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의 푸른 빛이 반짝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해변가.
김산슬
식당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해변가를 지나 그가 그려준 골목을 따라 쭉 따라갔건만 우리는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물어물어 들어간 골목에는 한편엔 쓰레기 수거함이 놓여 있고, 바닥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진흙탕인 데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좁은 골목이었다. 조심조심 발을 디디는데, 이 풍경이 너무나 반갑다. 내가 좋아하는 딱 '이집트스러운' 거리다.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걷는데 옆에서 이보도 실실 웃으며 진흙탕을 건너고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가 대답을 한다.
"Yes. I am feeling the same thing with you. I love this messy path so much just like you do. I think because it reminds me of Algola."(그래, 나도 지금 너랑 같은 걸 느끼고 있어. 나도 이 지저분한 골목이 너무 좋아. 아마 내게 앙골라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인가 봐.)내가 아닌 타인과 같은 순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정말 신비한 경험이다. 이런 경험은 사람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순간이나마 잊게 만들어 주곤 했다. 지구 위 한 장소에서 나와 비슷한 누군가와 만나게 되고 인연이 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로 이러한 만남은 일생에 몇 번 없을 축복임이 분명하다. 이런 친구와 함께 여행할 수 있어 매 순간이 행복하다.
알렉산드리아 = 새우?마침내 골목 끝에서 우리는 사장이 말해준 식당을 찾아냈다. 옆을 보니 번듯한 길이 보이건만, 마음 급한 우리는 이상한 뒷길로 들어간 게다. 식당 안을 보니 외국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식당안에는 여느 로컬 식당이 그러하듯 메뉴판도, 가격 안내판도 없었다. 그곳의 주요 고객들은 당연히 동네 사람들일 테니, 이미 모든 메뉴와 가격을 훤히 꿰고 있는 까닭이겠지.
"오늘만큼은 돈 생각말고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어보자고!" 아침부터 별 일을 다 겪은 우리의 배는 이미 쪼그라든 것도 모자라 아프기 시작했다. 새우 2kg과 생선 두 마리, 볶음밥 두 접시와 빵을 시키니 주문 받는 아저씨가 빵과 샐러드는 원래 공짜라며 웃으신다. 다른 종업원들도 옆을 지나가는 척 하며 이리 흘끗, 저리 흘끗하고 우리를 쳐다보기 나쁘다. 작은 골목에 위치한 로컬 식당에 외국인 네 명이 들이닥쳐서는 아랍어로 메뉴를 주문하니 모두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아저씨가 양손에 큰 쟁반을 들고 오셨다. 헉, 맙소사! 아저씨가 들고 오신 음식들을 보는 순간 모두가 입이 떡 벌어진다. 누가 봐도 침이 줄줄 흐를 듯한 색깔의 새우튀김과 딱 맞게 간이 잘 밴 볶음밥, 거기다 비릿한 민물이 아닌 푸른 지중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까지.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 무려 세 접시에 가득 담겨 나온 새우의 가격은 한 접시에 만원도 되지 않았다.
김산슬
새우를 얼른 집어 들어 머리만 떼어낸 채 껍질까지 한입 베어 물자 나도 모르게 행복에 겨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신선하고 통통한 새우라니. 우리 넷 모두 할 말을 잃고 새우 맛에 감탄하고 있을 때 식당 아저씨들과 다른 손님들까지 모두 우리의 표정을 보며 킬킬거리느라 신이 났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어로 자꾸만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생선과 새우를 집어 드는 우리 모습이 꽤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을 테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덩달아 다른 사람들까지 즐겁게 해주고 있자니 기분이 끝내준다.
유목문화에 뿌리를 둔 만큼 많은 중동-북아프리카의 아랍 나라에서는 육류가 더 흔한 식재료다. 만약 사막 기후의 바다도 없는 내륙 국가라면 해산물의 가격이 몇 배로 뛰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바다라고는 유일하게 홍해 도시 아까바와 사실상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사해밖에 없는 요르단, 그중에서도 이보와 나처럼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에 산다면 해산물을 먹을 기회는 거의 없는 셈이다.
해서 이보와 나는 지난 반년을 씨푸드의 '씨'자도 못 본 채 지냈고, 저렴한 배낭여행을 하는 기남과 은준에게도 해산물은 사치였을 테였다. 우리는 생선 대가리와 뼈만 남긴 채 깨끗하게 식탁에 차려진 모든 음식을 비웠다. 이후에도 우리 넷에게 알렉산드리아와 새우는 동의어가 되었다. 누군가 알렉산드리아를 언급하면 그 순간 우리 넷은 눈을 감고 "아, 새우…"하며 중얼릴 정도였으니.

▲ 우리는 생선 대가리와 뼈만 남긴 채 깨끗하게 식탁에 차려진 모든 음식을 비웠다. 이후에도 우리 넷에게 알렉산드리아와 새우는 동의어가 되었다.
김산슬
영수증을 받아든 우리는 한 번 더 놀랐다. 그 모든 만찬에 대한 값이 일 인당 만 원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속이려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정직하게 주문한 무게만큼의 해산물을 요리해 주었고, 정확하게 먹은 만큼의 가격만을 요구했다.
정직한 호스텔에 이어 정직한 식당까지. 카이로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떼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알렉스에 온 뒤 우리도 모르게 점점 풀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그 불안 속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있었을 테고, 딱 그 경계심 만큼 우리에게 건넨 순수한 선의도 놓쳤을 것이다.
여행자의 마음을 열게 하는 건 비싸고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다. 단지 신뢰할 수 있는 무엇이 생길 때 우리는 용기 있게 자신을 활짝 열어 새로움을 맞이한다. 그제야 마음 놓고 여행지에 자신을 던져두고서는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기쁨과 행복에 가득 찬 눈으로.

▲ 알렉산드리아 거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
김산슬
알렉스에서는 누구나 마음놓고 미칠 수 있다밤이 되자 정말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면서 천둥 같은 소리를 냈고, 그리고 나면 하얀 거품이 되어 바스러졌다. 반복되는 파도의 움직임을 보며 우리는 걸었다. 여분의 옷도 없건만 무슨 배짱인지 우리는 성이 나서 무섭게 방파제에 부딪혀 오는 파도 옆으로 신나게 달렸다. 말 그대로 신나게 달렸다. 이렇게 숨이 차오르게 뛰었던 것이 언제인지, 별것 아닌 일에 깔깔대며 웃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내 온몸이 말하는 듯 했다. '참 오랜만이야, 그렇지?'
우리는 마음껏 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절제하고 목소리를 줄일 것을 요구받는다. 흥에 겨워 미칠 것 같을 때도,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가슴이 미어져 올 때도 그것들을 밖으로 토해낼 장소를 찾을 수 없다. 길에서도, 지하철, 버스, 길거리. 우리가 머무는 삶의 장소들은 온통 조용히 해야할 곳뿐이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웃으면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곤 한다. '어디 모자란 거 아냐?'하는 눈빛으로. 감정의 표현이 '비정상'이 되어버린 곳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소리 지르는 일에 더욱 열을 올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을 배출할 '타당한' 이유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 알렉산드리아의 비내리는 밤. 이때만 해도 파도가 덮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윤은준
알렉스의 멈출 줄 모르는 비가 우리를 좀 더 미치게 했다. 약간의 광기 같은 흥분에 사로잡힌 채 우리는 방파제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때, 분명 저 멀리서 얌전하게 다가오던 파도가 방파제에 다가서며 도망갈 틈도 없이 방파제를 훌쩍 넘어 우리를 덮쳤다.
어찌나 큰 파도였는지 이 차선 도로의 반대쪽 도로까지 죄다 휩쓸고 말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비에 젖은 옷은 말리면 그만이었지만,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을 뒤집어 쓰는 건 사실 우리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물을 홀딱 뒤집어쓴 순간, 내내 묶여 있던 마지막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툭하고 끊어졌다. 자유로웠다. 옷 걱정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조차 허물어뜨리는 듯한 자유로움이었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내 가슴이 가쁘게 뛰고 있단 사실만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이전보다 숨이 더 잘 쉬어질 것만 같은 기분에 아주 깊이 몇 번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기쁨이 극치에 다다르면 인간의 통제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웃음은 그 환희를 모두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운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미 다 젖었는데 이제 어쩌겠어?"
우리는 그 멋진 찰나에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지칠 때까지 뛰었다. 내가 오롯이 느끼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순간과 마주하는 일은 여행에서 얻는 몇 안 되는 값진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분노이든, 기쁨이든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그 순간의 내 모습 있는 그대로에 가장 충실할 수 있게 해주던 곳이 바로 이집트였다. 이곳에선 언제나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밤도, 사랑스러운 알렉스에서 가슴이 벅차게 행복하다.
| 알렉산드리아 여행 팁 #1 |
호텔 이름은 'Triomphe Hotel'이며 아랍어로는 '푼두끄 나쓰르'이다.
마스르[Masr] 기차역에서 사드 자그로울 방향으로 곧장 걸으면 도보로 넉넉잡아 20분 정도 소요된다.
사드 자그로울 광장에서 해안가를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블록에 위치해 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랜드마크인 세실(Cecil) 호텔의 옆 블록에 있다. 문의는 Triomphehotel@hotmail.com 로 가능하다. 사장의 이름은 아딜(Ad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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