을 하면서 맞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여러 중생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여기 군인 한 사람이 오늘 새벽에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
"그 군인은 오늘 새벽 부대를 무단이탈했습니다. 우리가 찾아 데리고 가야만 탈영보고가 안됩니다."

주지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염불을 외고는 법당 쪽을 가리켰다.

"웬 군인이 새벽같이 찾아와서 예불을 드리고 싶다기에 허락했지요. 업이 많은 분 같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법성사 법당은 여느 절보다 작았다. 내가 법당 문을 열자 김 병장은 법당 마루에 꿇어앉아 불상을 향해 염불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

나는 그의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10여 분 계속되었다. 이윽고 염불을 멈추고 절을 드렸다.

"김 병장."

그제야 김재수 병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도망자의 불안, 초조의 빛이 없었다.

"어서 가자. 온 중대가 너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다. 부대를 떠날 때는 신고를 해야지."

그는 말없이 법당 밖으로 순순히 나왔다. 통신병은 벌써 중대 상황병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독수리! 독수리! 여기는 갈매기 둘이다. 이상."
"지금 막 토끼를 잡았다. 이상."
"……."
"중대장님이 곧장 데리고 오랍니다."
"지금 바로 간다고 그래."

우리 일행 다섯은 곧 법성사를 벗어나 곧장 부대로 귀대했다. 그날 중대의 비상은 싱겁게 끝났다. 중대장은 그날 저녁 부식차편에 김 병장은 대대로 보냈다. 원대 복귀시킬 것인지, 후송을 시킬 것인지, 연대 영창으로 보낼 것인지는 대대 군의관 판단에 맡겨진다고 했다. 어수선하고 씁쓸한 하루였다. [끝]
#어느 탈영병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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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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