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 후 달라진 풍경의 타흐리르 광장. 한때 자동차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지나갔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김산슬
그렇게 한국만큼이나 진득한 이집트 사람들의 정을 듬뿍 받으며 살았던 나는, 그래서 다시 돌아온 타흐리르에서 울고 말았다.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덮쳤다. 이집트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모든 게 그대로라고 생각했건만, 대낮의 타흐리르를 보고서야 정말로 모든 게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푸른 야자수와 광장 교차로를 쉴 새 없이 도는 차들의 경적 소리로 가득한 내 기억 속 타흐리르 광장은 더 이상 없었다. 혁명의 열기와 군중의 분노, 수십 년 독재정치의 붕괴 후에 밀려들어온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다시 시작된 새로운 정권에 대한 저항. 그 모든 희로애락을 넘어왔고, 앞으로도 이집트의 역사를 지켜볼 타흐리르 광장은 길었던 지난 시간만큼이나 짙고 무거워진 공기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 총알이 빗발친 흔적이 가득한 타흐리르 광장의 한 건물.
김산슬
보수를 하지 않은 듯 울퉁불퉁 엉망인 아스팔트 바닥은 격렬하고도 지난하게 이어져온 지난 몇 년간의 역사의 적나라한 증거 같았다. 깨어진 병과 각종 파편들, 핏자국 같아 보이는 얼룩도 더러 보였다. 카이로에서 가장 북적이던 교차로를 정리하던 신호등은 제 역할을 잃고 빛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 할 일을 잃은 신호등에는 찢어진 현수막 같은 게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헝겊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이었다. 지독하게 곪아버린 기득권의 부패와 정치세력의 횡포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인형이나마 심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 한 때 이나라에서 가장 붐비던 광장을 정리하던 신호등은 교수대가 되어 덩그러니 서있었다.
김산슬
그들이 거리의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혁명 이후 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이집트를 둘러싼 혼란의 끝이 언제일지는 알라도 모를 것 같았다(알라는 신의 이름이 아니다, 아랍어로 알라는 '유일신'을 뜻하며 한국어로 '하나님'과 같은 뜻이다). 신호등에 매달린 섬뜩한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이집션 사내들 세 명이 다가와서는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겠다 했다.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됐다고 하니 공짜라며 다짜고짜 붓을 얼굴에 갖다 댄다.
"우리도 원래 여기서 그림을 그리던 건 아니었지." 열심히 붓을 놀리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슈퍼 주인이었다고. 이 친구는 대학생이고 여기 이 친구는 번듯한 직장도 있었지.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데모를 해도 나아지는 건 없었어. 세상이 바뀌나 싶다가도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더 고달파졌지. 나는 가게 문을 닫고, 저 친구는 직장에서 잘려서 빵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나온 거야. 이 총각은 친한 친구가 시위 중에 정부군한테 맞아 죽었거든. 그 후로 학교 대신 여기로 통학을 해."

▲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말에 그들은 하트 모양의 이집트 국기를 그려주었다.
Ivo.P
누군가는 이집트의 경제 상황이 30년 전 수준으로 퇴화됐다고도 말했다. 직장을 잃고 기본적 의식주를 유지하기조차 위태로운 이들이 더러 강도가 돼 관광객과 가게들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도시 전체에 불신이 깃들고 그렇게 사람들 간의 인심은 메말라갔다.
불과 몇십 분 전에 보았던 지하철 안에서의 정겨움 모습들은 꿈속 장면이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이 나라 곳곳에서는 삶이 계속된다. 누군가가 싸우고 남의 것을 탐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웃고, 사랑하고, 가진 것을 나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바짝 말라가고 있는 여기에서 아직은 남아있는 희망을 본다.
그림으로 타흐리르에 남은 사람들

▲"정부여, 너는 펜과 붓을 두려워 하는구나!" 벽화의 시작점인 담장 모서리에 적혀진 글귀. 각종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제하려 들만큼 진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던 정부를 비꼬는 말이다.
김산슬

▲ AUC 대학 담장을 따라 이어진 벽화들
김산슬
옛 AUC(카이로 아메리카 대학) 건물을 둘러싼 2~3미터 남짓한 담장을 따라 걷기로 했다. 벽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그림들이 뒤덮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사람들의 얼굴 그림이다. 오래지 않아 나는 곧 벽화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지그시 감은 눈과 얼굴 뒤에 함께 그려진 날개 혹은 머리 위의 금띠. 이 광장에서 죽어간,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들을 기리는 벽화들이었다.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벽 위에 빼곡히 그려진 이들의 수만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나는 휘청거렸다. 그 그림이 하나하나 물밀 듯이 가슴에 와 박혔다. 그들은 벽 위에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새겨진 듯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환한 웃음으로, 혹은 그들이 숨을 거뒀을 당시 모습 그대로.

▲ 천사가 되어 타흐리르 벽에 남겨진 희생자들.
김산슬

▲ 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죄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산슬
그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가슴에 박혔다. 곧 갓난아이들의 잠든 듯한 얼굴이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일그러진 줄만 알았던,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참혹한 얼굴로 숨을 거둔 이들의 얼굴까지 보고 나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들은 정말로 저렇게 죽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그중에 누군가는 내 친구의 가족일 수도, 혹은 먼 친척일 수도, 하다못해 한 번쯤 나와 옷깃이 스쳤을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삶의 한 귀퉁이가 뚝 떨어져 나가는 듯한 절망감과 무력감 그 자체라는 걸, 그들의 아픔이 오롯이 내 것처럼 밀려들었다.

▲ 그들은 정말로 이렇게 죽었다. 그렇게 타흐리르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게 했다.
김산슬

▲ 원색으로 칠해진 강렬한 그림들은 그 고통마저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김산슬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뚝뚝 떨어져 마른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이 뿌려졌을 땅인지.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하늘은 붉게 물드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타흐리르 광장은 벽화들과 총 자국 가득한 건물의 모습들로 바뀌어 버렸다. 부디 다음에 다시 이집트에 왔을 때는 좀 더 많은 희망을 볼 수 있기를. 타흐리르(해방)라는 이름에 걸맞게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눈물로 적셔진 땅에서 희망의 싹이 피어나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고문없는 나라. 경찰이 누군가를 폭행하는 그림 밑에는 아랍어로'고문없는 국가'라고 쓰여있다. 평화를 소망하는 이집트 인들의 마음이 보였다.
김산슬
![독재자는 그만 [NO DICTATOR] 혁명 후 타흐리르 거리 곳곳에는 '독재자는 그만'이라는 스텐실이 여기저기 새겨져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4/0609/IE001720561_STD.jpg)
▲독재자는 그만 [NO DICTATOR] 혁명 후 타흐리르 거리 곳곳에는 '독재자는 그만'이라는 스텐실이 여기저기 새겨져있다.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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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얼굴... 카이로 한가운데서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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