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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의 짜릿한 전주성 뒤집기 드라마

[2014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전북 현대 모터스 1-2 포항 스틸러스

14.05.06 20:57최종업데이트14.05.0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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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 추가 시간 4분도 하염없이 흐르고 모하메드 알-도사리(카타르)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은 멍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이 경기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었다. 포항 특산품 '스틸 타카'가 전주성에서도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한 명승부였다.

황선홍 감독이 이끌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6일 낮 4시 전주월드컵경기장(이하 전주성)에서 열린 2014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방문 경기에서 2-1로 멋진 역전승을 이끌어내며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포항의 끈질긴 수비력, 라이언킹을 잠재우다

사실 이 경기는 K리그 클래식 팬 입장에서는 쳐다보기 힘든 대진표였다. 우리 축구팬들이 자랑하는 두 클럽이 너무 일찍 맞붙었기 때문이다. E그룹에서 세레소 오사카(일본),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 샨동 루넝(중국)을 밀어내고 무패(3승 3무, 11득점 6실점)의 성적을 자랑하며 1위에 오른 포항 스틸러스는 그럴 만 했지만 전북 현대는 G그룹 죽음의 조에서 겨우 살아서 올라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디펜딩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와의 숨막히는 선두 다툼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멜버른 빅토리(호주)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의 저항이 매우 강했기에 16강 진출 결과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G그룹 2위는 E그룹 1위와 만나도록 사전에 짜여진 규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경기는 동아시아권 대진표에서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 일컫기에 충분했다. 실제 경기 내용은 더했다. 두 팀 선수들은 중원에서 대충돌을 일으키며 경기장 곳곳에서 부딪치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K리그 클래식 맞수 대결 이상의 긴장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토너먼트의 묘미이기도 했다.

특히, 방문 팀 포항 수비수들은 전주성의 상징인 골잡이 이동국을 제대로 묶었다. 간판 수비형 미드필더 김태수를 중심에 두고 두 명의 센터백(김광석, 배슬기)이 만들어내는 마의 삼각지대는 라이언 킹이 고개를 들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전북의 전반전 유일한 유효 슛을 수비형 미드필더 정혁이 기록한 것만 봐도 이 양상이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무열의 짜릿한 왼발 역전골

진정한 승부의 갈림길은 후반전에 만들어졌다. 먼저 웃은 것은 전주성을 찾아온 전북의 홈팬들이었다. 54분, 왼쪽 측면에서 레오나르도가 포항 측면 수비수 신광훈을 앞에 두고 자로 잰 듯한 오른발 띄워주기를 전북 골문 앞으로 날려주었다. 이 공을 향해 달려든 선취골의 주인공은 수비형 미드필더 이재성이었다. 그의 이마를 떠난 공은 문지기 신화용도 꼼짝할 수 없이 왼쪽 기둥을 스치며 빨려들어갔다. 전주성에 초록 물결이 넘실댔다.

하지만 홈 팀의 기쁨도 잠시 단 5분만에 포항의 벼락같은 동점골이 반대편 골문을 흔들었다. 포항의 빠른 역습 전개가 부정확한 패스로 무산되는 듯 보였지만 전북 미드필더 이승기의 몸에 맞고 흐른 공에 집중력을 발휘한 포항 미드필더 손준호는 각도가 별로 없는 곳에서 과감한 슛으로 뜻을 이뤘다. 전북 문지기 권순태가 각도를 잘 잡은 듯 보였지만 비교적 높게 날아온 공이 그의 오른손 장갑에 맞고 그물을 흔들었다.

포항 선수들은 이 순간 3월 26일 저녁에 바로 그곳에서 만들어낸 3-1(2014 K리그 클래식 4라운드) 역전 드라마를 떠올렸다. 당시 관중보다 거의 세 배나 많은 19,327명의 전북 팬들이 연휴 마지막 날 관중석을 가득 메웠지만 그들이 준비한 스틸 타카는 변함없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동점골에 당황한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은 곧바로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이승렬을 빼고 한교원을 들여보냈다. 하지만 포항의 역습 패스 수준은 전북 수비수들이 어설프게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74분, 박희철의 찔러주기를 받은 고무열이 침착하게 왼발 대각선 슛으로 역전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그 앞에서 전북의 간판 수비수 김기희가 막아섰지만 다리 사이를 통과한 고무열의 왼발 슛은 더도 덜도 말고 전북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떼굴떼굴 굴러들어갔다.

다급한 전북 벤치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정혁을 빼고 골잡이 카이오까지 들여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4분의 추가 시간도 거의 끝나갈 때, 레오나르도가 먼 거리에서 유효 슛을 기록했지만 신화용의 정면으로 굴러가 비교적 손쉽게 잡힐 뿐이었다.

두 팀은 5월 10일(토) 낮에 벌어지는 K리그 클래식 일정(전북 vs 인천 유나이티드, 포항 vs 전남)을 모두 안방에서 치르고 13일 저녁 7시 30분에 스틸야드로 장소를 옮겨 한 번 더 맞붙는다. 아무래도 방문 경기에서 멋진 역전승을 거둔 포항 선수들이 여유 있게 8강 이후의 일정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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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결과(6일 낮 4시, 전주성)

★ 전북 현대 모터스 1-2 포항 스틸러스 [득점 : 이재성(54분,도움-레오나르도) / 손준호(59분), 고무열(74분,도움-박희철)]

◎ 전북 선수들
FW : 이동국
AMF : 레오나르도, 이승기, 이승렬(60분↔한교원), 이승기
DMF : 정혁(77분↔카이오), 이재성
DF : 이재명, 윌킨슨, 김기희, 이규로
GK : 권순태

◎ 포항 선수들
FW : 유창현(83분↔박선주)
AMF : 고무열(90+3분↔황지수), 이명주, 이광훈(80분↔문창진)
DMF : 김태수, 손준호
DF : 박희철, 김광석, 배슬기, 신광훈
GK : 신화용

◇ 16강 토너먼트 2차전 일정
☆ 포항 스틸러스 - 전북 현대 모터스(5월 13일 저녁 7시 30분, 포항 스틸야드)
축구 챔피언스리그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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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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