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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입구에 신원 미확인 인양 시신 인상착의가 안내되고 있다. ⓒ 권우성
제가 중학교 졸업하기 며칠 전 언니를 잃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언니에겐 모진 시간이었을 텐데 방심했다는 자책과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한 부모를 원망하며 고등학교 3년을 힘들게 방황했습니다.
단장의 슬픔을 겪은 부모는 더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나는 장례식 후 중학교를 졸업했고 한 달 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법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했으니 누구도 내 속에서 불타고 있던 불덩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은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울었지만 나는 숨어서 우는 걸 배웠습니다. 몇 번의 자살 충동을 느꼈지만 절망하는 부모 앞에서 나는 더 모범생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부모에게 다시 한 번 그런 몹쓸 짓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울 만큼 생과 사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입학해서 며칠 되지 않은 날 노크 없이 화장실 문을 열었던 선배에게 덤벼들어 사고를 치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딱 한 번 '누구든지 걸리기만 해봐라'하는 마음으로 반항심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해 대학에 입학했던 오빠는 몇 달 후 끝내 자퇴하고 말았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 친구들에게 전해들었습니다.
할반지통, 이 또한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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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조문객들 지난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일요일 대학생인 큰 아이와 안산 임시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마침 유가족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부축하여 간신히 걷는 부모 곁에 검은 상복을 입은 형제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형제의 사진을 보는 학생의 들썩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 나 자신,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단장의 슬픔, 참척의 고통만을 생각했습니다. 할반지통(割半之痛)의 고통을 잊고 있었습니다. 몸의 반쪽을 베어 내는 고통이라는 뜻으로 형제, 자매의 죽음을 일컫는 말인 할반지통을 겪을 그 아이와 수많은 또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 까요.
그날 본 그 아이는 아마도 학교에서 인정하는 장례일이 지나고 이제 등교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금방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 밖이 되면서 혼자 내색 않고 괴로워 할 것입니다. 부모 앞에서 쉽게 울지 못할 것입니다. 주변인들이 모두 부모를 위로할 때 아이는 슬쩍 뒤로 물러나 훌쩍일 것입니다.
가슴 속에 불덩이를 안고 사춘기를 보내야 할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부모보다 더 시급하게 위로하고 달래 줘야 하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의 형제 자매들일지도 모릅니다.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2년 11월 열아홉 살 조카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조카의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글을 남기고 수시로 조카가 있는 납골당에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조카의 생일날을 기념하고 시시때때로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록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만 집중된 위로를 아이들에게 나눠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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