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책표지.
모비딕
어느 하나에 깊게 몰입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일본. 일본은 이런 오타쿠적인 능력을 앞세워 전 세계적으로 질 좋기로 소문난 '일제' 상품들을 많이 배출했다. 자동차, IT, 애니메이션, 소설 등 참으로 다양했다. 그런데 유독 영화는 다른 부분들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국시대나 에도시대 그리고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 주를 이루어서 대중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이는 많은 시대극 애니메이션들이 (전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것과는 너무나 상충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이유를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영화의 신'이라 칭송받는 구로사와 아키라(아래 아키라) 감독의 사례에서 역으로 추적해볼 수 있다.
그는 1943년에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서, 1990년대까지 50여 년간 계속했다. 이후 채 10년이 가기 전에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다. 아키라는 이상하게도 일본에서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소설 원안으로 일본영화 만든 아키라그는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원안으로 차용하되, 지극히 일본적인 것을 배경으로 하였다. 즉, '세계 영화'를 표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띄고 있다.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 만방에 떨치기 충분한 것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일본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키라의 영화이다. 이를 거꾸로 적용시켜 보면, 일본 영화 특징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만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화가 주를 이룬다는 특징 말이다.
아키라가 그런 영화, 그러니까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그가 직접 쓴 자서전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모비딕)에서 자세히 접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의 영화적 힘은, '인간'에서 나온다. 주로 그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어린 시절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 말이다. 가족(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형), 친구, 스승. 그는 비록 영화인이지만, 누군가처럼 처음 본 영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솔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자서전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로 하여금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해준 작품인 <라쇼몽>(1951)의 촬영 당시까지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책의 상당 부분을 어린 시절에 할애하고 있다. 그때가 자신의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뜻일 게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 형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많은 관심을 쏟게 된 문학과 예술로 부터이다. 시대와 지역은 지금의 나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만, 왠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건 그의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과 그것을 맛깔나는 전달하는 글 솜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자서전 비슷한 것>에서 영화의 신 아키라가 영화 이야기를 안 하고 있지는 않다. 아니,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영화와 전혀 관계가 없는 시절을 말하고 있는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 들어서는 거의 영화 얘기뿐이다.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2, 3장과 4, 5, 6장으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나눔의 한가운데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혹자의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남긴다.
"내 얼굴에 고갯마루의 바람이 불어왔다. 고갯마루의 바람이란 길고 험한 산길을 오를 때 고갯마루에 가까워지면 산 저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말한다. 그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고갯마루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탁 트인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카메라 옆의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야마 상 뒤에 서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회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야마 상이 지금 하고 있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겨우 고갯마루 위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 고개 너머로 탁 트인 전망과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보였다." (본문 중에서)그의 영화적 위대함은 영화 밖에서 빛을 낸다는 것 여기서도 그는 여전히 그와 영향을 주고 받은 영화인들을 말하고 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말이다. 그는 충분히 주인공일 수 있지만, (더욱이 자서전에서) 결코 주위 사람들을 조연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그들을 동반자로서 그의 인생에서 그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바라본다. 그의 영화적 위대함은 이처럼 영화 밖에서 더욱 크게 빛을 낸다.
그런데 책 후반부의 영화 이야기가 <라쇼몽>에서 끝나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필자의 경우 아키라의 영화를 조금이나마 아는 편인데, 대부분 1980년대 이후의 것들(<카게무샤>, <란>, <꿈> 등)이다. 하다못해 <7인의 사무라이>, <거미의 성> 등도 <라쇼몽> 이후의 영화들이다.
반면에 아키라의 영화가 대중적으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 가정한다면, 더더욱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그의 영화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굳이 표현하자면 긍정적인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이미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의 영화적 힘이 궁극적으로 어디서부터 기인되었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또는 영화에 관심이 있으나 아키라를 모르는 분이라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등의 감독들이 칭송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라는 사람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무엇을 하든 혼자 또는 한 가지로만 성취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을 통해 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김경남 옮김,
모비딕,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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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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