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쇠 울타리를 물어뜯는 돼지. 공장식 농장의 돼지들은 자극이 박탈된 무료한 생활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의 본문을 촬영한 사진.
이런 비인도적인 사육의 배경에는 효율성과 이윤만 중시하고 동물의 고통은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이 있다. 그렇다고 가축을 기르는 농민이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 것도 아니다. 사료 값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거두는 쪽은 사료·도축·가공·유통 등 수익이 발생하는 모든 부문을 소유한 다국적 거대기업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축산 농민은 도산하지 않기 위해 생산원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 결과, 가축을 좁은 공간에서 기르고 항생제와 화학약품을 투여하는 방식을 피할 수 없다. 빨리 살찌우기 위해 거세를 시키고 성장호르몬제를 사용해야 한다.
공장식 농장에서 사용되는 항생제·농약·살충제·성장촉진용 호르몬 등은 인체 건강을 위협한다. 가축의 사육과 도축에서 발생하는 대장균 감염은 식중독과 리콜 사태로 이어진다. 값싼 고기가 야기한 과도한 육식은 비만을 '신종 전염병'으로 만들었다.
공장식 농장은 광우병·구제역·조류독감·돼지독감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의 발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장식 축산이 '바이러스의 슈퍼 배양소'이며 새로운 전염병을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축의 분뇨를 비롯하여 농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이 야기하는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세계 식량기구는 축산업을 '환경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공장식 축산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장식 축산은 성업 중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고기를 공급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민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은 식품을 먹어치우고 막대한 양을 버리는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다 많이 먹으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 번 먹던 고기를 한 번으로 줄여서라도 동물·인간·지구를 배려한 축산물에 좀 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농민이 복지 축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농민이 잘 살지 못한다면 동물 복지를 법으로 제정한들 제대로 시행될 리 없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정치적 행위'이 책은 육식에 반대하거나 동물의 권리 따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 육식이 사라질 거라는 가정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주장하는 동물 복지가 오로지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입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가 과도한 육식의 폐단을 지적하고 "육식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내가 이번 연재기사에서 이야기하려는 바와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는 육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육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줄이는 채식주의자의 실천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폄하한다. 또한 채식주의자가 고기 한 점을 먹기라도 하면 '변절자'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완전한 채식' 아니면 '완전한 육식'에 치우친 사고방식은 "전부가 아닐 바에는 전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양산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류가 태곳적부터 그래왔듯이(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달라진) 육식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장처럼 '동물 복지를 배려하되 육식을 줄이는'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 공장식으로 생산된 축산물의 주요 유통 경로인 패스트푸드 끊기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공장식 축산물 대신 동물복지 축산물을 이용할 수 있다. 각자의 환경에서 '적당히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육식은 분명 가능하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시판 중인 동물복지인증 계란. 오른쪽 상단 붉은색 동그라미 안의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제도는 2012년 산란계(계란)를 대상으로 시행되어 2013년 돼지, 2014년 육계, 2015년 한우·육우·젖소(우유) 순으로 확대 시행된다.
공장식 축산은 효율·속도·이윤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생명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는 우리사회 곳곳에 드러나 있다.
오늘날 먹는 문제는 생존을 위한 양분을 얻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먹는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는 철학자 피터 싱어의 말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 가축사육, 공장과 농장 사이의 딜레마
박상표 지음,
개마고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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