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이 그 놈 같아서 투표 안 하겠다고?

[주장] 투쟁으로 얻은 소중한 권리, 스스로 포기하는 일 없어야

등록 2014.06.03 15:47수정 2014.06.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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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투표

투표 ⓒ 이민선


투표의 역사는 지금으로 부터 약 2500년 전, 고대시대에 시작됐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에서는 군중들의 환호성 크기로 대표자를 뽑았다. 환호성이 오늘날의 투표 행위인 셈이다.

아르콘이라는 최고 관리를 선출해 통치를 위임했던 아테네에서 오늘 날 선거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여러 명의 아르콘을 투표가 아니라 무작위 추첨에 의해 뽑았다. 허나, 이들을 해임할 때는 투표를 진행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투표권이 오늘날처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성이나 노예, 외국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고 건강한 성인 남성만이 시민으로 인정받아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투표 역사는 피로 얼룩진 투쟁의 역사였다. 1848년,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을 통해 귀족에게만 주어졌던 투표권이 노동자에게 까지 확대된다. 그 과정에서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국에서는 1884년에 모든 노동자가 투표권을 부여받게 됐다. 노동시간 단축, 보통선거권 부여 등을  내세운 노동자 계급의 차티스트 운동(1838년)이 전국적인 민중운동으로 확산된 결과였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투표권을 성인 남성에게만 줬다. 여전히 여성은 정치 참여에서 배제된 것이다.

단식투쟁 중단 위해 목에 호스 넣어 강제로 음식을


a  선관위 투표 참여 캠페인

선관위 투표 참여 캠페인 ⓒ 안양 선관위


여성 투표권의 역사는 참혹하다. 1883년과 1892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기 위한 법안이 영국 의회에 제출됐지만 남성 의원들에 의해 모두 부결됐다. 당시 여성에게는 지방의회 투표권만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자, 영국 여성들은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정부는 주동자들을 감옥에 가두며 운동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 여성들은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영국 경찰은 단식투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호스를 목에 넣어 강제로 음식을 먹였다. 이 방법이 비난을 받자, 굶으면 풀어주되 경찰이 24시간 따라 붙어 감시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잡아넣는 '고양이 & 쥐 법'을 만들어 여성들을 탄압했다.


그 이후, 여성의 시위와 정부의 진압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다 급기야, 궁전에 숨어들어 난간에 몸을 묶은 채 시위하는 여성도 생겨났다. 그러던 중, 1913년 그 유명한 '에밀리 데이비슨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여성 참정권 역사의 전환점이 만들어 진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인텔리 여성이다. 그녀는 달리고 있는 영국 국왕의 말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란 말을 남긴다. 이 사건으로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1928년, 여성의 손에도 투표권이 주어진다.

단두대 이슬로 사라지고도 150년 후에야

a  이민선, 투표하고 인증샷

이민선, 투표하고 인증샷 ⓒ 이민선


프랑스는 더 극적이고 훨씬 더 어려웠다. 약 200년 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프랑스 혁명 슬로건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이다. 그러나 여성이나 흑인은 그 '인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한, 혁명 중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라는 게 발표 됐는데, 그 선언에서조차 무산계급과 여성은 제외됐다.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고 지지하던 여성 연극인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환멸을 느끼고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 하면서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 돼야 한다는 혁신적 주장을 하게 된다.

이 일로 구주는 '자신의 성별에 대한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죄목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단두대에 오른다. 그녀는 처형되면서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프랑스 여권 운동의 시작을 알린다.

허나, 프랑스는 그 이후에도 여성 참정권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운동이 시작된 지 150년 후인 1946년에야 비로소 여성참정권을 보장한다. 

흑인들의 참정권 쟁취 역사 또한 여성들 못지않게 참혹하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로자 파크스 같은 인권운동가들의 비폭력 저항운동과,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흑인들의 희생을 치르고 난 이후(1965년)에 투표권을 인정했다.

이렇듯, 선거는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투표 권이 주어진 것은 불과 100여 년도 되지 않는 일이다.

"찍을 사람이 없어, 찍어봐야 뭐"

a  투표참여 캠페인

투표참여 캠페인 ⓒ 안양선관위


안타까운 것은 투표를 대하는 요즘 사람들 마음가짐이 너무나 가볍다는 것이다.

"교육감만 찍고 나머지는 다 기권했다,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도지사와 교육감만 찍고 나머지는 기권했다. 누군지 잘 몰라서."

사전 투표일인 지난달 31일, 투표를 마치고 나온 몇몇 지인들의 반응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
"찍어 봐야 그 놈이 그 놈일 텐데 뭐."

투표일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몇몇 지인들의 시니컬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투표를 안 하겠다는 것.

이런 반응은 투표율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처음 치러졌던 지난 1995년 1회 68.4%를 제외 하고는 모두 5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반 가까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표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가지각색이다. 이미 소개 한 대로 찍을 사람 없어서 안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해봤자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안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필요성을 전혀 못 느껴서 안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마음 충분히 이해 할만하다. 허나 존중 할 수는 없다. 선각자들의 땀과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의 꽃 참정권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찍을 사람이 없다면, 홍보물이라도 펴 놓고 알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꼭 맘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그런 대로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어야 하고, 후보자 모두가 하나같이 나빠 보여서 찍을 사람이 없다면, 그 중에서 그래도 덜 나빠 보이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내일(6월 4일)은 제 6회 전국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땀과 피로 얻은 소중한 투표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투표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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