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인 동료와 함께한 필자(오른쪽)
조영삼
어설픈 변명 늘어놓지 말라고 다그치는 부류들도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나님도 통제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언감생심 또 다른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나요? 만약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님이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었다면 '노아의 방주'도 없었을 것이고 '노아의 방주' 이후에는 지구상에 착한 사람들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천부인권보다 상위개념일지도 모르겠네요.
따라서 저의 '변명 아닌 변명'에 반론을 재기하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이 또한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의 영역이니까요. 그리고 지구촌의 60억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별의별 별종들이 모여서 지구촌을 형성합니다. 모든 사람을 일률적으로 잴 수는 없습니다. 아마 저도 그 별종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론적인 접근법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십여 년 전, 이인모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목, 안데스 산맥 산자락에서 몽고반점을 공유하는, 어쩌면 머언 옛날 한 가족이었을지도 모를 인디오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헤겔의 변증법을 되새겼던 기억이 어렴풋 떠오릅니다. '정반합, 정반합, 정반합...' 반(反)을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반(反)이 이전에는 정(正)이었던 것과 합쳐져서 다시 정(正)이 되고, 다시 그 정(正)은 반(反)과 필연적으로 만나고 부정되다가 다시 만나 합(合)이 된다.
역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호간에 이질적인 것들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변화 발전한다는 논리, 세상의 건설적 발전은 서로 다른 60억 개개인의 좌충우돌의 소용돌이 속에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분명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도 아니면 모'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프레임만 작동하는 사회에서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저 같은 별종은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지금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황토가 그리워 20여 년 만에 돌아온 내 나라 내 땅에서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북한은 그들의 체제에 대해 흔쾌하지 않은 태도를 견지하는 저를 그다지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듯 합니다.
저는 보편적 정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음은 평등사회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의 기본입니다. 북한은 고전적 지배계층인 지주나 관료계급을 대체하여 또 다른 지배계급인 당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의 고위 당료계급이 헐벗고 굶주렸던 대다수의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헐벗고 굶주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삼대 세습도 당연 반대합니다. 화성에서 뚝 떨어진 별종국가라면 모를까 21세기 대명천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요. 731부대와 정신대 할머니로 대변되는 악랄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북한의 이른바 혁명 1세대들이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전개했던 것말이지요. 헌데 이러한 일련의 일들 중심에 김일성 주석이 자리 잡고 있음에 저는 그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비판적 시각으로 보편적 정의에 입각해서 접근할 뿐입니다.
제가 20여 년 전 이인모 선생을 만나기 위해 북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의 시신을 참배한 것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간고했던 시기 목숨을 걸고 항일독립투쟁을 했던 것에 대해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로서 망자에게 취할 수 있는 기본적 예의가 아닐까요? 설왕설래의 말들은 전적으로 생각의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이니 개의치 않습니다.
두 번째 왕따는 남쪽의 관계당국으로부터입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오랜 세월 전에 김일성 주석 시신 참배 문제 등으로 그리운 내나라 내 땅에 자진 귀국하자마자 '청계산 자락 국립호텔'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에겐 넘나들 수 있는 문제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덕분에 독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내공 쌓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왕따는 '오서독스(정통)적'인 운동권 일부, '프로테스탄트적'인 진보진영 일부, 양 쪽에서 나왔습니다. 전자는 북한당국의 보편적 정의에 반하는 행태들을 제가 비판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 땅에서 아직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국보법 관련자인 저와 악수를 하다간 "앗, 뜨거!"하고 데일지 모른다는 피해의식 내지는 강박관념 때문 아닐까요?
분단된 이 땅에서 가련한 노인을 돌보지 말아야 했나요'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34년간 굽히지 않고 버티다가 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불쌍하고 가련한 노인이 있었습니다(적어도 저에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 모르는 그 노인의 마지막 희망은 북에 두고 온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분단이 현재진행형인 이 땅에서는 그 가련한 노인을 돌봐주지 말았어야 옳았을까요? 나나 내 형제 자매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색안경을 낀 이들에게 역지사지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인가요? 이인모 선생과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와의 인연으로 인해 그 후 저의 인생해로는 이순의 나이에 근접해 가는 오늘까지 남들이 보기에 그리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아직도 이런저런 조각들이 현재진행형 중에 있습니다.
오는 4월 22일, 4심의 선고 공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3심제도인데 웬 4심이냐고요?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판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제가 20여 년 전에 이인모 선생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 시신을 참배한 것에 대해 '동방예의지국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해서 무죄 판결이 나왔었는데, 그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쩌면 또 다시 '청계산자락' 토굴 아닌 독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한 내공 더 쌓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에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늙은 아빠지만 제 딴엔 아빠가 박학다식(?)하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제 '초딩' 4학년인 아들내미와 구순을 넘기신 부모님이 걸릴 뿐이지요.
그럼에도 복잡다난한 이 지구촌엔 이런저런 바보들이 꼭 있어야 할 양념은 아니더라도 빈 공간 듬성듬성 존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바보들의 바보스런 행위와 동작들을 그대로 봐 주어야지 바보들의 '순순한' 행위(순수한의 오기가 절대 아님)를 각색하고, 바보들의 눈높이를 통념적인 잣대로 맞추려 할 때 바보들의 의지완 무관하게 바보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불현듯 안도현 시인의 싯구가 생각납니다. 제목이 '너에게 묻는다' 였던가요?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세상 사람들아! 제발, 바보는 바보 그대로 보아주기 바란다. 빼지도 보태지도 말고..." 어느 덜 떨어진 바보의 절규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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